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재항 美 NIH 선임연구원

"인간세포는 DNA 손상을 복구시키고 변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정교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러한 기능이 제구실을 못할 경우 암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DNA 손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포가 손상 여부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하죠.

저희 연구팀은 몇 년전 DNA 반응시 활성화되는 Cds1/Chk2라고 불리는 키나아제(Kinase)를 발견했고 이 물질이 DNA 손상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더불어 Cds1/Chk2가 BRCA1 종양억제인자를 인산화시키는 과정에서 DNA 손상을 표현해 준다는 것을 입증했죠."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 생화학·유전학연구실의 종신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정재항 박사는 인간세포의 DNA 손상반응기전을 규명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이미 이분야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하버드의대 최고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남다른 업적을 쌓아왔고 지난 5월에는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우수 한국인 의과학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박사가 말하는 연구목적은 명료하고도 간단하다. "암과 같은 질병의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DNA 변이의 원인을 밝혀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세포가 DNA 손상으로 인한 변이를 어떻게 감지하고 반응하는지를 밝혀 내는데 도움이 되는 성과를 얻어 냈습니다. 세포가 DNA 손상에 반응하는 기전을 규명해 암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디자인약물(design drug)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박사의 가족은 NIH와 인연이 많은 듯 하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연방정부의 보건연구기관에서 연구원직을 맡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어머니와 부인을 비롯해 일가족3명이 NIH에 몸담아 왔다.

게다가 나노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아들도 곧 NIH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한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4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정박사는 어머니가 저명한 미생물학자로서 NIH에서 일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실험실을 자주 찾았고 자연히 의학연구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발암기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를 검사하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Cds1/Chk2 키나아제를 발견하게 됐죠.

바로 Cds1/Chk2가 DNA 손상반응시 작용하는 물질이란 것을 알아내고 DNA 손상과 발암기전 사이의 상관관계에 초첨을 맞추게 됐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때로는 우연이 따라 주는 등 재미도 있었다는 정박사.

이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했던 적은 없지만 힘들었던 순간들은 많았다며 안타까웠던 과거들을 털어 놓았다.

"미국의 연구분야, 특히 암연구는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저희팀이 목표하는 연구성과를 다른팀이 앞서 이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구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주위의 연구생들이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들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크리스찬으로서 제 경력과 인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됐죠 .

시련을 무분별하게 다가오는 사고쯤으로 생각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더욱 성장하고 신에게 한층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젊은 연구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 때문인지 그는 한국의 의과학도들에게도 깊은 애정을 보이며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사고가 다소 모자라는 것 같아요. 문화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이들이 좀 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의 세계로 눈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연구환경이 미국에 비해 다소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창적인 사고에서까지 뒤질 이유는 없죠. 한국 기초의학의 발전을 막고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의과대학을 비롯한 의학교육기관에 속한 Ph.D 연구원들의 권한과 힘이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

의사이자 과학자의 한명으로서 의사들이 느끼는 기초연구분야에 대한 한계와 Ph.D 연구원들이 임상과 관련된 의학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Ph.D 연구원들이 의학계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박사는 앞으로 노화관련질환의 분자기전분야로 연구를 확대하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쉽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업적을 이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몸은 실험실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늘 인간과 사회를 향하고 있는 휴머니스트 과학자였다.

자신이 이룬 연구업적이 30년 후에는 인류의 건강을 진일보 시키는데 기여하길 바란다는 정박사의 소망이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 날을 존경과 믿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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