현장취재, 허허벌판 흰건물 적막감만...

최신 기기 갖춘 쾌적한 진료환경 그대로
외부인 출입금지, 노조원과 공무원 간 충돌 우려 경찰 배치



경상남도의회는 지난달말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에 이어 최근 해산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복지부장관은 재의요구를 지시했고, 국회는 진주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원 전반을 국정감사하겠다고 나섰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의원들이 하나같이 복지부의 미흡한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복지부장관은 "해산은 절대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회생과 해산의 기로에서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사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진주의료원을 찾았다.

○…진주 외곽도로를 한동안 달리다보면 흰색의 웅장한 건물 외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진주의료원이다.

인근에 시공 중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농산물도매시장을 제외하면 말그대로 허허벌판이다. 의료원 정문에는 '출입금지' 팻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입구를 지나면 본관과 장례식장, 호스피스병동 등 3개의 건물이 있고 넓은 부지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호스피스 병동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으며, 내부 역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띄게 반짝여 새 건물임을 확인시켰다.


치매환자 2명만 남겨져

○…기자가 방문한 16일 당시 의료원에 입원한 환자는 본관 8층 요양병동에 2명의 치매환자들 뿐이었다.

하지만 본관 1층 로비는 노조 측에서 점거,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환자 간병을 대신 맡아줄 간병인이 오자 이름과 소속, 환자를 보는 시간 등을 물어보고, 담당자와의 통화로 신분을 정확히 확인한 후에야 병원 안으로 들여보냈다.

기자 역시 한 시간 가량 설득한 끝에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노조원들의 얼굴은 촬영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서만 취재가 가능했다.

1층에는 홍준표 도지사를 규탄하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나 플랜카드가 빼곡히 쌓여있었다.

바닥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10명 남짓되는 사람들이 3교대로 본관을 지키고 있었다.

로비를 제외하고는 이전 진료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넓은 복도를 지나면 각종 최신 기구가 있는 외래, 입원 병동이 있고, 입원실내부도 모두 깨끗한 상태였다.

다양한 편의 시설 고스란히

 ○…1층에는 응급실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건강증진센터 등이 있고, 로비 한가운데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면 각종 검사실, 비뇨기과, 치과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병원의 군데군데 최고, 최신의 장비를 들여놨다는 플랜카드들이 서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올라갈수록 빅5병원을 연상케하는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원실 내부에는 비교적 크게 짜여진 환자침대와 간병침대를 들여놨다.

5인 병동 안에는 침대 간 간격도 넓고 화장실도 있는 등 기존 대학병원 2~3인실 부럽지 않게 조성됐으며 집중관리가 가능한 2인실에는 최신 장비를 설치해놨다. 복도 역시 그간 봐왔던 의료기관 중 넓은 편에 속했다.





우수 기관 선정 알림•폐업 공고 함께


○…본관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가면 따로 운영했던 호스피스 병동건물이 나온다.

복지부에서 우수한 기관으로 선정됐다는 플랜카드와 폐업을 알리는 공고문이 1층 유리문에 같이 붙어 있다.

의료원을 찾은 외부인들을 위해 호스피스 1층은 개방해 놓은 상태다. 병동 안은 눈이 부실정도로 대리석 바닥이 반짝였다.

공공의료원이라기보다는 잘 꾸려진 요양원의 느낌이 들었다. 건물은 작았지만 내실있게 지어졌으며, 2층은 철자물쇠로 굳게 잠궈놨다.

건너편 장례식장 역시 좋은 시설이었지만 창문을 통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현재 경상남도공무원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외부인 출입도, 촬영도 허가하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노조원들, 경남도 공무원들의 차가 곳곳에 주차돼 있었고, 9인승의 승합차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들의 싸움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공무원, 노조, 경찰만이 텅 빈 의료원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바뀌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폐업으로 병원기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의료원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2008년 초지동으로 이전한 후 줄곧 미화원으로 일했던 한 지역주민을 만났다. 그는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할 당시 막내 간호사들이나 말단 직원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이라는 긍지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원장이나 임직원들, 수간호사, 몇몇 의사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히 이번 원장이 부임한 이후 환자가 뚝 떨어졌고, 안일한 수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들 교육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젠가 한 번은 의료원이 바뀌어야 했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폐업 조치가 아닌 공공의료 의식이 있는 원장, 직원들로 물갈이를 하는 조직, 인사개편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돈 없어도 갈 수 있는 3차병원 필요”

○…경상남도에서는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대신 보건소 등을 확대해 맞춤형 진료를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또 3차의료기관으로 대체할만한 시설은 따로 마련치 않고 시내에 있는 '경상대병원'을 이용하면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지역주민의 반응이다. 지역주민 B모씨는 "경상대병원을 외래로 2번 갔다온 진료비는 진주의료원에서 한 달간 입원한 것 보다 비쌌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의원에서 1500원만 내면 진료할 수 있는 보건소의 1차진료가 아니라, 수술이나 입원같은 큰 돈이 드는 경우에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3차병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폐업 결정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병원을 방문, 직접 진료를 받아보고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폐업 조치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진주에서조차 이번 도의회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적정하게 공정하게 진료받는 의료기관이 진주에 단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국정감사에 한가닥 기대

○…24일부터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공공의료 국정감사가 이뤄진다. 국회에서는 홍준표 도지사가 증인으로 출석할지, 또 진주의료원이 현장조사를 받게 될지를 두고 시비가 분분한 상태다.

다시 문을 열지, 아니면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운명을 가늠할 수 없게 된 진주의료원은 6월의 땡볕 아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홀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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