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정의·치료 목적 따라 약물치료도 진보
-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예방효과·계열약물 특성 고려돼야

“고혈압은 검증된 다양한 치료방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분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미해결 과제다.” LIFE, ASCOT-BPLA 등 항고혈압제와 관련한 세계적 연구를 주도한 스웨덴 살그렌스타대학병원의 비요른 존 다뢰프 교수가 고혈압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이다.

고혈압은 기초 및 임상연구를 통해 발생기전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치료방법도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환자의 절반 가량이 자신이 고혈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안다 해도 절반은 치료받지 않으며, 치료를 받아도 절반은 정상혈압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절반의 법칙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가운데 임상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혈압 환자의 절반 이상이 혈압 목표치 달성에 실패한다는 것.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1년 국민건강영양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고혈압 환자의 혈압 조절률(140/90 mmHg 미만 달성)은 남성이 36.9%이고 여성은 49.4%로 절반을 밑돌고 있다. 고혈압 인지율(남 58.5%, 여 76.1%), 치료율(남 51.7%, 여 71.3%)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환자 대부분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전문가들은 고혈압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를 합병증이 나타날때까지 특정한 증상이 없어 치료가 늦어지는 것과 함께 환자의 대부분이 다른 심혈관 위험인자 또는 질환을 동반한다는 유병특성에서 찾는다. 고혈압 환자에서 혈압상승만이 단독으로 관찰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에서 이상지질혈증·당뇨병·신장질환·대사증후군 등 추가적인 심혈관 위험인자가 동반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타 위험인자와 질환이 고혈압에 동반될 경우 이들의 상호작용(cross talk)으로 동맥경화증과 같은 심혈관장애가 발생하거나 악화돼 혈압조절 뿐 아니라 합병증 예방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Am J Hypertens 2000;13:S3-S10, Hypertension 2001;37:1256-1261, J Hypertens 2006;24:837-843).

