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 환자의 아버지 윤임중 박사

윤임중 문경제일병원장(71·대한산업보건협회장)이 한국인 의사로는 처음 미국국립안전원(National Safety Council)이 뽑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돼 그의 흉상과 업적이 그곳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존된다.

37년간 외길로 진폐증환자의 예방, 진단, 치료, 재활에 진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5일부터 9일까지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리는 산업안전엑스포 기간 중인 8일이다.


이 영광 진폐환자들과

"오늘의 영광은 진폐증환자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내게 이 같은 영예와 기쁨을 준것입니다. 그들을 잠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59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와 예방의학전문의자격 과정을 거쳐 65년 가톨릭의대예방의학교실에 몸담은 이후 줄곧 진폐증 환자들과 더불어 생활해온 그는 지난 98년 정년 이후에도 문경제일병원장으로 진폐증환자 진료에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돌린다.

이 상은 지난 89년 미국립안전원이 안전이나 보건분야 전문가들이 남긴 업적들을 기려, 후세들이 안전한 삶에 참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대부분 미국내 인사들이 수상했으나 2000년부터 문호를 개방했다.

한국인으로는 작년에 장선식씨(노동부 공무원출신)가 처음 수상했다.


산재병원에 자리잡고

가톨릭의대로 갈 당시만 하더라도 진폐증(그 때는 규폐증이라고 불렀다)이 직업병으로인정되지 않은 데다가 연구논문 한편 변변히 없어 황무지에 홀로선 기분이었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조규상 선생님의 추천으로 67년부터 70년까지 3년간 독일 그라프샤프르 소재 진폐증 전문병원과 바흐슈타인 호흡기전문병원으로 유학을 했다.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그는 독·한사전 두 권이 걸레가 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71년 성모병원에 산재병원이 세워진다는 조규상 교수님의 편지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유학하던 병원의 독일인 병원장이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라.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다. 남아서 일해 달라"고 끈질기게 권유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귀국 후 72년 산재병원 직업병과장에 보직된 그는 본격적으로 진폐증환자의 진료와 함께 치료방법의 연구에 몰입했다.

진폐증에 대한 논문이라고는 54년 장성공업소 의무실장이던 고 최영태 박사(연세의대졸, 서울대 미생물학교수)의 유병현황에 관한 것이 유일했다.

외로운 길이지만 이렇게 시작된 연구에는 6,000여마리의 쥐가 실험에 사용됐고 100여편의 진폐증 논문이 나왔다.

그러나 뚜렷한 치료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치료방법 없어 아쉬워

67년 독일의 한 학자가 폴리피릴피리딘-N-옥사이드(PVNO)가 진폐증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획기적인 실험결과를 발표한 이래 임상시험이 세계적으로 실시됐다.

윤박사도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그러나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실험동물에서의 효과가 사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복강내에 침착, 발암 위험성이 있었다. 한시도 치료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않던 어느날 화장실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진폐증이 암처럼 폐조직을 섬유화한다는 사실에 착안, PVNO에 항암제인 사이클로포스프로마이드(엔독산)를 병용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역시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임상에서는 정상폐조직까지 사멸, 치료제로서의 효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윤박사에게는 희망이 있다. 분자생물학을 하는 후배(산재병원 임영, 김경아교수)들이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진력을 하고 있어서 멀지 않아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탄광부시절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10년후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규폐증, 용접공폐증, 석면폐증 등 유사질병은 산업의 발달로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보여져 후배들의 연구결과는 값진 것이 될 것이라고 희망을 접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진단법인 "고해상 흉부단층촬영법(HRCT)"은 임상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의대가 무엇하는 곳이냐?

"어떻게 의사가 됐느냐고?" 윤박사는 미소를 머금고 옛일을 회상한다.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 초·중등학교를 마친 그는 공주고등학교를 나왔다.

건축가가 되려고 서울대공대 원서를 사서 의대지망인 친구 양덕호 군과 나란히 원서작성을 하던 중 잉크가 번져 기재사항이 잘 보이질 않았다.

이때 양군이 의대원서 한 장을 더 내놓고 써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집안인 그가 의대를 함께 가자고 졸라대던 참이었다.

의대가 무엇을 하는지, 더욱이 의대지망이라면서 문리대 의예과를 써 넣는 이유도 모르는 "무지랭이" 시골학생이었다. 어쩔수 없이 양군이 하라는 대로 했다.

잉크는 번지지 않았다. 양군은 숙명이라며 함께 의대지망을 권유, 나란히 합격한 것이다.

그 후 양덕호 씨는 고 장기려 박사의 수재자로 현재 부산에서 의업에 열중하고 있다. 윤박사는 지금도 공사장 옆을 지나며 인부들을 보면 건축사를 꿈꾸며 입시원서로 실랑이를 하던 그때 일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의사란 환자 위한 존재

"후배들이 고생이 많습니다. 사면초가의 외로운 입장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위로와 격려를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저의 심정을 그들은 잘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진폐증환자 진료가 수입과는 거리가 먼 점 때문에 병원이 꺼려하고 더군다나 전공의 지망생도 없어 갈등은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88년부터 시작된 석탄 합리화정책으로 석탄을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330곳이던 탄광이 7곳(종사자 4,000여명)으로 줄었고 79년에 16.1%, 84년에 13.8%이던 유병률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98년까지 환자는 계속 발생했지만 2000년 이후 신환은 가끔 발생한다.

그러나 윤박사는 전국 24곳의 진폐전문병원에서 고군분투 진료에 진력하는 전문의들을자랑스러워 한다.

또 다행스럽게도 공중보건의사들을 진폐전문병원에 파견할 수 있는 법이 정부의 배려로 곧 시행될 것으로 보여져 인력난은 어느 정도 해결될 전망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윤박사는 "의사란 직업이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그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한시도 잊지 말라"고 현재 근무하는 문경제일병원 의사들과 후학들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는 능력이 다하는 날까지 진폐병동 환자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을 것이란다.

윤박사는 오늘도 지역 광부출신 주민 몇몇과 밤 새워 "手談"을 나누려고 기다리는 문경에, 진폐 환자들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사진·김형석 기자 hskim@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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