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2003년 소아과에서 개명
정신건강의학과, 지난 8월 정신건강의학과로
산부인과, 여성의학과·여성건강의학과로 추진
흉부외과, 흉부심장혈관외과로 회귀 진행


일시: 2012년 12월 10일 저녁
장소: 서울 양재동의 한 음식점
<참석자>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박재완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총무이사
김보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책위원
강청희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 총무이사
손종관 편집국장



"과 이름은 질병치료 넘어 사회문제와도 연관"

손종관 편집국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해마다 메디칼업저버는 송년특집 "소주토크" 지면을 통해 소주 한잔하며 한해를 돌아보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올해는 "진료과목 명칭 변경이 개원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명칭 변경을 추진 중이거나 추진한 곳들이 많죠. 개원 환경, 진료 환경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진료과목 명칭이 바뀐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데, 먼저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노준 회장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박노준산부인과 원장)입니다. 산부인과는 "아이를 낳을 부녀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으로 환자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현재 "여성의학과" 또는 "여성건강의학과"와 같은 명칭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전략이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 20~30년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로 예상되는데, 앞서 추진을 경험하신 진료과들의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재완 이사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박재완(박재완소아과 원장)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2003년 10월 학회에서 소아과를 소아청소년과로 바꾸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이후 2007년 2월 명칭개정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하고, 전체회의에서 가결돼 학회 창립 후 62년만에 진료과목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김보연 위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책위원 김보연(성가효의원 원장)입니다. 2001년 정신과개원의협의회 당시 정책이사로서 개명추진을 주도해왔습니다. 당시 환자 130명과 개원의 100명, 타과 의사 100명, 일반인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했을 때 대다수가 개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학회에서 개명 운동이 전개됐고, 꾸준한 노력 끝에 지난해 7월 10년 만에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8월부터 의료법 일부 개정안이 공포 및 시행돼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가 됐습니다.

강청희 이사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의사회 총무이사 강청희(연세서울의원 원장)입니다. 흉부외과는 1968년 학회 창립 시 흉부심장혈관외과라는 명칭을 사용하다 이름이 너무 길어 흉부외과라는 명칭으로 대한의학회에 등록했습니다. 당시는 심장혈관 수술이 시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수술 분야가 폐와 식도, 종격동 분야에 국한돼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74년 이후 심장혈관 수술이 급증하면서 명칭 변경이 필요하는 의견이 나왔고 꾸준히 개정을 결의했으나 최근까지 대한의학회에서 보류 결정을 내린 상태입니다.
벌써 수차례 도전했지만 고배를 맛봐야 했는데요, 박노준 회장님 말씀대로 오늘 이미 명칭 변경에 성공한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고 싶습니다.


손종관
그러면 지금부터 박노준 회장님이 진행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노준 흉부외과는 다른 과와 달리 창립 시 명칭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이 특이한 것 같습니다.

강청희 흉부외과학회 로고는 창립 당시 그대로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로 돼 있습니다. 학회지 정식 명칭도 마찬가지구요. 학회의 영문 명칭은 "Korean Society for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로 과목명을 번역하면 흉부심장혈관외과가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으로 혈관질환의 외과적 치료가 흉부외과 전문의 수련교육 교과과정에 필수 조건으로 돼 있습니다. 다만, 의사회는 의학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번에 회칙을 만들 때 개명을 완료했습니다. 학회는 명칭 변경을 추진 중으로 아직 대한흉부외과학회로 등록돼 있습니다.

박노준 정신건강의학과도 학회 창립 시에는 신경정신과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보연 맞습니다. 1983년 신경과와 정신과가 분리되면서 각각의 이름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명칭 개정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신경정신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회원들도 꽤 있었지만, 이미 신경과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골라야 했습니다.

개정 이유, 인식 개선 위해서


강청희
명칭 개정을 추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왜 바꾸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다른 과의 사정은 어떤가요?

박재완 저희는 소아과가 어린 아기들만 돌보는 진료과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초등학생이 병원 간판 앞에서 안가겠다고 떼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은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러나 소아과학은 미숙아를 포함한 신생아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아동의 성장과 발달을 다루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어린이가 가진 신체와 지능, 정서 및 사회적 능력을 충분히 발전시키도록 하고, 앞으로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요.

김보연 어떤 연령까지를 성인이 아닌 단계로 봐야 할지, 또 이들은 어떤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울 것 같습니다.

박재완 청소년기의 성장과 발육이 시작되는 연령은 개인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10~13세부터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까지 포함하기도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0세에서 19세로 청소년기 연령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제2의 발육 급진 시기로 2차 성징 출현과 더불어 신장의 급성장과 같은 신체적 변화, 정신적·사회적 성숙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호르몬 변화에 의한 여성형 유방, 월경 장애 등을 포함해 여드름과 같은 피부 질환, 척추 측만증과 같은 정형외과적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해 생길 수 있는 우울증, 자살 행위, 약물 남용, 성에 대한 개방으로 임신과 성병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전반적인 상담과 적극적인 진료가 필요합니다.