혈압은 신장의 염분 배출력(renal sodium excretion), 심장 기능(cardiac performance), 혈관 경직도(vascular tone) 등 세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이들은 체내 교감신경계와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RAAS)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외에도 유전, 식사, 흡연, 음주, 비만, 환경 등 환자 개개인의 다양한 인자들이 영향을 미치며 고혈압을 유발한다. 더욱이 이들은 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고혈압 및 합병증 위험을 높인다. 고혈압은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원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고혈압 정의, 높은 혈압에서 심혈관증후군으로
미국고혈압학회(ASH)는 이 같은 발생기전과 유병특성을 반영해 지난 2005년 새로운 고혈압의 정의를 제안했다. Journal of Clinical Hypertension 2005;7:505-512에 발표한 권고성명에서 ‘복잡한 상호관계를 맺는 병인(위험인자)들로부터 기인하는 진행성 심혈관증후군’으로 고혈압을 정의했다. 고혈압을 더 이상 혈압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심혈관계에 구조·기능적 손상을 유발하는 여러 가지 위험인자의 발현과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심혈관장애의 집합체가 고혈압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의 핵심은 혈압이 높은 상태, 즉 혈압상승을 고혈압의 한 인자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혈압상승이라는 단일인자에 근거해 고혈압을 구분하던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혈압 치료목적과 일맥상통
고혈압 정의의 변화는 혈압강하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인 합병증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고혈압 치료목적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가이드라인은 고혈압 치료의 목적을 장기적인 심혈관질환 유병 및 사망위험의 감소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혈압을 낮추는 것 외에 전반적인 심혈관 위험을 낮추는 것이 현재 고혈압 관리의 개념”이라며 치료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혈관질환 위험도 관점에서 치료전략 짜야
고혈압을 바라보는 관점과 치료목적에 따라 치료전략 역시 예전과 같을 수 없다. 혈압상승이라는 단일 인자에서 더 나아가 전체 심혈관질환 위험도의 관점에서 짜여져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ASH는 고혈압의 새로운 정의를 제안하며, 내피세포기능장애나 혈관의 구조·기능적 손상 등 심혈관장애의 표지인자들이 혈압상승이 나타나기 이전에 관찰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혈압 합병증이 내피세포기능장애 → 혈관의 구조·기능적 손상 → 표적장기 손상의 과정을 거쳐 동맥경화증과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기초 및 임상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더불어 궁극적인 심혈관사건의 예방이 목적이라면 더 이상 혈압만을 근거로 치료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진다. 혈압상승이 나타나기 이전에라도 여타 위험인자나 질환의 동반으로 심혈관장애의 표지인자들이 발현되면 합병증 예방을 위해 보다 빠르게 적극적인 치료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혈관 위험인자 종합 관리
고혈압의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여타 위험인자들이 혈압상승과 상호작용을 통해 동맥경화증 등 심혈관질환의 기저병태를 악화시키는 과정의 고리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혈압은 여타 심혈관 위험인자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다중 위험인자의 발현은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급격히 증가시킨다. 결국, 이러한 고혈압의 유병특성을 고려한다면 혈압만을 잡아서는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심혈관 고위험군에 속하는 고혈압 환자의 치료 시에 각각의 위험인자를 개별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종합관리해 인자 간 상호작용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혈압의 관리개념과 관련해 “단순히 혈압을 낮추는 것 이외에 연령, 성별, 유전적 요인을 포함해 흡연,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 심혈관 위험인자를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신속한 약물치료 요구
ASH가 말하는 심혈관장애, 즉 새로운 정의의 고혈압은 표지인자가 혈압상승 이전부터 관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중 위험인자가 발현되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들의 경우, 혈압수치에 의한 고혈압 진단시점에서는 이미 심혈관장애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심혈관 고위험군에서 신속한 항고혈압제 투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즉 혈압이 140/90 mmHg 미만이더라도, 여타 위험인자와 표적장기손상의 여부에 따라 보다 신속하게 약물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고혈압학회(ESH)는 지난 2007년 발표한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Eur Heart J 2007;28:1462-1536)’에서 혈압상승의 단일요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여타 위험인자의 발현·표적장기 손상·관련 합병증 이환 등을 포함시켜 고혈압 환자의 위험도를 구분하고 이에 따라 치료전략을 짜도록 권고했다. 이 경우 또한 혈압수치가 정상단계일지라도 심혈관질환 또는 신장질환 등으로 인해 위험도가 매우 높으면 약물투여를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방치하면 여타 위험인자의 영향으로 인한 혈압상승과 이들의 상호작용이 급속히 진전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고혈압제 선택 다양화
심혈관장애의 측면이 강조됐다고 해서 혈압조절의 중요성이 간과되서는 안된다. 혈압조절이 고혈압 치료의 근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대한고혈압학회는 2004년 지침을 통해 “고혈압 환자에서 혈압을 강하하면 심혈관질환의 발생이 감소된다는 것이 매우 잘 알려져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궁극적인 심혈관사건의 예방을 타깃으로 하는 고혈압 치료목적에 더해 다양한 기전의 항고혈압제가 등장하면서 약물의 선택도 차별화되고 있다. 고혈압의 치료목적이 심혈관 합병증의 예방이라면 대등한 혈압강하 효과에 심혈관 보호를 통해 합병증 예방에까지 기여하는 약물 쪽으로 저울이 기우는 것은 당연하다.

혈압강하 + 심혈관 보호효과
항고혈압제의 주된 혜택은 혈압강하 효과다. 하지만, 일부 항고혈압제에서 강압효과 외에 각각의 고유한 기전으로 인한 부가적 심혈관 보호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항고혈압제의 부가적 심혈관 보호효과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연구는 HOPE (NEJM 2000;342:145-153) 연구가 대표적이다.

HOPE 연구에서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라미프릴이 여타 항고혈압제와 비교해 심혈관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의 복합빈도를 유의하게 줄였다. 주목할 점은 라미프릴의 혈압강하 효과는 여타 약제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학계는 이를 두고 RAAS 차단 계열의 항고혈압제에 혈압강하에 더해 추가적인 심혈관 보호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이들 계열 약물에서 내피세포기능장애 등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기초연구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항고혈압제 선택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외에도 EUROPA (Lancet 2003;362:782-788), Val-HEFT (NEJM 2001;345:1667-1675), CHARM (JAMA 2005;294:1794-1798), ONTARGET (NEJM 2008;358:1547-1559) 등의 연구가 RAAS억제제의 심혈관사건 개선효과를 보고했다.

