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사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인가."

다소 자극적으로 들리는 이같은 푸념은 대한임상보험의학회 이근영 이사장(한림의대)이 12일 열린 제12차 정기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 터져 나왔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은 의료를 행하는 의료의 몫과 관리자의 몫이 있는데 과거 의사가 두 역할을 다 했다. 최근 들어선 의사는 의료분야에 집중한 반면 관리부분은 의사를 배제한 정부가 조정하는 형태로 변하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시작돼 1989년 충분한 예산없이 일방적으로 전국민의료보험을 정부주도로 시행됐으며, 2000년 건강·재활예방을 포함하는 건강보험으로 바뀔때도 의사들은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서도 정부·수요자들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요구했고, 수가는 계속 통제해 국민들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반면 의사와 의료기관을 대표하는 의협과 병협은 적은 예산으로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고 정부에 건의하지만 정부는 대개 무시해 왔다. 결국 정부는 임상의사들을 계속 조이기만 하는데 이제는 그 한계에 온 것으로 본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의사들이 임상현장에만 갇혀있지 말고 다른 중요한 축인 관리부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길 모색을 주문했다. 그는 가장먼저 국민이 원하는 고품질 의료서비스에 부응하는 재원마련을 강조했다. 행위별 원가를 보상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해야 하고 특히 진찰료·수술실 등에서 의사비용이 제대로 반영되게 입원료 등에 대해 근거중심의 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원이 확보된 후엔 진료비 지불제도나 비급여 등을 논의하는 프로세스를 밟아야 한다"며, "정부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만들고 반드시 근거중심으로 설득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의사편만 들지 않는 중립적으로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전문가를 배출하거나 유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중립적 전문가와 엄선된 임상의사, 보건의료전문가, 경제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보건개혁 연석회의'를 만들어 정부와 소통에 나서야 하고, 대한임상보험의학회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영 이사장은 "정부는 저부담 저수가 저급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하는 진료비지불제도 개편 등의 의사 옥죄이기 정책을 그만두고 고품질 의료서비스 제공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건보재정 규모 확대를 먼저 고민하고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재원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근 회장은 "임상보험의학회는 의사의 편이나 정부편이 아니다. 건강보험제도를 연구하는 학회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공익대표로 참여해 객관적인 주장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의료수가 결정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보다 현실적인 수가정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건강보험 제도를 분석·연구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학회인 만큼 보험정책 결정에 대한 기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 현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계의 줄다리기에 대해 학회 입장에서 공정성을 갖고 조율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학회는 그 동안 의사인 공급자에 편향되지 않는 학회로서의 기본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새 정부는 보험재정 건전성과 건강보장성 확대라는 굵직한 정책을 의료계 중점 과제로 생각하고 있기에 의료계 현장에 있는 학회의 객관적인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학술대회는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방향(이창준·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 적정성 평가의 성과와 미래(이규덕·심평원 평가위원), 의사비용과 병원비용 분리방안 연구(신영석·보사연 부원장)가 발표됐다.

특히 '포괄수가제도 이대로 좋은가' 주제로 학계·심평원·복지부·의협의 전문가가 참석, 7월부터 종합병원급 이상에도 당연 적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해 주제발표와 토론이 펼쳐졌다.<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한임상보험의학회 김숙희 홍보이사, 이근영 이사장, 박상근 회장, 이영구 총무이사·사진 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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