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들의 성별, 연령, 직업, 학력, 계층,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어떠한 성폭력 피해자도 그 폭력을 유발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피해자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 불평등한 사회에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모든 정신적 물적 지원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헌장은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의 성폭력 피해자 관리헌장-

 
【메디칼 트리뷴 아시아판 2002.7】=최근 우리나라의 패션업체 인따르시아가 성범죄를 예방하고 순간적 감정에 의한 성행위를 자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시했다는 속옷 "엄중단속"이 성폭력의 잘못된 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이유로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엄중단속"은 금속줄에 장금장치가 달려있어 특수 제작한 열쇠로만 열수 있고, 줄이 조여진 상태에서는 절대로 벗길 수 없다는 기능성 팬티.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와같은 "엄중단속"의 광고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라는 잘못된 통념을 강화시키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자기보호와 저항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성폭력의 잘못된 관념을 강화시킨다고 비난했다.

또 본지 114호(2002년 8월 29일자)에 실린 박금자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대표(박금자산부인과 원장)의 "성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길"이라는 칼럼에서는 성폭력 피해자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 칼럼에서 박대표는 의료인들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올바른 인식을 갖기를 당부했다. 박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성폭력 사건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메디칼 트리뷴 아시아판(2002년 7월호)에서는 의료인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대할 때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레이시아의 경우를 중심으로 기사가 실렸다.

성폭력 피해자를 다루는 것은 의료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말레이시아의 Malaya 대학 성연구 프로그램 라이 수왓 얀 연구원은 "강간 보고서-말레이시아의 강간 개관"에서 "의사들이 피해자 자신에게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지우는 그 어떠한 뉘앙스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서 뉘앙스란 "왜 그 남자랑 같이 있었는가?", "옷차림이 왜 그러한가"라는 등의 말이다.

라이 연구원은 "강간을 당했을 때, 여성의 대부분이 자신의 행동을 탓하는 경향이 크다"라며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또, "피해자가 어떻게 해서 강간을 당하게 됐는지 등과 같은 의료행위와 관련이 없는 정보의 질문은 의사들이 알아야할 사항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도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했을 때 "그럴 만한 행동을 했으니 그런거겠지"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여성의 노출과 성폭력을 연관지어 문제삼고 있는 매스컴의 책임도 크며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잘못된 인식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피해자의 옷차림·말이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결코 정당화시킬 수는 없으며 이는 여성을 한 인간이 아닌 남성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풍조가 그 원인이다.

"법적 대응도 의사가 담당해야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가 강간을 피할 수 있었는지아닌지 하는 등의 판단도 피해야 한다. 피해자가 남자와 사귀고 있었는지 아닌지 또는 피해자가 당시에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 이러한 것들이 의사가 고려해야할 사항도 아니다."

강간 테스트를 위한 검사가 피해자에게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며 라이 연구원은 "검사전에 충분히 피해자들에게 왜 검사가 필요하며 어떤 검사들을 시행할 것인지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고 의사들에게 권고했다.

"환자가 염려하는 바를 의사들은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자는 또다른 강간을 당할 수도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상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피해자가 매우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경우,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 한 검사전 먼저 상담을 실시한다고 했다.

"상담이 모든 성폭력 사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며 말레이시아에서는 환자가 정신상담이 필요한지에 대한 결정권은 의사가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는 이상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병원에서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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