“계열약물 고유한 특성 고려돼야”
ESH의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은 “일부 항고혈압제의 효과가 환자의 표적장기 손상·당뇨병·신장질환·심혈관질환의 유무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만큼, 약물선택에 이같은 사항이 고려돼야 한다”며 “계열 별 차이를 고려해 고혈압 환자의 일차 또는 병용선택 시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적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역시 초기약제의 선택과 관련해 “혈압수치보다는 환자의 임상적 특성과 동반된 질환에 따라 특정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회는 강압치료의 일차선택으로 인정되고 있는 항고혈압제로 이뇨제, 베타차단제 및 알파차단제, 칼슘길항제, ACEI, ARB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들 약물이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적용했을 경우 이환율, 사망률, 부작용 발생에 있어 큰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HOPE 연구]
라미프릴군 심혈관사건 위험감소 확인
- 모든 원인 사망 감소도 위약군보다 우수
- NEJM 2000;342:145-153

목적 좌심실기능장애나 심부전이 없는 심혈관사건 고위험군 환자에서 ACEI 라미프릴의 역할을 평가했다.

방법 심혈관 및 말초혈관질환 또는 당뇨병 증거에 적어도 한가지 다른 심혈관 위험인자를 동반한 심혈관사건 고위험군으로 좌심실 박출량이 낮지 않거나 심부전이 없는 환자 9297명을 대상으로 했다. 연령대는 55세 이상으로 라미프릴(1일 10mg 경구용) 또는 위약군으로 나눠 평균 5년간 관찰했다. 일차종료점은 심근경색·뇌졸중·심혈관 원인 사망의 복합적인 발생빈도로 삼았다.

결과 라미프릴군 환자의 14.0%(651명)가 일차종료점에 도달해 위약군의 17.8%(826명)와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P<0.001). 심혈관 원인의 사망(6.1 대 8.1%, P<0.001), 심근경색(9.9 대 12.3%, P<0.001), 뇌졸중(3.4 대 4.9%, P〈0.001) 모두에서 위약군과 비교해 우수한 위험도 감소 효과를 나타냈다. 이외에도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10.4 대 12.2%, P=0.005), 재형성술(16.0 대 18.3%, P=0.002), 심장발작(0.8 대 1.3%, P=0.03), 심부전(9.0 대 11.5%, P<0.001), 당뇨병 관련 합병증(6.4 대 7.6%, P=0.03) 등에서 위약군과 유의한 차이를 드러냈다.



[2007년 ESH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
혈압 및 동반질환 고려한 항고혈압제 선택요건

- 티아자이드 이뇨제: 고립성 수축기고혈압(노령), 심부전
- 베타차단제: 협심증, 심근경색증, 심부전, 빈맥성 부정맥, 녹내장, 임신
- 디하이드로피리딘 칼슘길항제: 고립성 수축기고혈압(노령), 협심증, 좌심실비대, 경동맥·관상동맥 죽상경화증, 임신
- 비디하이드로피리딘 칼슘길항제(베라파밀, 딜티아젬): 협심증, 경동맥 죽상경화증, 상심실성 빈맥
-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 심부전, 좌심실기능장애, 심근경색증, 당뇨병성 신병증, 비당뇨병성 신병증, 좌심실비대, 경동맥 죽상경화증, 단백뇨·미세단백뇨, 심방세동, 대사증후군
-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심부전, 심근경색증, 당뇨병성 신병증, 단백뇨·미세단백뇨, 좌심실비대, 심방세동, 대사증후군, ACEI 원인의 기침



“고혈압 환자 75% 항고혈압제 병용 필요”
- 혈압 강하력, 내약성, 순응도 면에서 유리

지난해 미국심장협회(AHA) 저널 Hypertension 2012; 126:2105-2114에 아주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10년간 미국 성인 고혈압 환자의 혈압조절률(혈압목표치 도달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혈압조절률 상승의 주요한 원인으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증가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다제병용요법의 확대를 통해 혈압조절률 상승이 가능했다”며 적극적인 약물치료의 이점을 설파했다.

고혈압 치료 절반의 법칙 깨다
고혈압은 절반의 법칙에 지배를 받아 온 대표적인 심혈관 위험인자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Aiuping Gu 연구팀이 지난 2001~2010년까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18세 이상 성인 고혈압 환자(9320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혈압 치료 환자들의 혈압조절률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미국의 JNC 7차 가이드라인 발표를 전·후해 항고혈압제의 사용률과 혈압조절률의 변화를 본 결과다.

결과를 자세히 보면 지난 10년간 전체 고혈압 환자의 혈압조절률(140/90 mmHg 미만, 당뇨병·신장질환 환자 130/80 mmHg 미만)은 28.7%(2001~2002)에서 47.2%(2009~2010)로 유의하게 상승했다(P<0.01). 특히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혈압조절률은 44.6%에서 60.3%로 증가(P<0.01), 2010년 현재 절반 이상이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임상시험에서조차 목표치 도달률이 70%를 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상현장에서의 이같은 성과는 상당한 진전이다.