전공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청소년 의학을 공부하는 소아과에서 청소년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사회적 인식이 잘못돼 청소년기의 아동들이 마땅히 진료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소아청소년과"로 개명을 하게 됐습니다.

"이해득실 얽힌 타과 의견 조율 중요"

박노준 산부인과도 명칭의 특성상 임신과 출산만 떠올리게 돼 부인과 영역의 진료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사춘기 소녀의 경우 어린이들이 소아과를 찾듯 수시로 산부인과에서 건강 문제를 상담해야 하지만 사회정서상 쉽게 찾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미혼여성들은 산부인과 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도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시선을 보냅니다. 결국 질병이 확실해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제일가기 싫은 곳을 산부인과라고 꼽기도 했죠. 여성들만이 가지는 신체관에 대한 관리와 치료를 하는 곳인데 접근하기 힘들고 불편한 공간이 돼버렸다는 생각에 안타깝습니다.

강청희 산부인과의 임상과목 정의는 어떻게 되나요?

박노준 산부인과의 영어 명칭은 Obstetrics and Gynecology로 임신·분만·여성의 성기에 관계있는 병을 취급하는 임상과목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생식에 관한 분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별도로 "산과"로 독립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부인과"만 남는데요, 한글 이름으로만 보면 정말 결혼한 다음에 찾아오라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영어 이름인 "gynecology"는 "gyneco_"에서 파생한 것으로 이는 "여성(의)·암컷(의)"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의 한 분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부인과로 표기해 출산연령에 달한 기혼 여성을 중점에 두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아프지 말라는 것을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녀가 웬 산부인과?"라고 묻죠. 여성 질환이 일정한 연령이나 특정한 지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서 증세를 확인하고 치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전히 비혼 여성과 청소년에서 산부인과는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명칭 변경을 통해 이런 금기를 깨고자 합니다.

김보연 정신과 진료는 낙인이 심해 환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기피하는 경향이 심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적절한 진료 혜택을 보지 못한 청소년과 연예인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최근 2년간 자살한 연예인이 16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히스토리를 들어보면 제대로 정신건강 진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인권을 높이기 위해서 명칭에서 오는 사회적인 편견과 불이익을 해소해야 했지요.

박재완 그동안 정신질환자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아닌 "무섭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김보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신지체를 지적장애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변경한 것도 이 때문이죠. 연말정산을 위해 영수증을 발부해줬더니 정신과라고 찍혀 기분 나빠 안쓰겠다는 환자 가족들도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이름에서 "정신"은 정신과의 정체성이 포함된 것이고, "건강"은 단순한 질환의 치료를 넘어 예방 및 증진의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미로, "의학"은 과학적·의학적 전문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개명을 계기로 정신건강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켜 환자들이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합니다.

박노준 흉부외과에서 쓰는 가슴 흉(胸)는 흉할 흉(凶)과 발음이 같아 우스갯소리로 환자들이 흉터를 보는 진료과목으로 착각했던 일도 있었다는 말도 있었는데요, 환자들 인식은 어떤가요?

강청희 "흉"이라는 글자가 "흉하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측면도 있지만, 대체로 환자들이 어떤 질환을 다루는 곳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관상동맥질환과 대동맥질환의 수술, 일반흉부질환 중 폐암과 식도암의 수술 및 다한증에 대한 수술, 혈관질환의 수술을 담당하는 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흉부심장혈관외과"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흉부외과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결국 일부 국민들에게는 흉부외과가 가슴부위의 흉터를 수술하는 과로 오인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제대로 된 의학적 상담과 치료를 받는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박노준 최근 관상동맥질환이나 혈관질환이 증가하고 있어 빠른 인식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강청희 현재 관상동맥질환과 대동맥질환과 같은 성인 심장병 및 대혈관질환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일반흉부 질환으로 폐암이 증가하고 다한증 수술이 대두되면서 증례수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말초동맥질환이나 정맥류에 대한 혈관수술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특히 개원의들이 할 수 있는 수술은 하지정맥류가 유일한데, 환자들은 왜 흉부외과에서 하지정맥류를 진료하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흉부외과 입장에서는 명칭 개정을 통해 심장, 혈관을 포함해 흉부 내 질환을 다루는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공의들이 지원하지 않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흉부외과가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학회·의협·국회 설득까지


박노준
이미 개정에 성공한 두 과로부터 어떻게 진행해 오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보연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고 국민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개원의협의회에서 수차례 세미나를 가진 결과, 2001년 진료환경개선 특위의 모든 운영위원이 찬성한 가운데 정신과 개명이 발의됐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거친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거친 뒤 2009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의원회에서 개명안을 상정하고 인준하게 됐습니다.

