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자 중 38.7% 자살시도

매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수는 하루 평균 43.6명으로 지난 10년간 119.9% 증가했다. 자살의 이유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 등 다양한데, 알코올 의존과 같은 물질중독, 도박중독과 같은 충동조절장애, 섭식장애 등 다양한 중독현상도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최근 열린 추계학술대회에서 세 가지 중독장애가 자살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알코올 관련 사망자수는 전년보다 1.4% 많은 4493명으로 특히 여성의 경우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늘어 전년대비 17.2% 급증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음주 관련 사회경제적 손실이 지적됐다. 2007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음주와 관련한 질병으로 인해 약 143만명이 건강보험을 통해 진료 받았고 이로 인한 진료비로 1조 2876억원이 지출됐다는 것. 알코올 문제는 개인의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크나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연세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민성호 교수는 "알코올 의존이 자살의 주요 위험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음주 자체만으로도 탈억제, 충동성, 이자극성, 난폭성, 무망감을 매개로 해 자살경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음주와 공격성 혹은 우울감 간의 인과관계가 모호한 점도 있지만 음주 후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나타나거나 통증이 사라져 자살 시도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아직 우리나라에서 근거가 부족하지만 해외 연구를 보면 연관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어느 나라나 공통적으로 알코올 소비량과 자살율 그래프가 같은 곡선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데,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각 포인트에서의 피크점은 유사하다.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소희 박사는 "역사적으로 Meninger가 중독을 "만성적 자살"의 한 형태로 개념화한 바 있다"면서 "문헌 고찰에 의하면 알코올 의존의 40%는 평생 한번 이상의 자살시도를 하며, 자살 사망자 중 20~40%가 알코올 의존자"라고 설명했다. 또 알코올 사용장애는 자살 위험율을 약 6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연구팀이 전국 20개 정신의료기관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환자 7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전체 대상자 중 38.7%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충격을 줬다.

이 박사는 알코올 의존자에서 자살 위험 요인으로 △대인관계 상실 △우울 △자살 의도 표현 △사회적 지지 부족 △심각한 내과 질환 △무직 △독거 등을 꼽았다. 그는 "알코올 의존은 생물학적으로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억제하고, 심리적으로 우울감, 무망감, 공격성, 충동성을 증가시킨다"면서 "더불어 문제 해결력이나 판단력 유연성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사회부적응, 대인관계 고립, 신체적 혹은 정신적 합병증을 야기해 자살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알코올 사용 장애 방지 대책 및 스트레스에 대한 건강한 행동패턴 강화가 포함돼야 하며, 건강검진에는 우울을 포함한 정신과 증상은 물론 음주습관에 대한 선별검사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알코올 의존과 우울증이나 인격장애가 공존하고 있는 사람은 자살 예방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걱정 잊기 위한 도박, 자살 위험 높여

물질이 아닌 행위에 대한 중독도 자살과 연관성을 가진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강원랜드 이용객 가운데 10.4%가 알코올이나 약물 오·남용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7.5%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시도해본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랜드 주변에서 재산 탕진 등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도 연평균 5명이나 된다. 미국 연구에서도 카지노가 있는 도시의 자살율이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서울정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소민아 박사는 "병적 도박 환자 중 52%가 우울증이나 알코올 의존 등 공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면서 "특히 걱정을 잊기 위한 방법으로 도박을 이용하는 사람에서 자살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병적 도박은 예방 가능한 자살 요인"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도박이 합법화돼 있으므로 자살 예방 종합 대책에서 이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섭식장애, 특히 신경성 식용부진증에서도 자살은 대표적인 사망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는 "신경성 식용부진증에서의 자살 위험은 주요 우울장애에서보다 높다"면서 "자시만의 세계로의 도피, 융통성 부족 등은 자기보호 능력을 감퇴시키고 영양부족에서 비롯된 경직된 사고도 문제해결능력 저하를 초래하고 자살 이외의 대안으로의 사고 전환을 가로막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경성 폭식증 환자의 경우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보다 자살율이 낮지만 약물사용장애와 공존했을 땐 자살 위험이 높아진다"며 "이런 섭식장애가 오래될 수록 삶 자체가 죽음을 향하고 내과적인 합병증이 있거나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삶의 질 저하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영철 교수는 "자살은 현대에 와서 갑자기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지금은 음주나 도박과 같은 중독장애가 자살을 행동화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학적 모델 측면 뿐 아니라 해당 장애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소 박사는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의사 입장에서 제시하는 의학적 해결 방법과 환자의 니즈(needs)가 다른 경우가 많다"면서 "때로는 가족상담이나 재무상담을 제공하는 등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하도록 의사가 디렉터(director) 역할을 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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