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외 문제 없던 미국형 이식 환자 1년째 생존

미국 심장혈관마취학회지(2001년 10월호 뉴스레터)에 "인공심장의 새벽"이라는 제목의논문이 실린 바 있다.

저자는 해당학회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로서, 최근 있었던 두 가지 사건 즉, 한국의 인공심장 이식과 미국의 인공심장 이식을 언급하면서 한국형 인공심장(AnyHeart)과 미국형 인공심장(Abiocor)을 비교하였다.

논문은 한국의 인공심장 이식수술이 미국보다 먼저 했다는 사실과 두 인공심장의 기술적인 차이와 철학적인 배경 등을 자세히 기술한 후, 심장보존식 한국형 인공심장이 심장절제식 미국형 인공심장보다 여러 면에서 우수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형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집도했던 필자가 논문을 읽어본 후의 솔직한 느낌은, 우리 입장에서야 공정하고 당연한 결론이지만 "미국의사가 한국형 인공심장 편을 들고 괜찮으려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미국 인공심장 관련 의료진으로부터 반론을 받아 곤란했던 모양이다. 혼자 답변하다 벅찼는지 내게 대신 답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영어로 글을 쓰느라 나까지 덩달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인공심장 역사는 오래 됐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인류의 희망으로 제시한 몇 가지 프로젝트 중에, 인간이 달나라를 가는 것과 인공심장을 만드는 것이 있었다. 병든 심장을 들어내고 완벽한 기계심장을 이식하여 인간의 수명을 오래 연장하는 것, 그 얼마나 흥분되는 주제인가!

그러나 케네디 프로젝트가 선언되고 나서 완전 이식형 인공심장이 인체에 삽입되기까지는 4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이제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우리는 작년 7월 초에 외신을 통해 드디어 미국형 인공심장(Abiocor)이 최초로 인체에이식되었다는 특종을 접한 바 있다.

그동안 이미 많은 인공심장 이식수술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당시의 수술이 그토록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하였다.

일부에서는 단순히 언론매체의 과대포장으로 여기고 무시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한 반응은 의학에 대해 아는 사람일수록 두드러졌고, 심지어 대부분의 국내 심장전문의들도 그 차이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지금 진행 중인 미국의 인공심장(Abiocor) 임상시도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며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인공심장의 기술적인 부분으로, 과거의 것들이 공기구동식인 것에 비해 이번의 Abiocor는 전기구동식 기계장치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게 그것 같아도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공기구동식 인공심장은 구동장치가 몸밖에 위치하고, 심장으로는 연결튜브만 이식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환자가 냉장고 크기의 구동장치를 끌고 다녀야 한다.

따라서 인체에 이식되는 인공심장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형경량화가필수적이고, 그를 위해서 전기구동식 기계장치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에서 개가를 이룬 것이 미국의 Abiocor인 것이다.

다음은 FDA의 임상허가 측면으로, 기존의 인공심장들을 심장이식을 전제조건으로 하여임시(temporary) 혹은 가교(bridge)로만 허용되었던 것에 비해 Abiocor의 경우는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definitive treatment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이 다시금 "최초"라는 타이틀을 허용하는 것이다.

한국형 인공심장(AnyHeart)과 미국형 인공심장(Abiocor)은 기본적으로 전기구동식 기계장치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큰 차이점은 미국형의 경우 자기심장을 제거해야 하고, 한국형은 자기심장을 보존하면서 이식하는 것에 있다.

물론 한국형 인공심장도 처음에는 미국형과 같이 완전 치환형(total artificial heart; TAH)형태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자기 심장을 보존한다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이식형 양심보조장치(implantable biventricular assist device; BVAD)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자기 심장을 보존한다는 의미는 우선 전적으로 기계장치에만 의존하지 않아 안전하고,수술이 쉬우며, 심장이 회복될 경우 기계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심장근육 회복을 위해 현재 연구 중에 있는 심근세포 이식 혹은 유전자 치료 등의 방법들이 병행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적 생리적인 측면에서 자기심장을 보존하는 장점이 있으며, 특히 신체를 보존한다는 동양사상의 측면에서 환자와 보호자 뿐 아니라 의료진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준다.

