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계속 팔면 우리는 고급 용역 제공하는 것"


최근 국내에서 시행되는 임상시험이 많아졌지만 이 부분에 도취돼 국내 임상시험의 앞날을 장밋빛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자각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약물로 개발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싼 값에 외국계 빅 파마에게 팔고 이후 우리나라가 이 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최근 개최돤 암학회 학술대회에서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사업단의 김정용 임상개발본부장은 임상시험이 활성화 됐다고 하지만 왜 초기임상이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 임상시험이 증가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국내 임상시험 수준도 국제적이지만 초기 임상이 거의 없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괜찮은 후보물질은 돈 많은 외국 회사가 거의 사들이고 이를 가지고 초기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임상시험은 고급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신약이 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헐값에 팔고 2상 3상 임상시험을 대행하는 패턴이 계속된다면 국내 신약개발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국가임상시험사업단 신상구 단장도 국내 임상시험은 아시아권에서는 앞서가고 있지만 초기임상이 적다는 것은 한계점이라 인정했다.

신 단장은 현재 미국이 초기 임상의 80% 이상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한단계 점프하려면 초기임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 단장은 "임상시험의 선진국이 되려면 초기임상이 50% 이상이 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며 "정부가 후보물질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갖고 현재 임상시험사업단에서 진행하는 글로벌임상시험센터 프로그램 등이 정착되면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빅 파마, 신약개발 전략 궤도 수정
임상시험 전문가들은 국내에 초기 임상시험이 적은 이유와 빅 파마들이 후보물질을 사들이는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신약개발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대략 1조 3천에서 4천억 소요되는데 과거처럼 신약을 승인받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신약을 승인받기 위해 약의 안전성은 물론 효과 등의 잣대가 엄격해짐에 따라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신약개발에 승부를 걸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특허만료 등의 외부적인 요인으로 빅 파마들의 성장세가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신약을 개발하는데 투자할 여력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한미약품 손주웅 R&D 본부장은 최근 열린 암학회 학술대회에서 지금의 빅 파마들은 '폭풍에 흔들리는 배'라며 따라서 어떤 형식이든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빅파마들의 신약개발과 관련된 R&D는 발전해도 신약개발은 감소했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성장은 커녕 매출이 감소하는 것이 빅 파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손 본부장은 "빅 파마들은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했을 때 신약의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을 하게 된 것 같다.

또 현재의 신약개발 프로그램에도 개선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결과로 제약사 내부의 규모를 줄이고 외부에서 후보물질을 사들이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빅 파마들은 그동안 신약개발을 위해 사용하던 깔때기 모델을 벗어나 구멍 뚫린 깔때기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면서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는 자만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회사들과의 파트너십과 Alliance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지만 그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손 박사의 의견에 김 본부장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김 박사는 빅 파마들이 1조 이상 소요되는 신약개발 비용은 이제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용은 줄이고 성공 확률은 높이기 위해 다른 나라의 후보물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 우리도 빅 파마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읽고 이에 철저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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