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현장' 응급의료 체계 살려라<외상센터>


1. 외상센터-지원 내용·배경

기대컸던 '이국종법' 예산 대폭 축소
복지부, 예산부족 핑계 총 규모 6000억 →2000억원으로 번복



2011년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의 석해균 선장 치료 사건 이후 외상이 사회적인 관심으로 떠올랐다. 국회에서도 외상센터 지원을 담은 '이국종법'이 발의됐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외상을 전담하는 이들은 여전히 힘들고 외상센터는 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차례 선정이 끝난 권역외상센터 현황과 그동안의 추진 배경, 향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 등을 알아본다.


365일 24시간 응급수술 가능

중증 외상센터는 전국 17곳 주요 대형병원(2곳은 국립중앙기관)에 지정, 설립된다. 센터를 통해 365일 24시간 응급수술 준비체계 운영과 중환자 전용 병상을 가동하게 되며, 교통사고·추락에 의한 다발성골절·출혈 등에 대해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장비·인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미국 203개소, 독일 90개소, 일본 22개소, 영국 4개소가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는 이유로 추진됐다.

보건복지부는 "외상센터 도입 후 미국은 34%에서 15%로, 캐나다는 52%에서 18%, 독일은 40%에서 20%로 예방가능 사망률을 낮췄다"면서 "우리나라도 현재 외상환자 예방가능 사망률 35.2%(2010년)를 20%대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외상전용 중환자실과 전문의사 부족 해소를 위해 2016년까지 2000억원을 집중 투자, 중증외상환자 치료환경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외상전용 중환자실·혈관조영실 등 외상전용 시설장비 설치에 80억원, 외상전담 전문의 충원계획(최대 23명)에 따라 매년 연차적으로 7~27억원의 인건비를 지원하게 된다. 센터가 설치되는 의료기관은 전용수술실 2개 이상, 40병상 이상 전용병동 등을 갖춰야 하며, 3교대 4개조 외상팀(9명)을 구성해야 한다.

이에 따라 2016년까지 650개 중환자 전용 병상에서 2만명의 외상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센터 당 80억원…지역별 나눠먹기식

그러나 이번 센터 지원이 확정되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이국종법'이라 불리던 중증외상센터 법안은 지금과 규모 자체가 달랐다.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중증외상센터 6곳을 신설하고, 개소당 시설·장비 비용 745억 원과 운영적자 보전비용 146억원 등 약 1000억원을 전체 6개소에 총 6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확정해온 것이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예방가능한 외상사망률을 현재 35%에서 20%로 감소시키겠다고 밝혔던 것.

결국 복지부는 예산 타당성 부족 이유로 개소당 시설·장비에 80억원, 연간 인건비 7억∼27억원 등 87∼107억원을 16곳에 지원해 총 2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개소당 10분의 1 수준으로 외상센터 설립 규모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이에 국회 주승용 의원은 복지위 활동 당시 "생존 가능한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진료를 하지 않고 중증외상 환자에 전담하는 인력과 전담 시설 등이 항상 준비돼야 한다"며, "소규모 외상센터는 이러한 인력과 시설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며, 소규모 외상센터 16개를 설립하는 방안은 수천억원을 투자하면서도 실제 중증외상환자를 살릴 수 없는 최악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이 밝혔듯 지원액이 적은 것은 치명적이다. 중증외상센터 소속 30명 가운데 23명에 대해 인건비를 지원하지만, 40병상을 가동할 경우 기본적으로 간호사가 80명이 필요하다. 즉, 나머지 모든 것은 병원이 알아서 해야한다. 운영지침 등이 구체화돼야 의료기관으로서도 적극적인 참여를 결정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시설 투자에만 급급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증환자치료에 반영되고 있는 건보수가로는 정부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적자가 불을 보듯 훤하다는 측면에서 운영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국종 교수는 "센터 1곳당 80억원의 시설비를 지원해 주는 식의 중증외상센터는 지역별 나눠먹기에 불과하며, 지속적인 센터 운영을 담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외상학회 관계자도 "적정 인력 확보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사이 한정된 인력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더욱이 외상센터 지정을 받지 않으면 그나마 지원조차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2. 외상센터-현황

