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상황따라 혈압도 변동…한번 측정만으론 안돼

고혈압 맞춤 진단
- 고혈압 유형도 다변화돼 측정 방법도 다양해져야


“고혈압 치료의 시작은 혈압을 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혈압의 변동성과 ▲고혈압 유형의 다변화를 고려할 때 진료실 이외의 자가혈압, 활동혈압, 야간혈압, 아침혈압 등 다양한 혈압측정이 요구된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2007년 발간한 ‘혈압 모니터 지침(Blood Pressure Monitoring Guidelines)’을 통해 혈압측정과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고혈압 치료에 있어 정확한 혈압측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침은 “제대로 측정되지 못한 혈압은 단순히 부정확한 혈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치료와 부적절한 관리를 초래해 고혈압 환자 뿐 아니라 정상인들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고혈압 치료의 시작은 정확한 혈압측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혈압 변동성
“환자에게 말을 걸거나 갑자기 쳐다보는 행동, 갑작스러운 소음, 길거리에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 등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혈압을 증가시킬 수 있다. 간단한 기구를 환자의 몸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인 혈압상승이 야기된다. 따라서 여러 번의 혈압측정이 필요하다.”

1896년에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형태의 혈압계를 개발한 이탈리아의 의사 리바-로찌(Scipione Riva-Rocci)가 한 말이다. 혈압이 신체 내·외부적 상황에 따라 다변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돼 왔다. 잠자리에 들 때와 일어났을 때의 혈압이 다른 수치를 나타내며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는 것, 일중(daily)은 물론 계절에 따라서도 혈압의 높고 낮음이 변덕을 부린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해보면, 이같은 현상을 아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혈압 변동성이 고혈압 환자의 예후, 즉 심혈관사건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와 함께 변동성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전략도 논의되고 있다.

고혈압 유형의 다변화
여기에 백의(white-coat) 또는 가면(masked) 고혈압 등 다양한 유형의 고혈압 병태가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고혈압의 진단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혈압의 반복적인 측정과 이를 통한 평균혈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다.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혈압측정으로 고혈압이 오진될 경우, 항고혈압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약물치료가 이뤄지게 된다. 역으로 고혈압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정말 필요한 환자에게 항고혈압제 치료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혈압측정이 잘되면 고혈압을 조기에 진단해 초기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이환율과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 정확한 혈압측정이 환자의 안전은 물론 비용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부정확한 혈압 측정, 잘못된 진단과 치료의 원인
- 백의고혈압·가면·아침 고혈압 잡아내야

Over-treatment
부정확한 혈압측정은 우선 정상인을 고혈압 환자로 오진해 ‘over-treatment’를 유발할 수 있다. 백의고혈압(white-coat hypertension)이 대표적인데, 진료실에서 측정하는 혈압은 140/90 mmHg를 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를 밑도는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140/90 mmHg부터 약물치료가 권고되는데, 단 한번의 측정치나 진료실 혈압만을 가지고 성급하게 진단을 내릴 경우 실제 혈압이 정상 범주인 환자를 고혈압으로 여겨 과잉치료를 펼치게 된다. 이처럼 혈압의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정상인에게 항고혈압제를 투여하거나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는 환자에게 치료강도를 높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Under-treatment
부정확한 혈압측정에 의한 ‘under-treatment’는 더욱 위험하다. 가면 고혈압(masked hypertension)이라는 특이적 병태가 대표적이다. 진료실 혈압은 정상인데 가정혈압이나 활동혈압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진료실 측정에만 의존하면 고혈압 진단을 놓치거나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환자를 방치하게 된다. 이 경우 고혈압의 진행이 계속돼 표적장기 손상이 악화되고 최종적으로는 심혈관사건 발생을 앞당기는 최악의 결과가 초래된다. 특히, 가면 고혈압은 혈압이 잘 조절되는 경우나 백의 고혈압에 비해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을 초기에 막지 못해 심혈관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 사회·경제적 비용부담의 증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아침 고혈압
대한고혈압학회 ‘혈압 모니터 지침’에 따르면, 아침고혈압은 “기상 후 혈압이 135/85 mmHg 이상이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2시간 이내의 혈압은 그 이하일 때”로 정의한다. 아침에 혈압이 급상승하는 병태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특히, 아침 고혈압이 뇌졸중 발생의 가장 강력한 독립인자이며 심장비대·경동맥비대 등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지침은 “아침 시간대가 고혈압에 의한 심혈관질환 발생의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 때문에 이를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밝히고 있다.

