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인턴들이 하루동안 ‘조용한 파업’을 진행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아산병원 인턴 151명은 16일 성명서를 통해 “정맥 채혈, A-line 채혈 등 인턴 본연업무가 아닌 샘플링 업무가 과도하다”며 “올 초부터 병원에 수차례 개선을 요구했으나,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대형병원들은 샘플링만 하는 간호사를 별도 채용하는 등 대체인력이 있지만, 가뜩이나 환자가 많은 아산병원에서는 오히려 인턴들의 몫으로 떠안겨진다는 것. 더욱이 일반적인 샘플링 외에도 응급 샘플링이나 주말과 공휴일 샘플링 등까지 하다보면 하루에 50명이상은 기본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이번 파업은 ‘전공의 노조’ 설립 시점과 맞물려 큰 화제가 될 뻔했다. 지난 15일 전공의노조총회 출범을 앞두고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보건의료노조가 공식 간담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파업 불과 하루 전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전협엔 알리지 않았다. 인턴들은 환자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와 당장 수련이 한달 반 밖에 남지 않은 부담 등을 이유로 "고요 속의 외침"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턴 내에서도 파업에 대한 반발이 있었으나, 후배들을 위한 주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하루 뒤인 17일 병원 내 분위기를 살펴본 결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 “파업 이야긴 처음 듣는다”는 등의 반응이 상당했다. 다른 한편에선 성명서에 대한 내용 정도만 파악했다며 “파업이 아니라, 업무가 많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하소연 정도였다”고 평했다.

병원 관계자는 “장기화 조짐이 있는 파업이 아닌, 현 업무에 대한 건의 정도였다. 인턴들이 모두 정상업무로 돌아가 있으며, 큰 문제없이 봉합된 상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업무 과부하도 중환자실, 장기이식 등 중증환자 파트에서 많이 나왔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환자들에 불편을 초래하는 상황에서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기 마련”이라며, “당장은 인턴들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추후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은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턴 업무‘ 의사 선후배 상당한 온도차

이번 인턴 파업을 토대로 의료계 여론을 확인해본 결과, 의사 선후배 세대간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대체로 선배(40~50대 이상)들은 우려, 후배(20~30대)들은 동조의 뜻을 전했다.

한 개원의는 “전공의들이 PA제도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샘플링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은 엄밀히 모순”이라며 “간호사 등 대체인력에 일을 몰아주게 되는 것으로, 당장만 생각한 채 연계된 진료나 중증 진료를 생각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다른 봉직의는 “인턴제 자체가 그저 병원들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에 불과하다”며 “분명히 의학교육을 받고 수련하는 과정일 뿐이지, 반복되는 샘플링을 위해 존재하는 직역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여타병원 인턴들도 아침마다 샘플링을 수십개씩 하고 있다는 제보도 흘러나왔다. 아산병원 규모이기 때문에 다수의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부러움도 있었다. 일각에선 조직이 너무 크고 전공의가 많은 병원에서 오히려 전공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록 이번 파업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2년 뒤 인턴제 폐지를 앞둔 시점에서 인턴, 레지던트들의 업무 재정립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교훈은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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