작년 6월 12일 한국형 인공심장(AnyHeart)이 최초로 인체에 이식된 바 있다.

환자는 오랜 심장병으로 투병을 하다가 말기 양심부전증에 빠진 상태로, 급격히 꺼져가는 환자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구난차원에서 시술된 것이었다.

어렵게 수술이 성공하여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지만, 불행히도 지병인 간부전증이 악화되면서 12일 만에 사망하였다. 수술 후 잠시 언론매체들에서 주고받았던 "세계최초", "인공심장" 등의 천박한 공방은 처음부터 의료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학술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내용들일 뿐이고, 의료진에게는 대책없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이 보일 뿐이다.

다행히 미국의 인공심장이식 이후 한국형 인공심장에 대한 의의가 이해되고 있으며, 특히 위에 언급한 미국 하버드 대학의 논문과 여러 국제학회에서 인정받은 것으로 더 이상의 이견은 불식되었다고 본다.

다만 당시의 일부 비판적인 언론보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수술 전 환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 해당 의료진이 고심했던 결정과정과 수술 후 죽음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환자에 대한 일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에게 인공심장을 이식하여 12일간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은 의료진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랜 기간 심부전증으로 고생했던 환자가 이제는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 희망으로 간절히 소원했고, 다른 방법으로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환자가 스스로 도전했던 것이다.

수술결정은 외과의사가 단독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병원의 심장전문의들이 환자·보호자와 함께 고심한 결과일 뿐이다.

환자가 사망한 다음날 보호자들이 찾아와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했고 의료진도 문상을 다녀왔다.

환자와 함께 밤낮을 지새웠던 의료진은 고인이 되신 환자가 이제는 걱정과 근심이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형 인공심장은 서울대학교 의공학과 민병구 교수님에 의해 20년간 개발되었다. 그동안 안정성 검증을 위해 50마리 이상의 다양한 동물에 이식되었다.

그 대부분을 필자가 직접 집도하였고, 수술성공률도 90%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미국 FDA가 요구하는 기준을 상회하는 것이고, 현재 진행 중인 미국형 인공심장 Abiocor가 요구하는 병원당 돼지 3마리의 이식경험을 요구하는 조건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미국형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오래 생존한 것에 비해 한국형 인공심장 이식환자는 12일 만에 사망하였다.

혹시 그것이 한국형 인공심장이 미국형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오해받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우선 12일간의 생존은 성공적인 것이다.

미국형 인공심장과 생존기간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이유는 수술 전 상태를 비교할 때 두 환자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급격히 꺼져가는 환자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구난차원에서 시술된 것이고, 게다가 폐고혈압에 출혈성향과 간부전증까지 겹쳐있었던 환자였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는 당뇨 이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환자였으며, 수술도 여유있게 일정을 잡아 시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말기 심장병의 최선의 치료는 심장이식이다.

그러나 심장공여자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죽음을 직면하여 의료진만 바라보고 있다.

그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현재까지 인공심장이기에, 지금도 수없이 많은 국내외 연구진이 인공심장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료진에 따라 환자치료에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으나, 근거가 없는 배타적인 비난은 말기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미국형 인공심장(Abiocor)을 이식받은 환자가 1년째 건강히 생존해 있다.

환자는 Mr. Tom Christerson으로 2001년 9월 13일 켄터기 루이빌 대학의 흉부외과 의료진(Dr. Bowman과 Dr. Dowling)에 의해 수술을 받았다. 현재 퇴원하여 정기적인 통원치료 중이며, 인공심장의 작동상태나 건강상태가 문제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환자는 대단히 지적이고 사려깊은 분이었으며, 특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전 참전용사"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여러 도시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한국의 발전상을 칭찬하면서 그 일부에 본인이 기여했다는 것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1주년 기념행사에 축전을 보내면서 인류의 희망인 그가 오래동안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원하였고, Mr. Christerson이 한국의 심장병 환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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