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학회, 14일 학술대회 통해 지원 촉구

1년에 천만명 가량이 이용하고 있는 응급실. 전문가들은 짧은 역사에도 부룩하고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도 누구나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와 대한외상학회, 대한심장학회, 한국응급구조학회, 병원응급간호사회, 대한재난응급의료협회, 소아응급연구회, 한국항공응급의료학회가 14일 공동으로 "응급의료체계 선진화 촉구 신년 학술대회"를 열고 현재의 문제점 분석 및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자리를 가졌다.

이들 학회는 한목소리로 관련 기관의 유기적인 협조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 실현, 현실적인 지원의 필요성 등을 주장했다.


이해관계인의 불만사항 해소부터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 이사장(충남의대 교수)은 기조 강연을 통해 "한국의 응급의료체계는 하드웨어는 모두 구축해놓은 상태지만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가장 상위 기관인 소방방재청과 보건복지부간의 상호 협력이 부족하고 전문가 단체의 의견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위에 있는 119 구급대나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정보센터 등도 마찬가지다. 대책 수립단계에서 유관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못하고 피드백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포퓰리즘적인 의료제도가 남발하고 의료전달체계가 파괴되고 있다.

유 이사장은 "모든 병원이 모든 환자를 24시간 커버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다 고정자산인 만큼 병원 간 이송이 원활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병원 전단계와 병원 단계로만 분류해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 수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는데 미흡하다는 것.

그는 "응급의료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응급의료체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인의 불만사항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국민과 의료기관 및 의료인, 정부 및 지자체 등 이해관계가 모두의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정권이나 담당자가 바껴도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정책 수립이 있어야 한다"면서 "더불어 관련 유관기관을 종합적으로 기획, 관리, 운영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상설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아응급센터와 응급의료체계의 연계

전체 응급의료센터 방문환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소아응급 환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소아응급의료의 경우 전혀 수익모델이 되지 않아 자율에 맞길 경우 투자할 병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소아응급연구회 곽영호 회장(서울의대 교수)은 "우리나라에서 소아 전용 처치 및 모니터링 구역이나 소아 전용 소생 구역이 없는 응급의료기관이 90% 이상이고, 소아 중환자가 입원 가능한 공간이 없거나 소아청소년과의 협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경우도 많다"면서 "소아 환자의 특성상 성인과 다른 범주화나 지역화가 있어야 하고 적절한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모두 갖춘 사람은 10명 이하이며 소아응급연구회에 소속된 의사도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어린이 전용 응급실 중심으로 근무자가 증가하고 있어 전문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곽 회장은 "소아과학회와 응급의학회 양 학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소아응급 분과전문의를 도입해 소아응급전문센터에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24시간 전문의가 진료하는 전문센터와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하고 적절히 전원할 수 있는 기본센터 등 2단계의 범주화와 어린이 인구, 소아응급환자 수, 소아응급중환자 수에 기반한 지역화 전략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아는 상태가 급변할 수 있는 만큼 경증이라도 이를 확인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곽 회장은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의 야간 개원을 지원해 경증 환자가 1차 방문 할 수 있도록 하고 개원의와 응급센터간의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선결 조건으로 수가 현실화와 시설, 장비, 인력에 대한 정책적 지원 마련을 촉구했다.


총리실 산하 행정기관으로 역할 강화해야

울산대병원 응급의학과 홍은석 교수는 응급의료 관련 조직을 동전의 양면에 비유하며 이를 총체적을 관리할 거버넌스(Governance) 구축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법과 예산을 보건복지부가, 병원 전 구급서비스 정책은 소방방재청이, 실제 예산 집행 및 운영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구조로 돼 있다. 중앙응급의료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통합조정기능을 못하고 형식적인 위원회로 남아 있다. 따라서 중앙응급의료센터도 안정적인 평가사업이나 연구사업, 지원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 교수는 "복잡한 조직과 관계로 이원화돼 있어 환자가 발생한 현장 지역사외 자원을 이용한 일차반응, 이송 중 적절한 처치, 적정 이송의 선정 및 이송, 필요할 경우 상급병원으로의 전원 등 전반적인 체계의 효율적 구축이 어렵고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대로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와 소방방재청 구조구급과를 유지할 경우 대안으로 중앙응급위원회를 총리실 산하 단체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위원회를 별도의 행정조직으로 두면서 심의 의결 기능을 강화하고 상설기구화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위원회 산하단체로 국가응급의료 관리원을 만들어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업무를 이전하고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응급의료과와 구조구급과를 통합하는 경우엔 총리실 산하의 응급의료청을 신설해 인적 물전 자원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청의 역할로는 △재난 시 의료행위에 대해 행안부 재난 업무 △평상 시 환자 이송에 관련된 소방방재청 업무 △도서지역 주민의 응급관련 후송업무를 위한 해양 경찰 업무 △산악지역 응급환자 후송과 관련된 산림청 업무 △재난이나 평상 시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국방부 소속 항공단 업무 등 정부 각 부처별 업무를 조율하고 관장하는 안이 제시됐다.

또 지역응급의료 강화를 위해 지역응급의료위원회 조직을 상설 행정조직으로 개편하고, 병원단계 및 병원전단계 평가 업무와 지역 특색에 맞는 응급의료를 실행 및 기획하고 평가하는 방안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지금처럼 분리된 조직에서는 국민의 희생이 나올 수 밖에 없다"면서 "국가의 최대 기본의무는 국민의 생명보호이고 국민 복지 해결은 응급의료체계 안정화로부터 시작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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