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실직 증가…보험료 부담 커 자진 탈퇴도

"도나라는 이름의 중년여성이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그간 복용해 오던 혈압강하제를 2주전부터 중단해 온 것으로 밝혀진 이 환자는 뇌동맥 파열로 사망했다.

왜 생명까지 위협받으며 이같은 선택을 해야 했을까?

직장여성이었지만 비보험자 신분이었던 이 여성은 늘어나는 의료비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었고 결국 약값으로 자녀의 식비를 충당, 종국에는 자신이 내린 불가항력적인 선택에 대가를 치뤄야 했다."

美 에모리의과대학의 Arther L. Kellerman 박사는 지난해 발표된 미국 비보험자 실태에 관한 보고서에 이같은 사연을 공개했다.

켈러만 박사는 "미국인들 대부분이 "도나"와 같은 비보험자들이 그리 많지 않으며 이들 모두 정부를 통해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건강보험제도의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 의하면 2001년 현재 4천만명의 미국인들이 비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열악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치다. 관련 전문가들은 매년 1백만여명씩 늘어왔던 비보험자수가 경기침체와 9.11테러 여파로 2002년 들어 6천만명 선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학원(IOM)이 발표한 미국 비보험자 실태에 관한 1차보고서(Coverage Matters: Insurance and Health Care)에 따르면 비보험자들은 정기건강검진, 전립선암검진, 유방조영술과 같은 예방단계의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천식,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도 정기적인 치료를 감당하기에는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

이와 관련 켈러만 박사는 "비보험 환자들은 응급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며 "증상이 악화될 때까지 미루다 종국에는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을 다수 목격할 수 있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증상이 너무 악화돼 치료가 힘들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낼 여유도 없다"고 밝혔다.

IOM은 최근 3차보고서(Health Insurance is a Family Matter)를 발표, "비보험자 증가로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의 주축인 가정까지도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미국 전체 가정의 5분의 1 정도가 최소 1년 동안 가족중 한명 또는 그 이상의 비보험자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한 재정적 부담으로 질환이 발생해도 병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전했다.

이중 임산부, 신생아, 어린이들의 의료혜택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지난해 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은 어린이 중 51%만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내 비보험자 증가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지난해 9.11 테러로 제조, IT, 여행, 항공업계 등에서 대규모 실직이 발생하면서 이미 예견돼 왔다.

여기에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보험료 인상이 가중되면서 실직자는 물론 직장인들 조차 비보험자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 제공되는 의료보험은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공동 부담하는 직장보험과 개인이전액을 부담하는 민간보험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정부가 관리하는 medicare(노령층), medicaid(저소득층) 등 의료보장제도가 마련돼 있다.

7%인 민간보험률에 비해 직장보험은 전체 인구의 67% 정도가 가입돼 있어 그 비중이 가장 높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실소득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는 보험료 인상으로 인해 이 또한 포기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는 실정.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장인의 4%가 경우에 따라서는 연간소득의 10%를 부담해야 하는 높은 보험료를 이유로 직장보험을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직장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사업체도 많아 1,800만여명의 피고용자들이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실직자나 직장보험 비가입자들은 민간보험을 들어야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민간보험료는 이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medicaid나 주정부어린이건강보험프로그램 등 공공의료보장제도는 엄격한 심사기준, 복잡한 절차, 대국민홍보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저소득층 가정의 700여만 비보험 어린이들 중 94%가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의학의 선두주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21세기 생명공학의 발전과 함께 최첨단 의학기술 개발과 진료과목의 세분화 및 전문화 등을 통해 의료소비자의 새로운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오히려 보험료의 상승을 유발,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제도의 난맥상으로 인해 궁극적인 수혜자인 국민들에게 고르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보고서는 "이제 누가 비보험자이고 이들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있다.

우리 정부는 국내 비보험자의 현황과 실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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