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라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사는 희생과 근면과 봉사의 표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의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기대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에도 의사 재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즈음은 똑같이 의과대학을 졸업했어도 전공을 달리 했다는 이유로 혹은 봉직의냐 개원의냐 차이로 혹은 얼마나 수입을 올리냐의 차이로 의사들 간의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치원리로 늘여 놓은 의과대학과 의사 수 증가는 경제 성장과 삶의 수준 향상에 따른의사들의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고 국가가 주도하는 재정적자의 건강보험 상태는 의사들로 하여금 과거와 다른 의료행태를 조장하고 있다.
과거에 성장 위주였던 의사들의 수입이 이제는 한정된 떡을 놓고 분배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되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는 본래의 목표인 교육이나 수련 혹은 의료전달체계에 따른고위험 진료를 담당해야 하지만 현 의료 실상으로는 유지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로 하여금 진료비 수입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입을 늘리려는 의사들의 심각한 현상 중의 하나는 과다 경쟁이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경쟁이 요즈음은 노골적인 의료 광고와 진료비 덤핑, 늘어나는 진료 시간으로 밤늦게 까지 외래 환자를 보기도 하고 공휴일도 없이 병원 문을 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어려운 진료 환경을 대변해 주는 현상들이리라.
개원할 의사는 많아지고 장소는 마땅치 않으므로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한 건물에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가 모두 입주해서 모두 비슷한 환자를 보게 되고, 전문 과목에관계없이 진찰도 하지 않고 환자의 요구만 있으면 처방전을 복사해 주기도 한다.
가정의학과 연수 강좌에 다른 과 전문의까지 기웃거리게 되고, 비 보험 진료 분야나 대체의학 강의가 주제가 된 학술대회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만원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모든 개원 전문의가 일반의가 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한정된 의료비를 쪼개어야 하고 한정된 환자를 나누어야 하므로 의과대학에서나 수련 시절에 배우지 못한 비보험 진료를 개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일 것이다.
이제 모든 병 의원 로비에 보약이나 대체식품, 기능성 화장품 진열대가 설치 될 날들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를 "메이저과"라고 하여 그것을 전공하게 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지만 요즈음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인기 좋은 과는 응급 환자가 없고 비보험 수입이 많은 분야이므로 쉽게 안락한 생활을 하겠다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의사들의 욕구와는 달리 이러한 세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의사란 직업을 경제적 논리로만 이해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들이 희소 가치를 누리면서 환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때로는 군림도 하였던 나름대로의 권위는 이제 먼 과거사가 되었고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 혹은 한의사나 약사의 영역에까지 경쟁 상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하고 끝없는 의사들의 욕심이라는 질타도 받고 있지만의사로서의 정도를 걷기 어렵게 만드는 현 정부의 의료 정책의 모순 때문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도가 지나친 일부 의사들의 행태는 일반인은 물론 의료계 내에서도 자체 정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과거에는 입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의사가 보아도 낯이 뜨거워지는 각종 비뇨기과 성기수술 종목에서부터 미용 성형 수술에 대한 적나라한 광고를 잡지건 인터넷이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으며 이 나라가 마치 섹스공화국이나 미인 성형 공화국이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이다.
도대체 환자들이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고 있고 어디서 그런 수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산부인과 의사인 나도 잘 모르는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다.
출산 여성 회음성형술은 고전이지만 미혼 여성의 질 축소술과 처녀막 수술, 소음순 절제술, 외음부를 도톰하게 하는 수술, 여성 포경술을 원하는 환자도 있는데 대부분이 미혼 여성들인 것이 놀랍기도 하다.
성형 수술을 하고 오는 환자들을 보면 쌍꺼풀 수술과 주름 제거술, 지방 제거술은 보통이고 이마를 튀어나오게 하는 수술, 보조개 수술, 치모가 있는 부위를 튀어나오게 하는 수술 등 누구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인지 따라 가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치과나 피부과도 질병 치료보다는 치열교정이나 피부 미용만을 위주로 하는 병 의원들이 늘고 있으며, 모 산부인과는 처녀막 수술만 전문으로 한다고 소문이 나 있기도 하고(어떤 환자가 진찰을 받았는데 결혼한 줄도 모르고 처녀막 수술을 권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성형수술과 라식 수술을 경품으로 제공하기도 한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모든 다른 서비스 분야와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서 제공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공자가 많아지므로 필요를 증가시키는 현상이 의료계에서도 심화되는 것을 주시하여의료 정책을 재수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가난이라는 것은 게으름과 모자람이고 부자란 성취한 자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부자란 욕심 많은 자고 가난이란 마음을 비운 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 의하면 부자들은 많이 벌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은 기부금을 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왕이면 부자 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일이고 좋은 일이리라.
언젠가 개원 의사들의 수입에 대해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어려운 의료환경 속에서 묵묵히 충실히 일하고 있는 의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의사들 돈 욕심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자보다 평범한 사람이 많은 것처럼 의사로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일부에 해당하는데도 마치 모든 의사들이 왜곡된 의료에 의해서 치부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지금 많은 유능하고 선량한 의사들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들의 선택으로 이 나라 의료의 장래가 달려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정당하고 왜곡되지 않은 선택을 하게 하려면 그런 의사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의사란 질병을 예방하고 고쳐주는 것이며 그런 의사만을 진정한 의사로 생각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