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명윤리위 특위 공청회, '중단'도 '결정'으로 수정


"만성질환으로 오랜기간 투병하다가 사망하는 환자는 매년 18만여명이다. 그 가족과 의료진까지 포함하면 매년 100만명이 연명의료 결정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제도화됐을 때 발생할지도 모를 가상의 위험 때문에 현재 이들이 받는 고통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외면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임종을 앞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세부 쟁점에 매몰돼 현실화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29일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 마련을 위한 마지막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큰 방향에는 합의점을 찾았지만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구체적인 권고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특별위원회는 용어에 담긴 가치판단으로 인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말기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표현을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으로 변경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하는, 즉 임종기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다는 권고안을 도출했다.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기술, 장비가 필요한 특수 연명치료에 제한되며 통증 조절이나 영양 공급,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단 시작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한국에서는 김할머니 사건의 영향으로 일단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의료를 시작한 환자를 대상으로 중단 또는 제거 여부가 연명의료의 주된 문제로 오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서울대병원 종양내과)는 "인공호흡기를 시작하는 임종기 환자의 대부분은 연명의료 결정 절차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라면서 "연명의료 결정 논의의 주 목적은 임종기 환자가 호흡곤란이 심하게 발생했을 때 인공호흡기를 적용할지, 아니면 인공호흡기를 하지 않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시행할지 연명의료의 유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김할머니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이번 권고안의 대상 환자와 다르지만 사람들이 자꾸 김할머니 사건을 연상하면서 오류가 발생한다"면서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으면서 고통스러운 임종과정을 겪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자는 것이 이번 모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홍익대 법대 이인영 교수는 권고안 내용은 "연명의료를 결정해서 시행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법제화가 아니다"면서 "환자가 임종기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회가 여러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요건을 분명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과 환자에게는 아직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고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갈등은 대부분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모든 환자는 적절하게 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상병의 상태와 예후, 그리고 시행할 의료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 또한 있다. 연명의료 결정권도 이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권고안에서는 명시적 의사와 의사 추정, 대리 결정 등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안 대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대리결정이 허용되면 자칫 남용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나 환자의 의사 추정의 근거자료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표시도 없고 의사 추정을 인정할 만한 근거자료도 없는 경우의 대리결정은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윤리위원회는 현재 설치운영중인 의료기관의 수가 적고, 인적 구성에 객관성이 부족하며 회의가 자주 열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최종 확인 및 결정 권한을 가져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는 준사법적 성격을 지니고 의료계와 법계, 환자의 권리를 모두 대변할 수 있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내에 연명의료결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진료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며 새로운 위원회 설치에 반대했다. 그는 "국내 대형병원의 임종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여부를 결정하는 DNR 양식 작성 시기를 조사한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임종전 1주일, 특히 2~3일 전에 연명의료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그 주된 이유는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까지는 임종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사람의 임종 과정은 단순하지 않은데 언제 팩스로 서류를 넣어 허락을 받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며칠 후에 사망할 예정이니 서류를 접수하라고 요청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안 대표는 "우선은 안전장치를 통해 환자들의 반대가 적어질 수 잇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도화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범위는 최소한이 돼야 하고 추후 환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허 교수는 연명의료결정위원회 설치를 법제화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그 대상자는 하루 평균 500명에 달하는데 그 많은 서류를 누가 과연 검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허 교수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하고 있지 않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주장하는지 알 수 없다. 국제 표준(global standard)대로 했을 때 어느 나라도 문제가 없었는데 왜 우리나라만 계속 예외조항을 다는가"라며 "탁상공론만 하다 결국 지난 10년간 연명의료가 제도화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위원회 이윤성 위원장(서울의대 교수)은 "연명의료 결정은 윤리에 관한 제도기 때문에 윤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현장에 적용하기 쉽도록 하면 윤리가 훼손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해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사회의 기준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일단 제도를 시작함으로써 치우침을 정상, 또는 중간적 위치로 돌려놓는 노력부터 시작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정리했다.

이어 "공청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잘 참고해 6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며,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윤리위에 달려있다"며 "다만 이번을 계기로 국민들은 본인의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의료진은 임종에 대해 환자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좀 더 합리적인 연명의료 결정 방안이 나오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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