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보상 체계로 이직률 낮아

구성원 제안 존중하고 권한도 제공



필자는 2007년에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존스홉킨스병원에서 1년간 성인중환자의학 전임의 과정을 마친 경험이 있다.

미국이 비록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사용하고 있고 그 효율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을 받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의료 시스템이 발달한 나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와 미국 중환자실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3가지이다.

첫째, 미국의 중환자실은 중환자 전담 의료팀이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대형병원의 경우 전담의료팀이 있으나 이 중 24시간 모든 중환자실을 전담팀이 도맡아 중환자를 돌보는 병원은 없다.

전담의료팀은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된다. 존스홉킨스병원은 중환자실마다 담당 약사, 호흡기치료사 등 의사, 간호사를 뒷받침해주는 직군들이 있어 환자를 보다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가 내과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세부사항까지는 모르고, 외과 전문의가 모든 종류의 수술을 일정 수준 이상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중환자의학 전문의도 모든 분야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약사, 영양사, 호흡기치료사, 재활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자신의 분야에 특화된 직군이 전담팀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면 환자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회진 중 논의를 거쳐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 또는 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또한 환자를 전담해 중환자실 내에서 직접, 지속적으로 감시하므로 회진 중 세웠던 계획이 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얼마나 잘 진척되고 있는지, 진척되고 있지 않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여러 장기에 복합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문제들이 연관돼 있기에 이러한 다학제적 접근이 더욱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의견을 모아 최종적인 치료 목표 및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중환자의학 전문의의 몫이다.

둘째, 미국의 중환자실은 치료에 대한 보상이 현실적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 전체 의료비의 5%는 중환자실에서 발생한다.

중환자실 환자의 치료에 대한 보상 체계나 수준은 주마다, 보험회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중증도에 따라서 치료행위마다 수가가 지급된다. 미국 중환자의학 전문의 연봉은 미국 전체 전문의의 평균 이상이며 중환자실 근무 간호사의 경우 경력, 요일,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시간당 35달러에서 최고 75달러까지 지급된다.

실제로 한달 7200달러(시간당 75달러 × 12시간 × 8일)를 받고 주말 밤근무(2교대, 12시간)만 하는 평일은 모두 쉬는 중환자실 간호사도 있다.

근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적어 중환자실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이 문제가 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중환자실 근무 경력 20년, 30년 된 간호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환자의학 전담팀이 있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사망률, 합병증 발생률이 낮고, 중환자실 재원 기간이 짧다는 보고를 근거로 보험회사들이 중환자의학 전문의 유무 및 근무 형태(24시간 전담 vs 협진 체제)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지급하기 시작했다.

일부 보험회사들은 중환자의학 전문의가 없는 중환자실 입원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아예 지급하지 않기도 한다.

셋째, 중환자실 분위기 변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다.

전통적으로 병원에서는 상하 관계가 강조돼 왔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나라 같이 모든 면에서 상하 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경우 직무의 성격상 상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동일하다. 이런 관계는 종종 실수 또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지적하거나 수정을 요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환자가 한해 3만~5만명이라는 보고가 2000년도에 나온 이후, 경직된 분위기가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보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심정맥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중심정맥관은 대다수의 중환자들이 필요로 하지만 감염이라는 합병증이 잘 발생한다. 중심정맥관 감염이 발생하게 되면 환자의 사망률, 중환자실 재원 기간, 의료비가 모두 증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여러 처치들을 묶어 시행했더니 감염 발생률이 0으로 감소했다는 보고는 널리 회자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이러한 처치 묶음이 시행되기 전에 중환자실의 분위기를 개선해 의사가 중심정맥관 시술 중 묶음 처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긴다면 시술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목상 권한이 아니라, 간호사가 눈치 보거나 주눅들지 않을 정도로 병원 또는 중환자실 집행부가 지지를 표방한다. 이런 사례가 하나씩 쌓이는 중환자실은 이후 비효율이나 반복되는 실수에 대해 구성원들이 의견을 제시하기 쉬워지고 의견이 존중 받는 인상을 주므로 여러 면에서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한 혜택이 환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 볼 때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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