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병원협회가 개최한 "2012 Korea Healthcare Congress(KHC)"에서는 "상생하는 의료생태계 창조"가 큰 과제로 던져졌다. 그러나 병원간, 진료과간, 직역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병원계의 현실에서 과연 창조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병협이 제시한 두가지 키워드를 통해 실현 가능한 방법부터 모색해 본다.


"유기적으로 의존하는 생태계적 사슬구조"

이번 KHC는 아시아, 북미, 유럽 등지에서 모인 2000명의 병원경영 관리자들이 세계적인 병원 경영 트렌드와 미래 병원 산업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상생하는 의료생태계 창조"를 통해 수직적 구조, 병렬적 구조가 아닌 유기적으로 의존하는 하나의 생태계적인 사슬 구조를 병원계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의료계는 공급자뿐만 아니라 환자, 정부, 관련 의료산업체 등 연관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크고 작은 의료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만큼,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큰 틀에서 함께 묶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환자정보 공유 및 각 병원 성격에 맞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철 KHC조직위원장은 "의료기관 간 상생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병상 확대보다 환자정보의 공유가 필요하다"며 "환자정보시스템의 표준화를 통해 전체 환자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제대로된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경쟁을 완화시키거나 규제한다고 경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병원마다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소병원과 대학병원의 역할을 정립, 각자의 역할이 작동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 간 의료정보시스템 공유

먼저 나온 상생의 화두는 병원간 의료정보시스템 공유이다.

지난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내용을 EHR사업단을 통해 추진해왔다. EHR핵심공통기술연구개발사업단은 환자가 진료 정보를 필요로 할때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평생전자건강기록"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핵심공통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업 타당성 부족으로 2010년 중단됐다.

이후 이같은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시립병원과 보건소의 의료정보시스템 통합을 시도했다. 국방의료원은 의무사령부와 육해공군 예하 19개 군병원의 의료정보체계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운영유지비를 절감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추진하다보면 지원자금이 많이 소요되며, 다수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누군가 이것만 매달려야 하는 구조다보니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사업추진 관계자는 "내부 담당자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구조에서 연속성을 갖기 어렵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예산 할당도 줄어든다. 개인정보보호법까지 강화되면서 어려움이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3차병원들도 협력병의원과 검사 기록은 물론, 의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구현 중이다. 연세의료원은 "후헬스케어"라는 KT와의 합작회사 설립을 통해 한층 불을 붙였다.

이들 병원은 "지역 병의원과 3차 병원의 효율적이고 선진화된 진료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영향력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속셈이다. 협력병의원이 이를 모를리 없고, 결국 환자를 뺏긴다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다.

이에 복지부 사업부터 관심있어 하던 길병원이 GE헬스케어코리아와 다시 한번 시도한다고 발표했다. 의료정보시스템 공유를 하게 되면, 의료정보 표준화, 데이터모델 개발, 관리시스템 개발,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 개발 등의 핵심 기술을 개발해 평생건강기록으로도 활용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환자 중심의 입장에서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사를 다시 하거나 진료 내용, 검사기록을 챙겨야 하는 불필요함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의료IT업체 관계자는 "모든 업체들이 욕심내고 있을 정도로 이미 기술력은 충분한 수준이지만, 병원 간 이해당사자 간에서 환자 중심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우선 몇군데 병원이라도 성공사례가 나오고 확대되면, 곧 표준화가 되면서 시스템이 정착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소병원의 열악한 현실 개선

또다른 화두는 중소병원과 대학병원의 역할 재정립이다.

중소병원의 경영문제는 심각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류지영 의원이 병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 등 다양한 요인으로 100병상에서 300병상 미만의 지역 중소병원의 경우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2010년 말 경영부진을 이유로 전체병원 중에서 휴업 18개 병원, 257개 기관이 폐업을 했으며 이중 1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의 휴·폐업비중은 57.2%로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중소병원의 의료수익률이 1.1%로 매우 낮다. 중소병협 백성길 회장은 "중소병원에 대한 기능과 역할이 명확하게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대학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과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중소병원 뿐만 아니라 의원을 살리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은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만성질환에 대해 선택의원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부족하다. 한 중소병원장은 "대학병원 환자들의 의원, 중소병원 전원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대학병원에서도 안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만성질환에서도 예외가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대학병원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수들 개개인이 진료 실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조차 수익에 쫓기는 열악한 현실에서 다른 병원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항변이다. 중소병원은 병상총량제 등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병원은 병상 수 확충을 하나의 주요 전략인 양 덩치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인력. 간호등급제 이후 간호조무사를 일정 부분 현행 필수 간호사정원의 일부로 인정하는 간호등급제로 개편을 요구하고 있지만, 간호협회 등의 반발로 쉽지 않다. 질 관리에 나서는 정부와 현실의 문제에서 균형을 맞추기 힘들며,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실 당직의를 둬야 하는 규정에 더욱 피가 마른다.

이에 가벼운 질병은 가까운 의원과 보건기관 보건기관을 이용하고 좀 더 전문적 진료가 필요할 때 병원과 종합병원으로 후송하는 의료전달체계로 운영해야 효율적인 의료자원 활용과 종합병원의 환자 집중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병원들은 "중소병원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대학병원은 교육과 연구라는 제 기능을 강화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의원과 중소병원에 환자를 적극적으로 보내주면서도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