진료실 혈압측정의 한계
이상 살펴본 요인들은 고혈압 치료에 있어 가정혈압 또는 활동혈압의 측정과 모니터링이 왜 필요한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고혈압학회 혈압 모니터 지침은 “혈압 분류는 단순화되는 반면, 고혈압의 종류는 다양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정확히 진단하고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진료실 혈압측정만으로는 역부족인 시대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혈압이 심장이 뛸 때마다, 아침과 저녁, 계절, 잘 때와 깨어 있을 때, 앉았다 일어날 때 등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만큼 진료실에서의 한두 차례 측정치만 가지고는 진단과 치료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가혈압, 활동혈압, 야간혈압, 아침혈압 등 다양한 혈압측정이 요구된다는 것이 지침의 결론이다.



백의고혈압, 정상이던 혈압이 의사 앞에선 상승

백의 고혈압은 일상생활에서는 정상 혈압인데, 의사와 대면한 진료실에서는 유독 “나, 고혈압일세!”하며 치료를 요구한다. 그런데 진료실 혈압만 믿고 성급히 치료를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백의 고혈압은 의사만 보면 혈압이 오르는(?) 환자를 앞세워 진료실에서 일시적으로 고혈압을 유도하고, 결국은 실제 고혈압인 것처럼 의심토록 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단 한번 측정된 혈압만으로는, 이를 실제로 믿어 고혈압 진단을 내리고 치료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백의 고혈압 환자들은 진료실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정상 혈압 범주에 속한다. 결국 백의 고혈압을 걸러내지 못하면 치료가 잘되고 있는 고혈압 환자 뿐만 아니라 정상 혈압으로 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도 결과적으로는 해를 줄 수 있다. 올바른 혈압치료를 위해서는 이 백의 고혈압을 먼저 잡아내야 한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에 따르면, 첫 진료실 혈압측정에서 고혈압을 나타낸 환자가 재차 혈압을 잴 경우 고혈압으로 확진되는 비율은 70% 정도에 해당한다. 나머지 30%는 처음 잰 혈압수치가 백의효과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 한번의 혈압측정값으로 고혈압을 확진한다면, 이들 30%는 불필요한 약물치료를 받게된다.

항고혈압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역시 혈압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백의 고혈압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 경우 표적장기 손상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정상혈압을 보이는 백의 고혈압 환자들은 높은 진료실 혈압에 비해 표적장기 손상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은 불필요한 항고혈압제의 과잉투여로 인한 부작용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진료실 혈압이 180/100 mmHg으로 명백한 고혈압이지만, 실제 주간활동 혈압은 120/80 mmHg인 백의 고혈압 환자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의사가 진료실 혈압만을 가지고 판단하면, 140/90 mmHg 미만을 유지하기 위해 수축기 혈압을 40 mmHg 강압해야 한다. 하지만, 본래의 수축기 혈압을 고려하면 과도한 강압으로 인한 저혈압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올바른 혈압측정을 통해 백의 고혈압의 허상을 벗겨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면고혈압, 의사가 재면 정상인데 일상에선 높은 혈압

고혈압 환자 A씨는 혈압은 잘 조절되는데 반해 표적장기 손상이 지속적으로 관찰돼 담당 의사의 애를 태웠다. 항고혈압제 치료로 혈압은 140/90 mmHg 미만으로 적절히 조절되고 있었다. 하지만 1~2년간의 추적조사 결과, 당연히 낮아져야 할 미세단백뇨 수치가 오히려 상승했던 것.

담당 의사가 진료패턴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이 환자가 대부분 오전에 내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침 일찍 항고혈압제를 복용하고 약효가 정점에 이르는 9~11시 사이에 진료실에서 혈압을 측정하니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담당 의사는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했고, 환자의 진료실 외 혈압이 경계치를 넘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진료실 혈압은 정상이나 병원 밖 일상생활에서는 140/90 mmHg를 넘는 가면 고혈압 환자였다.

고혈압은 아직 절반의 법칙(Rules of Half)의 지배를 받는다. 환자의 절반 가량은 자신이 고혈압인지를 모른다. 알더라도 절반은 치료를 받지 않는다. 치료를 한다 해도 절반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고혈압 환자 중에 실제로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고 있는 경우가 극소수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상황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가면 고혈압이라는 특이적인 병태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잰 혈압은 정상인데, 병원 밖에서는 혈압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가면 고혈압. 진료실 혈압만 가지고 보면 가면 고혈압 환자 역시 혈압이 정상이거나 제대로 조절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면을 쓴 고혈압은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비웃고 있다.

가면고혈압의 유병률은 10~2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정상혈압이거나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 환자 가운데 10~20% 정도는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환자 자신이 고혈압인지 모르는 상태의 가면 고혈압의 경우, 건강진단에서조차 혈압수치가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잡아내 치료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인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서 발현되는 가면 고혈압은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 경우 진료실에서는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게 되고, 결국 환자는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로 예후의 악화를 겪게 된다. 의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확한 혈압측정으로 적절한 치료가 제때에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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