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에 이어 5대암 적정성 평가 실시 예고가 발표된 가운데, 일각에서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닌 서류작업에 급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말 275개 병원을 대상으로 대장암 적정성 평가를 실시했다. 주요 평가지표로는 △병원 내 혈액종양내과, 외과, 병리과 등 전문인력의 구성 여부 △수술 전 통증 평가율 △수술 전 정밀 검사 시행 여부 △절제술의 완전성 평가 기록률 △수술 후 방사선 치료율(직장암) △평균 입원일수 △수술사망률(원내 사망 및 수술 후 30일내 사망) 등이다.

종합점수 산출기관은 129개 기관으로, 1등급 44개(34.1%) 기관, 2등급 43개(33.3%) 기관, 3등급 16개(20.2%) 기관, 4등급 8개 (6.2%)기관, 5등급 8개 (6.2%)기관으로 나타났다. 적정성 평가를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5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은 불명예를 안게 됐다.

문제는 이번 대장암을 시작으로 유방암, 폐암, 위암, 간암 등 5대 암 통합 적정성 검사를 시행한다는데 있다. 심평원 이영희 심사부 차장은 "지난해 위암과 간암의 적정성 평가를 실시할 토대를 만들기 위해 기준을 개발했으며, 폐암 적정성 평가에 대한 예비평가를 진행했다"며 "올해 위암과 간암에 대한 예비조사를 실시하며, 내년부터 심평원은 5대 암의 적정성 평가를 통합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 방법을 살펴보면, 청구명세서를 이용해 평가 대상자를 선정한다. 웹 기반의 평가자료 수집시스템 이용해 평가 자료를 수집한다. 조사자료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 건 중에서 표본을 추출, 의무기록과 대조한다.

즉, 의무기록이 중요하며 세세한 기록을 적어두는 것이 평가에 큰 의미가 있게 된다. 확대되는 평가항목에 청구된 상병, 평가대상수술 시행 여부, 대장암 확진 여부 등 서류상의 면밀한 작업이 더해지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A병원 대장암센터 교수는 "1등급을 받긴 했지만, 몇날 며칠 스탭들이 서류 작업에 매달려야만 했다. 적정성 평가는 서류 작업을 누가 얼마나 잘했는지가 관건"이라며 "치료의 질을 높이는 평가가 필요하지, 완벽하게 서류 작업을 하는 평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내시경적 절제에서 "대장내시경검사에서 깊은 점막하층을 침범하는 점막하암을 시사하는 소견이 없으며, 기술적으로 병변의 완전 절제가능성이 높아아 한다" 등의 조건이 달린다. 의료진이 경험적으로 일단 시술을 진행하고 뒤늦게 서류작업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심지어 조작도 가능하다. B병원 외과 교수는 "용량이나 용법에 대한 권고안까지 나오면서 이전에 시행했던 검사와 치료에 대한 EMR과서류를 조작할 수도 있다"며 "결국 누가 얼마나 서류를 보기좋게 잘 꾸미느냐가 관건이며, 심사 인력이 많은 곳이 유리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형 암센터를 갖추고 환자가 많은 병원들이 치료 질 자체보단, 다른 병원보다 많은 인력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성적만 좋게 가져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가지침에 참여한 김희철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 교수는 "적정성 평가를 하는 것은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지, 병원들의 업무를 과중하게 하거나 심사 때문에 치료의 중요도를 바꾸는 건은 아니다"라며 "환자 관리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평가항목은 자중해야 하며, 패널티를 주는 심평원의 방식도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