항고혈압제 병용, 단독 대비 혈압조절률 ↑
연구팀은 이같은 성과의 원인을 병용요법의 확대에서 찾았다. 같은 기간 항고혈압제의 사용률은 63.5%에서 77.3%로 의미있는 상승세를 보였는데(P<0.01), 이러한 변화는 병용요법이 주도했다. 다제병용요법의 적용률은 2001년 36.8%에서 2010년 47.7%로 증가해 항고혈압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P<0.01). 반면, 단독요법은 전반적으로 비중이 낮은 가운데 미약한 증가에 그치거나 약제에 따라 사용량이 감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단독요법에 비해 병용치료 환자들의 혈압목표치 달성률이 유의하게 높다는데 주목했다. 하나의 약제만을 사용하는 경우와 비교해 변동용량 병용요법(약물 별도로 다중투여)의 혈압조절률이 26%, 고정용량 병용요법(복합제)은 55%나 높았던 것.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혈압조절률의 개선이 다제병용요법의 보다 확대된 적용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JNC 7차 가이드라인의 역할
미국내 전문가들은 JNC 가이드라인이 병용요법 확대에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3년 발표된 JNC 7차 가이드라인(Hypertension 2003;42:1206-1252)은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들에게 이뇨제 일차선택과 함께 혈압목표치의 달성 및 유지를 위해 계열이 다른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혈압이 목표치보다 20/10 mmHg 높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병용요법으로 시작하도록 적극적인 치료를 지지하고 있다.

ASH “고혈압 환자 75% 이상 병용 필요”
미국고혈압학회(ASH) 역시 병용요법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2010년 발표된 ‘고혈압 환자 병용요법(J Am Soc Hypertens 2010;4:42-50)’에 관한 권고성명에서 ASH는 “354개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을 분석한 결과, 단일성분 항고혈압제의 평균 강압효과는 9.1/5.5 mmHg에 정도였다(BMJ 2003;326:1427-1435)”고 설명했다. 약제 별로 베타차단제, 이뇨제, ACEI, ARB, CCB 등을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임상시험 결과를 봐도, 단일약제로 혈압목표치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ALLHAT 연구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40/90 mmHg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일요법의 목표치 도달률이 33%에 그쳤다. 반면 이제병용을 실시한 경우는 목표치 달성률이 45%로 상승한다.

LIFE 연구의 경우, 혈압조절을 위해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환자의 비율이 90% 이상이었다. ASH는 “현재까지 보고된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고혈압 환자의 75% 이상에서 혈압목표치 달성을 위해 병용요법이 필요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혈압강하력 ↑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의 병용요법의 선택은 단일요법과 비교해 혈압강하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데 기반한다. 서로 차별화된 기전을 통해 혈압상승의 원인이 되는 다른 타깃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SH는 “일반적으로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Am J Med 2009;122:290-300)”고 밝혔다.

내약성 ↑
전반적인 내약성의 개선 역시 병용요법을 선택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내약성 개선은 추가되는 항고혈압제의 약물학적 특성에 의해 초기 단일약제의 부작용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ASH는 “대부분의 항고혈압제에서 용량 의존적으로 부작용 위험이 증가한다”며 고용량 단일요법의 내약성 문제를 지적했다. 저용량 초기 단일약제에 또 다른 항고혈압제를 추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ASH는 CCB 용량에 따라 부종 위험이 높아지는 고혈압 환자에서 저용량 ACEI와 디하이드로피리딘계 CCB의 병용을 예로 들었다. 이 경우 CCB 용량을 줄인 상태에서 ACEI를 추가함으로써 부작용 위험 없이 혈압강하 효과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응도 ↑
순응도는 항고혈압제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같은 혈압강하력의 두 항고혈압제를 놓고도, 순응도에 따라 효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순응도를 놓고 본다면 두 가지 이상 항고혈압제를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복합제가 선호된다. 치료를 간편화시키고 알약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ASH는 복합제와 이를 구성하는 개별 약물을 비교한 9개 임상시험의 메타분석 결과를 인용, “복합제를 통해 약물 순응도를 26%까지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항고혈압제 병용의 선택
현재 이제병용이 가능한 항고혈압제는 총 7개 계열로 구분된다. 계열 내에서 분류되는 약제까지 고려한다면 상당히 광범위한 선택영역이다. ASH는 이 중 혈압강하와 함께 심혈관사건을 감소시키는 약제(이뇨제, CCB, ACEI, ARB, 베타차단제)를 주 계열로 이제병용의 혜택을 소개했다<표>.

