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독소조항 빼고 재설계'…개원가단체 '의료계 옥죌 것' 반발

복지부, 의료계에 일차의료 중심 모델' 제시 요구

만성질환관리제가 6월의 의료계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제도는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자주 가는 동네의원에 등록하면 본인부담금을 할인해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의원은 단골 환자를 확보할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만성질환자를 조기 발견해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보재정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의료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혈압·당뇨병 관련 청구가 한달에 30건 이상인 의원 1만 4000여 곳 중 약 65%가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만성질환관리제도를 강력 반대하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엔 연착륙에 성공한 듯 보이고 환자·의원·정부 모두 윈윈하는 시스템이지만, 향후 의료계를 옥죄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의료계의 거센 반발속에 시작된 이 제도가 최근 다시 핫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18일 제1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일차의료 진료환경 개선방안으로 '토요일 오전진료 수가 가산'과 함께 '만성질환관리제'가 논의되면서부터. 특히 노환규 의협회장이 독소조항을 없앤다는 전제 하에 이 제도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의료계 '규제책 될 것' 반발
의료계가 만성질환관리제를 반대하는 것은 주치의제도, 총액계약제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료행위·약제비 사용 평가 등 의원의 질 평가 도구가 이용될 수 있고, 심사지침에 따른 획일화된 진료를 초래하는 등 의료계에 불이익을 주는 규제책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반발하는 이유다. 더군다나 많은 의원들이 참여한 후에 이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한몫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주치의제로 전환해 환자들을 담당토록 한다거나 만성질환자를 보건소로 보내 관리토록 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환자의 선택·등록, 보건소·공단과의 연계 등 문제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복지부의 계획도 믿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전국의사총연합·의원협회·민주의사회·인천시의사회 등 단체들은 연이어 성명을 발표하며 반발에 나서고 있다. 심하게는 의협이 제도를 수용하면 집행부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가 지난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과 성창현 의료체계개선팀장은 19일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의료계 한편에서 주장하고 있는 주치의제도, 총액계약제 등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능이나 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의료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만성질환관리제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을 듣기 위해 귀를 활짝 열겠다"고 밝혔다.

특히 "개원가에서 반발하는 것은 소통과 신뢰의 문제가 밑바탕에 깔려있을 것"이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입장번복한 노환규회장 비판
한편 건정심에서는 만성질환관리제도 운영에 있어 환자가 혜택을 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협조키로 하고, 9월까지 우리나라 만성질환 관리발전을 위해 보다 발전된 '일차의료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모델'을 의료계에서 제시·논의키로 했다.

이와함께 진료환경 모니터링단 운영, 수진자 조회 및 현지확인 개선, 진료비 심사평가제도 개선 등을 추진해 진료 현장의 애로요인도 해소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노환규 회장이 2011년 전의총 대표였을 때 단식 투쟁까지 하며 백지화를 촉구했었고, 이 제도를 수용한 당시 경만호 의협회장에게 계란을 던지며 강력 반발한 바 있다. 그리고 의협회장 선거 후보자 시절이나 회장이 되어서도 이러한 입장은 계속 유지돼 왔다.

그러던 노 회장이 건정심서 토요일 오전진료 수가 가산 확대를 통과시키는 것과 때를 같이해 만성질환관리제도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노 회장측이나 복지부 모두 토요진료 가산 확대와 별개의 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의료인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의협은 기존의 만성질환제도에서 독소조항을 제거해 재설계한 것으로 기존의 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밝혔다.

환경이 바뀌면 누구든 입장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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