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상황 공개하고 전문가적 판단에 떳떳해야
이해상충 : 의학연구와 이해상충

 

# 1.신약의 임상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인 A 연구자는 해당 제약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 2.모 대기업 계열의 제약회사가 개발한 약물 임상 시험을 같은 기업 계열의 의료기관에서 실시한다.
# 3. B 의대 교수는 동일한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연구자가 제출한 연구비 지원 신청의 심사를 맡게 됐다.
# 4.의료기관에 거액을 기부한 산업체와 연관된 연구나 병원장이 제출한 연구를 심의해야 하는 의료기관 내 IRB.

위의 사례는 의학연구자들이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내리는 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이다. 이 외에도 연구자들은 다양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연세의대 이일학 교수(의료법윤리학과)는 최근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연구모임에서 연구분야에서의 이해상충에 대해 강의했다. 이날 연구모임은 '이해상충과 의료계의 현실'을 주제로 한 세번째 시간으로, 이 교수는 강의를 통해 이해상충에 직면한 의학연구자가 전문가로서의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날 강의와 토론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의학연구 분야에서 이해상충이 증가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인가? 또, 실제적인 예가 있으면 얘기해 달라.
의학연구의 환경적 변화 때문이다. 연구는 현대 의료가 존재할 수 있는 첫 단계다. 과거에는 진료와 연구 영역을 구분했지만 오늘날에는 어려운 일이다. 진료 영역에서 한계로 인식되었던 영역이 연구를 통해 극복되고, 과거 당연했던 의학적 조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는 진료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주고 의료의 합리화·표준화에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연구를 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자원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연구 주체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좋은 연구결과를 도출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좋은 연구결과'라는 것이 자원을 지원해주는 측에 유리한 결과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연구자가 중립성을 갖기가 어렵다. 실제로 지난 1998년 NEJM에 실린 연구 결과(1998;338(2):101-106)에 따르면, 의약품 안전성 연구에 있어 제약회사와 재정적인 이해관계도가 높을 수록 그 결과는 해당 제약회사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후원은 공공재원, 산업체, 개인 등 여러 주체에 의해 이뤄지지만 공익성과 이윤추구 등의 목적에서 그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고, 연구자간·후원자간의 경쟁이 심해지는 것도 이해상충이 증가하는 이유다. 연구가 행해지는 기관도 벤처기업 등으로 다양해짐에 따라 기업적 요소 등 과학업무 외의 요소들이 더 많이 요구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지난 2001년 미국의 한 다국적 제약사가 패혈증 치료제를 개발했다. 고가의 이 약제는 발매 이후 판매량이 증가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증가가 둔화됐다. 그러자 제약사는 패혈증 치료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전국민 캠페인을 벌였고 관련 의학회들이 이 약을 이용한 치료의 필요성을 담은 치료지침을 발표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학회들은 안전성 등을 이유로 지침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 후 이 약의 효과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들도 연이어 나와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연구 과정 뿐 아니라 제시된 의학 연구 결과를 실제 의료행위에 적용하는 데도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 이해상충은 무조건 정당하지 않은 건가?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전문가로서의 판단이 영향을 받는다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연구자가 특정 상황에서 전문가로서의 판단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의심할 뿐 그것을 입증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정당한 이해끼리 부딪히는 경우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비슷한 조건에서 주어진 선택 기회에 추가적인 이득이 더해진 경우라면 정당하지 않은 이해상충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이해상충들을 연구자들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해상충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연구의 기본 원칙은 피험자 보호와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키고 이해상충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의료윤리학회는 지난 2010년 △환자이익 최우선 △이해상충 관리 원칙 △의사와 제약산업체 관계 설정 등을 내용으로 한 '의료인과 제약산업 관계 윤리지침'을 제정했다.

전문직에는 석명의 의무가 있다. 자신의 연구에 대해 발표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에 연구자들은 이해상충 관계를 공개해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패혈증 치료 지침의 예를 보자. 치료 지침이 임상 현장에 적극 반영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경우 지침 개발에 특정 회사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관련 제약사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이해상충의 논란도 줄일 수 있다.
 
의학 연구자들은 직접 연구과정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떤 연구 결과가 의료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에 관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이해상충에 관여돼 있는 연구자라면 이 사실을 공개하고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빠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연구자가 이해상충을 공개한 경우는 좀 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약사끼리의 경쟁관계로 인한 용인하기 어려운 이해상충의 영향도 관리돼야 한다. 한국제약협회가 제정한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적 판단에 이해상충이 개입될 수록 판단 그 자체의 오류 외에도 그 결과에 대한 신뢰, 나아가 전문가에 대한 신뢰 자체도 무너지게 되므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료윤리는 의사 각 개인의 차원에서 시작하지만 동료의 행위에 대한 감독과 교정으로 확대되고 구체화된다. 아울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의사단체, 사회체계의 문제로 시각을 확대해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리·김수미 기자 smkim@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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