RAAS억제제와 이뇨제
ASH의 설명에 따르면, ACEI·ARB·레닌억제제와 저용량 티아자이드 이뇨제의 병용을 통해 추가적인 혈압강하 효과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다. 이뇨제는 초기치료 단계에서 RAAS를 활성화시켜 혈관수축과 염분 및 수분저류(salt & water retention)를 야기한다. RAAS억제제를 추가하면 이러한 이뇨제의 약리학적 보상반응(compensatory response)을 상쇄시킨 상태에서 강압효과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RAAS억제제와 CCB
ASH는 또 “ACEI 또는 ARB의 추가를 통해 CCB의 내약성 프로파일을 유의하게 개선할 수 있다”며 “이들 약제의 병용으로 충분한 추가적 혈압강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RAAS억제제는 항교감신경 효과를 통해 디하이드로피리딘 CCB에 동반될 수도 있는 심박동 증가를 완화시키며, 말초부종 역시 부분적으로 누그러뜨린다는 설명이다.

ACCOMPLISH 연구에서는 심혈관 고위험군 환자에서 고정용량 ACEI + CCB(베나제프릴 + 암로디핀)와 ACEI + 이뇨제(베나제프릴 + HCTZ)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두 그룹 간 대등한 혈압강하에도 불구하고 ACEI + CCB군에서 상대적으로 유의한 심혈관사건 감소효과가 확인됐다. ASH는 “궁극적인 심혈관사건을 본 임상시험에서 ACEI와 ARB의 효과가 비슷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ARB + CCB의 병용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한편 ACCELERATE 연구에서는 고혈압 환자의 첫 약물치료를 병용요법(알리스키렌 + 암로디핀)으로 시작한 결과, 단독요법에 비해 혈압강하 효과가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레닌억제제와 ARB
두 약제의 병용은 부분적인 추가 혈압강하 효과와 함께 내약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언급됐다. ASH는 발사르탄과 알리스키렌 병용에 대한 연구결과(Lancet 2007;370:221-229)를 인용, 각각의 단일요법과 비교해 30%의 추가적인 혈압반응에 이어 위약군과 비슷한 부작용이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CCB와 이뇨제
이뇨제와 CCB의 병용 역시 부분적으로 추가적인 혈압강하에 기여하는 전략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부가효과는 CCB가 이뇨제와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신장의 염분 배출력을 증가시키는 등 두 약제의 약리학적 특성이 겹치는 데서 기인한다. 반면 ASH는 “CCB와 이뇨제의 병용이 ACEI 또는 ARB와 이뇨제의 병용처럼 부작용 프로파일을 개선하지는 못한다”고 부연했다.

베타차단제와 이뇨제
베타차단제 역시 ACEI나 ARB와 같이 이뇨제 사용시에 동반되는 RAAS 활성화를 약화시키는 만큼, 두 약제의 병용은 충분한 추가적인 혈압강하 효과를 제공한다. 하지만, ASH는 이들 개별 약제와 혈당내성 증가 등의 연관성을 고려해 두 약제의 병용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류했다.

CCB와 베타차단제
두 약제의 병용은 베타차단제와 디하이드로피리딘 CCB의 경우에만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사용이 권고됐다. 반면, 비하이드로피리딘 CCB(베라파밀, 딜티아젬)와의 병용은 두 약제가 심박동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일반적인 사용을 금하도록 했다.



표. ASH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에 관한 권고 성명

▶ 충분한 추가 혈압강하 효과 (preferred)
ACEI + 이뇨제, ARB + 이뇨제, ACEI + CCB, ARB + CCB
▶ 부분적 추가 혈압강하 효과 (acceptable)
베타차단제 + 이뇨제, 디하이드로피리딘 CCB + 베타차단제,
CCB + 이뇨제, 레닌억제제 + 이뇨제, 레닌억제제 + ARB
▶ 낮은 추가 혈압강하 효과 (less effective)
ACEI + ARB, ARB + 베타차단제, ACEI + 베타차단제,
비디하이드로피리딘 CCB + 베타차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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