병원마다 외상 끌어안기…운영 효과 확인
중증·다발성 환자 급증 …2016년까지 전국 17개소에 지원


어려움 속에서도 외상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금이 발표되자 병원들은 저마다 '외상 끌어안기'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실제 관심만큼이나 치료효과도 좋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을지대병원은 중증외상센터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구축한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중재시술 영상의학과, 중환자의학과 등 중증외상 관련 각 진료과의 전문의 상주 △콜제도를 통한 24시간, 365일 비상대기 체제 구축 △중증외상 환자 관리 프로그램 개발 △중증외상 환자 내원시 모든 당직 의사에게 환자의 체온·맥박·호흡·혈압 등의 신체 기능의 변화와 진단 등 중요 정보를 전달하는 SMS 중증외상 환자 초기 호출 시스템을 개발, 운영했다.

응급실 체류 ·수술대기 시간 크게 단축

그 결과, 중증외상환자의 응급실 체류 시간과 수술대기 시간이 전년도 대비 월 평균 182분, 149분에서 지난 한달 동안은 85분, 92분으로 각각 97분, 57분이나 크게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을지대병원 응급의학과 황정주 교수는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대한 시스템 개발 및 구축으로 관련 진료과 전문의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면서 외상환자에 대한 빠른 치료 결정과 응급실 내 체류시간의 감소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조선대병원은 365응급외상팀을 설치, 다발성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중증 외상환자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진료 및 검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각 분야 전문의의 효율적 진료 체제를 갖췄다.

15개 진료과 전문의 위주로 꾸려진 외상팀은 다발성 외상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게 되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1차적으로 진료 및 검사를 한다. 이후 상태에 따라 대기 중인 각 과의 의료진과 협진을 해 신속하게 수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외상팀이 구성된 이후 외상전문응급의료센터의 중증 외상 및 다발성 외상 환자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측은 "외상 환자의 증가폭은 크지 않았지만 그 중 중증 외상환자 수는 246명에서 401명으로 무려 63%가 늘었다"며 "다발성 외상환자는 755명에서 1385명으로 83%의 환자가 급증했고, 외상 환자 사망율은 전년도에 비해 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환자들 인식 개선은 물론, 지역에서 가장 치료가 어려울 때 찾는 '4차 병원' 이미지를 갖는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공모를 거쳐 5곳의 권역외상센터가 11월에 최종 확정됐다. 21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 13개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공모 대상으로, 최근 2년간(2010~2011)의 중증외상환자 진료실적 등 의료기관의 역량과 권역외상센터 설치·운영 계획 등을 평가에 반영해 이뤄졌다.

권역 외상센터 5곳 최종 확정

서울지역은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시 중증외상센터 건립 예정이며,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부산대병원이 외상센터 건립 중(2008~2013)이어서 공모에서 제외됐다. 조건부 지정 기관(2개소)과 응급의료기관 법정기준 미충족 기관(1개소)도 공모에서 제외됐다. 앞서 제시된 대로 외상전용 중환자실, 수술실, 입원병상 확충 등 외상전용 시설장비 설치에 80억원, 외상전담 전문의 충원계획에 따라 매년 7억~27억원(최대 23명)까지 연차적으로 인건비가 국비도 지원된다.

여기에는 가천대길병원, 경북대병원, 단국대병원, 목포한국병원, 연세대원주기독병원 등 5곳이 최종 선정됐다. 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 사업 대상기관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중증외상환자에게 응급수술 등 최적의 치료를 제공,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장애 발생 예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주대병원 탈락 이변

선정 명단에서 보듯, 정작 아주대병원은 탈락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이국종법'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외면된 것이다. 각종 심사 의혹 속에 김문수 경기도지사, 국회 이언주 의원 등까지 나서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환자 치료의 상징이 됐음에도 이를 외면한 것"이라며 "심사결과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복지부 정은경 응급의학과장은 "권역별로 구분해 투명한 평가 절차를 거쳐 선정됐다"며 "의료진의 경험과 우수성뿐만 아니라, 중증외상환자 진료를 위한 병원 전체의 시스템과 향후 미래 계획을 종합적으로 다뤄 평가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지원사업은 2016년까지 전국 17개소에 순차적으로 확대할 예정이고 올해 4개소를 추가로 선정하기 위해 소요예산 편성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라며 "권역외상센터가 포함되지 않은 경기도를 비롯한 미선정 시·도를 대상으로 추가 배치되도록 선정평가단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선정이라는 확답은 받았지만, 의혹이 완전히 가시진 못한 상태다.

