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가 천연물신약으로 혼돈에 빠져 들었다. 대규모 집회를 열어 반대 투쟁을 벌이고 한편에선 내부갈등에 홍역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한의계 내-외부 갈등의 원인과 문제 등을 짚어봤다.

천연물신약, 한의계 내·외부 투쟁의 ‘발단’

2001년 SK케미칼에서 골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이 출시, 제품에는 위령선, 과루근, 하고초 등의 한약재로 구성돼 식약청으로부터 천연물신약 허가를 받았다. 이어 2002년 천연물신약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 중인 스티렌캡슐(동아제약)은 애엽이라는 한약재가 주성분으로, 위염치료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더불어 2003년 봉독으로 구성된 아피톡신(구주제약)도 골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천연물신약으로 인정받았다.

이들 3제품이 출시됐을 때까지만 해도 천연물신약에 대한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10여년이 흐른 2010년이 돼서야 논란의 불씨가 지펴졌다.

천연물신약 문제제기는 201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의료실천연합회라는 한의계의 한 단체가 식약청의 한약·생약제제 품목허가 고시분리 개정에 대해 항의를 표명하는 다량의 팩스를 보냈다.

이후 참실련은 천연물신약 이슈를 지속적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2011년 1~2월까지 언론 등에 관련 내용을 기고했다. 한의계의 항의에도 식약청은 같은해 3월 황련과 아이비엽 등의 한약재가 든 시네츄라시럽(안국약품)을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는 천연물신약으로, 5월 현호색, 견우자로 구성된 모티리톤정(동아제약)을 기능성소화불량증에 효과가 있는 천연물신약으로 승인했다.

독자적인 식약청의 행보에 반발한 한의계는 2011년 6월부터 제제확대위원회와 한의협의 보험팀 등에서 한약제제 보험확대 방안과 천연물신약 처방권 확보 방안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주장하면서 한의협 내에서 의약분업을 제시해 갈등이 유발됐다. 이어 한의계에서 천연물신약에 대한 이견이 있음이 감지됐다. 한의협에서는 천연물신약 사용 확대를 위한 TF팀을 구성했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회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협회를 비판했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항의했다.

그사이 2011년 9월 구척, 두충, 흑두, 우슬, 오가피, 방풍이 함유된 신바로캡슐(녹십자)이, 2012년 3월 당귀, 모과, 방풍, 속단, 오가피, 우슬,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 등 다량의 한약재가 들어간 레일라정(한국PMG)이 각각 골관절염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더불어 대한의사협회는 천연물신약의 한의사 처방 여부에 대해 복지부에 질의하면서 천연물신약을 둘러싼 삼파전이 시작됐다.

한의협은 논의를 통해 양-한 공동사용론을 폐기하고 한의사 배타적 사용론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5월부터 한의계 내부 논쟁이 격화됐고, 급기야 9월 대의원 임시총회가 열렸다. 10월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이 정확한 예산 파악 및 정책 관리 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법령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식약청장은 법령개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현재 협회의 행보에 반대하는 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돼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 시범 확대건으로 임시총회를 열었고, 결국 약사가 참여하는 시범사업을 유보하기로 결론내렸다. 더불어 대선시기를 전후해서는 천연물신약과 한약제제 등에 대한 공약 작업도 진행됐다. 천연물신약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의계 내부에 여러 단체가 결성됐으나, 오히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내분만 일어나는 사태로 변질됐다. 실제 이러한 집행부와 일반 회원들의 관점 차이로 집행부 탄핵과 관련한 임시총회가 4번이나 열리게 된 것이다.

즉 천연물신약으로 시작된 식약청과 한의계 투쟁이 김정곤 한의협회장이 이끄는 40대 집행부와 한의사비대위-참실련-평의원협의회 간의 갈등으로 번진 셈이다.

참실련·평의협 지지받은 비대위, 한의협과는 다른 행보 펼쳐

비대위는 국회, 식약청 등을 상대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통보했고, 대규모 집회도 여러 차례 개최했다. 이와 달리 40대 집행부는 천연물신약 정책의 전면 수정보다는 처방권 확보에 집중했다. 또한 의사들과의 싸움에 대해서도 비대위는 적극적인 투쟁을 선언한 반면, 한의협 측은 지나친 투쟁은 안 된다고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이같은 투쟁 선언을 감행한 비대위는 지난 17일 서울역 광장에서 1만여명의 한의사와 2000여명의 한의대생이 한 자리에 모여 천연물신약 반대를 외쳤다. 더불어 정부의 불공정 정책을 규탄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에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16개시도지부 비대위원장들을 비롯해 전국의 한의사들이 참가했으며, 이에 따라 대다수 한의사가 휴진을 감행했다. 또한 경희한의대를 포함한 전국 12개 한의대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같은 대규모 궐기대회는 지난해 10월 오송 식약청 집회, 여의도 집회, 11월 부산집회, 12월 광주 집회 등 그간 4차례 열린 바 있다. 이들은 기존에 있던 한약을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 의사들에게 처방권을 주는 상황을 반대하면서, 독립한의약법과 한의약청 설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천연물신약 논란도 한의학의 특성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정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만큼 앞으로 한의학 정책은 한의학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식약청이 식약처로 승격됐으니 식약청 안에 있는 한의학 관련 부서가 청으로 승격할 것을 촉구했다. 한의학의 전통을 발전시키려면 법은 물론 제도 및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앞으로도 비대위는 한의협 행보와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대통령인수위, 식약청, 여론을 상대로 천연물신약에 대한 반대 입장을 펼치는 동시에 한의학 발전에 관한 법률과 기관을 마련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힘쓴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30년간 한약제제의 품목수가 확대되지 않는 점, 수가 인상이 되지 않은 점, 현대의료기 사용에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점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며, 약사, 한약사가 함께 참여하는 첩약의 건보 시범사업이 보건복지부, 심평원 등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돼 이에 대한 항의도 있을 전망이다.

한편 비대위는 지난해말 서울행정법원에 천연물신약 고시 무효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매주 일간지 광고 등을 통해 이를 알리는 등 강경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한의협 측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한의계가 힘을 키우고 민족의학발전을 위한 기전이 마련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내외부 분란을 일으키는 행보에는 다소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 관계자는 “대화로 소통의 창구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나치게 적을 만드는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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