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디키 아프간 보건부장관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남다르게 존경의 마음이 일어난 것은그가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는 후진 이슬람국가에서 활약하는 여의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족의 딸로 태어나 좋은 환경 속에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으련만 불행한 조국을 떠나지 않고 가난하고 불쌍한 동포들과 아픔을 함께한 의미 있는 삶과 애국심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1980년대 소련 침공시 그는 매일 30~50여명의 부상병을 돌보았고, 게릴라전이 한창일 때는 하루 300여명의 환자를 치료해야 했다.

주위의 많은 왕족들처럼 다른 나라로 망명해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외세의 침공과 내전으로 얼룩진 20여년 동안,조국 아프간이 당하는 고통을 고스란이 함께 나눈 것이다.

딸만 여섯을 둔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교육과 직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이조시대와 같이 여자는 부엌일이나 하고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식의 불문율이 횡행하던 아프간의 실정을 생각해 보면 대단히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얘기는 조금 다르지만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뚜렷했던 시대에 스스로 한글을깨치고, 일제시대에 야학을 다니며 임시 공무원으로 양잠교사까지 지내신 내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이조 말 한일합병 시에 태어나 83세를 수(壽) 하시는 동안 당신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시대의 풍상과 결코 편치 않았던 인생여로(旅路)를 조명해 보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되는 등의 여비(女卑)사상은 후진국들이 해결하고 넘어야 할 우선과제가 아닌가 싶다.

이조시대에 여성 영의정이 나왔다면 당시 사람들의 정서로는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받은 대접이 하도 딱해서 최근에 일엽스님이나 나혜석(서양화가), 윤심덕(성악가), 최승희(무용가), 정정화(독립운동가) 등 신여성에 대한 재조명운동이 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시드디키는 복부외과 박사학위를 딴 후 카불에서 가장 명성 높은 군사병원장을 맡았으며, 여성으로서 최고의 위치인 중령까지 지냈다.

모든 여성의 대외활동을 금지했던 탈레반 정권 하에서도 그는 여성 클리닉 국장의 대접을 받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르카를 쓰지 않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능력있는 전문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고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임을 행동으로 입증했던 시드디키는 아프간 보건부장관으로서 더없이 훌륭한 인물이었다.
 
얼마전 장 상 이화여대 전 총장이 54년 헌정사상 최초의 총리서리로 지명되었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만큼 여성의 지위가 신장됐다는 생각이 들어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욱 놀랍고 기쁜 일로 다가왔었다.

오랜동안 소외와 차별을 받아온 여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려와 위로인 듯도 하고,특권층의 부정부패로 기존질서에 식상한 국민을 위로하고 추스리는 데는 여성이 적임이라는 국민적 공감대의 결과라는 생각과 함께, 실제로 여성도 능력 있는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국정쇄신에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청문회 후 절대다수의 남성 국회의원들이 투표하는 장면과 인준부결이라는 자막이 크로즈업되는 것을 보며,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고 자상하게 때로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여러 부처를 아우르며 막중한 국정을 수행하는 첫번째 여성 총리를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지게 된 것이 너무 아쉽고,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여성 재상을 용납하지 않는 남성상위의 벽이 과거의 잔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운함도 들었다.

언젠가, 시드디키가 아프간의 희망이 된 것처럼 이 나라에도 반드시 빠른 시일내에 여성 재상이 나와 소외된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될 날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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