3. 외상센터- 과제
"지정 받았다고 환호성은 아직 일러"
전문의·운영 지원 등 하드웨어 아닌 소프트웨어가 필요


당장 선정된 병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외상센터 재정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1999년 독립된 건물의 응급의료센터를 설립했으며, 서해 도서지역을 아우르는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지난 10년간 서해안 및 수도권 지역의 응급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발표했다.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옥상 헬리패드부터 응급 전용 엘리베이터, 수술실 등 응급환자에 최적화된 원스톱 시스템도 자랑했다.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진료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됨에 따라 이미 5년 전부터 중증외상센터 설립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필요 인력과 시설, 장비 등을 확충해왔다는 것. 지난해 9월부터는 닥터헬기 운행을 시작, 1년간 160여 차례 환자를 실어 날랐다.

이명철 원장은 "10년간 가천대 길병원이 쌓아온 노하우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며 "수도권 중심 권역외상센터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중증외상센터의 모델을 제시하고 외상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원주기독병원은 시설과 인력 채용에 여념이 없다. 우선 지상 3층, 지하 1층에 4527㎡(1372평) 규모의 외상센터 건물을 신축하고, 외상전용 수술실 2실과 외상전용 중환자실(20병상), 외상전용 병동(40병상) 등의 시설과 더불어 혈관조영기, 초음파기 등의 검사 및 치료장비를 외상환자 전용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권역외상센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내년에 외상관련 전문의 8명을 신규로 채용하고 향후 5년간 총 28명의 전담 전문의를 채용할 계획이다. 국립중앙의료원, 부산대병원 등 이미 외상센터가 지정된 국립병원은 물론 이번에 탈락한 아주대병원, 의정부 성모병원 등도 외상을 한결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력·운영 같은 실질적 지원 필요

그러나 여전히 문제되는 것은 인력, 운영비 지원이다. 인력을 충원하기로 결정했더라도 실제로 아직 외상 세부전문의가 부족하다 보니 마땅한 인력이 없다. 당장 응급의학과, 외과 전공 등으로 수용해도 365일, 24시간 응급진료에는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외상전담 전문의는 "당장은 환자가 많지 않지만, 환자가 늘어나도 걱정이다. 실제적인 외상전문의가 많아야 하는데, 그저 하드웨어만 갖추다 보면 결국 중증 외상은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기존과 같은 현상이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다른 전문의는 "처음에는 지원금을 노리고 병원에서 접근하더라도 운영하면 할수록, 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적자가 날 것이 뻔하다"며 "환자가 많이 늘어나기 전까지 일부는 응급실의 연장선으로 경미한 교통사고, 일부 암환자 등까지 수용하지 않겠느냐"라고 우려했다.

대선 후보들의 보건의료공약에도 중증외상센터 지원이 포함돼 있었지만, 현실적이진 않다는 지적이다.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대규모 예산 삭감에 이어 아주대 탈락 등으로 더욱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했다. 그는 "지금 중요한 것은 외상에 대한 시설과 하드웨어적인 투자가 아니다"라며 "외상 전문의를 키워내고 그들이 사명감으로 일하더라도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상센터의 지원이 대거 줄어든 이유는 외상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한 채, 실제적으로 들여다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기대했던 외상센터 지원마저 받지 못하는 아쉬움도 감추지 못했다.

현재 다른 곳과 월등히 차이나는 외상 치료 성과를 봐서라도 아주대병원이 탈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상환자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쉬지 않고 몸바쳐 일했다. 본인도 일찍 퇴근 하기도 하고 싶고, 쉬기도 하고 싶고, 또한 외상센터와 암센터 인센티브가 10배 차이나는 것을 보면 한숨부터 난다. 팀원들이 일찌감치 그만두거나 하나둘 힘들어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기나긴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외상환자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외상전문의를 키워야 한다. 그저 병원에서 지원금을 나눠먹고 겉만 화려해진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처럼 외상센터 선정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외상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고 외상환자 사망률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병원의 피나는 노력, 그리고 효과적인 운영을 위한 끝임없는 관리와 지원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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