박노준 시행까지 2년이 걸렸는데 학회 승인 이후 어떤 과정이 남아있는지요?

김보연 먼저 대한의학회 기획조정위원회 심의 및 이사회 승인과 대한의사협회 상임이사회 심의 및 의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료법 개정 공청회와 전문과목 명칭개정을 위한 공청회로 의견 수렴을 마치고,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됐습니다.
저희는 의사회에서 발의된 지 10년만에 개명됐는데 소아청소년과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따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박재완 소아청소년과는 의사회가 아니라 학회에서 먼저 개명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는 점이 정신건강의학과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2003년 대한소아과학회 평의원회에서 명칭 변경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2004년 대한의학회 이사회 승인을 받았습니다.

강청희 흉부외과에서는 2008년 의학회에 신청한 뒤 두 번이나 보류됐습니다. 의학회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중요한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재완 명칭 변경을 위해서는 의학회를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를 통과해야 의협의 승인도 받을 수 있지요. 의학회에서 가장 크게 보는 요건은 학문적인 타당성입니다. 의학회 회의에서 학술적으로 논문, 교과서, 전문 교수 등을 검토해 최종적으로 명칭 변경이 돼야 한다는 결정이 나와야 합니다.

"이름 바뀐 후 진료 수입은? 글쎄!"
진료과목 명칭 변경이 개원환경에 주는 영향

정신건강의학과 과명칭에서 오는 사회적 편견·불이익 해소 시급
흉부외과 심장·혈관 포함한 흉부내 질환 다루는 특성 반영 안돼
소아청소년과 소아뿐 아니라 성장·발육 진행되는 청소년기까지 아울러
산부인과 임신·출산뿐 아니라 여성 건강문제도 함께 다뤄야



박재완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학문적으로 청소년 환자는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에 타 과의 반대에도 승인이 가능했습니다.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명칭 변경으로 국민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설명해야 하죠. 국회에서는 타당성 검토를 거쳐 의학회, 의협 말고도 반대할만한 진료과에 명칭 변경에 대한 질의를 보냅니다. 여기서 모두 찬성해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됩니다.

박노준 국회 설득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쉽지않은 과정을 거치셨을 것 같은데요.

박재완 질병 치료에만 급급한 의료 현실에서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렵기 마련이죠. 소아청소년과로 명칭을 바꾼 것은 이런 문제에도 눈을 돌리고 노력하겠다는 약속의 의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명칭 개정 추진 당시 사회적으로 청소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저희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책 및 예방을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습니다. 치료에서 나아가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죠. 집단 따돌림이나 가출, 폭행, 약물중독 등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대화와 이해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진료과목 특성상 어릴때 병원을 찾았던 환자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서도 오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청소년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설득이 가능했죠.

다만, 상담 수가를 인정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돕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그저 상담에만 매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아청소년과에서 마음 편하게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좋은 쪽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성인으로 성장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문제가 되는 청소년을 방치하는 것보다 국가 입장에서도 큰 이익이니까요.

박노준 청소년의 문제 행동이 정신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 있는데, 다른 과의 진료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비판은 없었는지요?

박재완 비유하자면 소아청소년과는 교통정리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다른 과와 부딪히는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소아청소년과에서 영유아 건강검진과 함께 시력 검사도 합니다. 세살배기 어린이들은 시력 검사 하는 중에도 잘 집중하지 못하거나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안과에서 하기 어렵거든요. 그러나 시력이 나쁘다고 해서 우리가 안경을 맞춰주거나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문제가 있으니 안과를 방문해보도록 권합니다. 청소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도록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마찰이 있을거란 우려는 우려일 따름입니다.

김보연 산부인과는 개념상 여성으로 확대하는 느낌으로 여성환자 입장에서 많은 이들이 찬성할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요?

박노준 사실 우리가 명칭을 바꾼다고 하면 다른 과에서 자칫 진료 영역을 확대하려는 꼼수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명칭을 바꾸려는 주목적은 미혼이나 비혼 여성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OECD 국가들은 초경을 시작하면 바로 산부인과를 방문에 초경에 대해 상담합니다. 최근 초경 연령이 3세 가량 앞당겨져 초등학교 5~6년이면 시작하게 됩니다. 이들은 나이가 어리다 보니 초경을 "공포감"이나 "불안감"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은 더 불편한 일이죠.
오히려 미혼 여성 환자들이 병원으로 전화해 명칭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의학계 논의와 출발점은 다르지만 경영난 타개책으로 "여성의학"이나 "여성클리닉"으로 간판을 바꿔 여성의 거부감을 줄인 병원이 많습니다.

