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던지 초심을 잃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떡인 기억이 있다.

지난 의과대학 6년과 인턴 1년 그리고 전공의 4년간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의사로서의 길을 택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의대를 지원한 그 순간부터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수련의 길로 들어선 뒤 실제적인 환자진료에 맞닥뜨려지면 초롱했던 초심이라도 과중한 업무에 눌려 피곤한 몸에 마음도 흐려지게 마련이다.

누가 열나는 아이를 업고 이른 새벽에 달려온 어머니의 간절한 심정을 모를까?

누가 오랜 항암치료에 지친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하지만 그런 사소한 친절도 웬만한 인내와 사랑이 없으면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환자와 일차로 접촉하는 전공의 일수록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러운 것은 얼마 전 미국 AMA에서 전공의의 근무량을 제한하자는 결의가 있었다.

전공의의 근무량을 적절히 제한함으로써 교육시간을 확보하여 진료효율을 높이고 의료과실을 줄임으로써 결국 환자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힘들고 위험하다 하여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소위 비인기과에 대한 정부 보조비 지급안이 부결된 우리의 현실에서 또 출산 휴가가 3개월로 바뀌었어도 대체인력이 없어 그저 눈치만 보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저 부러운 남의 나라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이런 열악한 수련환경 속에서 게다가 수요를 넘치는 과잉 의사인력으로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가?"하는 고민보다도 좀더 편하고 좀더 나은 보수가 어디 있는지 고민하게 되기 쉽다.

얼마 전 이런 일상에 젖은 병원을 떠나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우즈베키스탄에 갈 기회가 있었다.

11년 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경제개발의 기치를 높이며 옛 실크로드의 부흥을 꿈꾸는 중앙아시아의 그 나라는 아직도 메마른 날씨만큼이나 생활의 질도 열악하였다.

그 곳에서의 2박 3일간의 의료 활동 중에서 아파도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의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진료하는 우리에게 표하는 진심 어린 감사의 눈빛도 엿볼 수있었다.

의사가 있어야 하는 존재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잊어가던 첫 마음가짐도 함께….

그곳에서 봉사하시는 선생님이 슬며시 건넨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한국에 의사 몇 없어도 별일 없겠지만 이곳에 선 의사 몇 명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앞으로 의사로서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어야할지는 알 것 같다.

많은 전공의들이 의업의 길을 택한 각자의 초심이 있을 터인데 과중한 업무에 지칠 지라도 모두가 그 초심을 잊지 말고 끝까지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런 바람을 어렵지 않게 실현시켜줄 의료상황이 빨리 올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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