김보연 다른 진료과와 경쟁이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환자가 필요로 한다면 과목 변경 추진을 자유롭게 시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청희 흉부외과는 혈관 수술을 많이 하고 있고, 혈관질환의 외과적 치료가 전문의 수련교육 교과 과정의 필수 조건으로 돼있지만, 명칭에 "혈관"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 답답합니다. 의학회는 유관 분야와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혈관을 다루는 타 영역과의 갈등의 소지가 있어 현재는 적합하지 않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대한외과학회 산하에 혈관외과학회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흉부외과는 정식 학회인 반면, 혈관외과학회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두 학회를 똑같이 견준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진료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하는 일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 계속 도전할 예정입니다.

명칭 변경으로 기대되는 효과

박노준 서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명칭 개정으로 인해 바뀐 점 혹은 기대하는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박재완 사실 수입 면에서는 크게 영향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출산율이 저조한 탓도 있지만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 학원 수업 등으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고, 이 연령에는 그리 아프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소아가 아니라고 소아과를 찾기 싫어했는데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청소년 문제와 관련해 상담을 해오는 것도 소아청소년과로 바뀐 것에 대한 보람입니다.

김보연 정신건강의학과로의 개명으로 가장 기대하는 효과는 이미지 개선입니다.
진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지만 환자나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변화가 감지됩니다. 예를 들어 학습 문제로 어려워하던 소아청소년의 경우 과거에는 정신과 방문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꺼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 편히 방문하면서 진료 기능이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다만 개명 후 간판을 새로 다는 문제로 회원들 사이에 비용 추가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네 글자나 더 늘어났다는 점에서 길다는 평가도 있었고요. 하지만 국민 건강 차원에서 정신질환 위주 개념에서 "정신 건강" 즉, 예방적 차원의 이미지와 영역이 확대돼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됩니다. 덕분에 진료실 외에서 강의나 홍보, 인터뷰 등 전문의들의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박재완 소아청소년과도 간판 문제로 불만을 표시하는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희망하는 회원에 한해 간판 공동구매를 진행했는데, 개명을 추진 중인 곳도 이렇게 하면 불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명 과정 회원간 결속력 강화 경험"

박노준 산부인과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미혼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적절하게 의료의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회 전반에 확산된 산부인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강청희 흉부외과는 역사적으로나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과 합치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인식 부족을 해결하고 혈관 수술의 개념을 정립시키고자 합니다. 시대에 맞는 적절한 명칭 사용으로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에서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개원가에서는 과목명 표시 시 불이익이 없도록 해 소수 과의 비애를 벗고 싶습니다.

김보연 명칭이 바뀌어서 오는 변화도 있지만 개정하는 과정에서 오는 변화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칭을 바꾸기 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토론도 하면서 내부 여론이 형성되고 결속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최근 의료 환경이 나빠지면서 회원들이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과 명칭을 바꾸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여론조사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박노준 짧은 시간이나마 진료과 명칭 개정에 대한 상황과 추진 과정, 기대효과까지 유익하게 잘 들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논의는 진료수가가 너무 형편없다는 데서 출발하지 않나 싶습니다. 환자수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대부분의 진료과지만, 환자가 줄어드는 자체가 문제 아닐까요? 산부인과도 분만수가가 낮고 분만건수가 현저히 줄어 분만 병원이 아예 문을 닫는 현실에서 명칭 변경이 시작됐지요. 일부 분만수가 인상으로 한숨 돌리게 됐지만, 내년엔 진료수가 인상으로 보다 나은 진료 환경, 개원 환경이 되길 기대합니다.

김보연 의료계 뿐만 아니라 경기 불황, 대선 정국과 맞물려 국민들 전체가 어려워했던 한 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들의 권위나 경제적인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어려운 시국인 만큼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이해되는 의료계가 되길 바랍니다.

강청희 뒤집어 엎을 정도의 변화와 개혁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반성할 점도 많고요. 편법으로 비급여 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의료계가 되기 위해 서로 노력했으면 합니다.

박재완 새 대통령도 뽑은 마당에, 의료계의 어려운 환경을 다같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들의 요구사항은 많고 해야할 일이 많은데 분만건수 감소에 덩달아 줄어든 어린이로 인해 소아청소년과도 어렵게 버텨 나가고 있습니다. 비급여 진료를 파생시키지 못하는 과의 특성상 한계에 다다랐지만, 여기서 망가지지 않게 진료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손종관 편집국장 명칭 개정 하나에도 많은 노고와 과정이 숨어 있군요. 오늘 참석하지 못한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내년에 저희 메디칼업저버도 어려운 진료 환경의 현실을 돕고 명칭 변경 등의 현안에 대해 더욱 심도있는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올 한해 선생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다 희망이 가득한 내년을 위해 건배 한 번 하시죠!

사진=고민수 기자 msko@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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