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1년간 미국 멤피스에서 지낼 때,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2학년 이였다.

그때 큰 애 반에 산부인과 야간근무를 도맡아 하던 간호사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부모가 의사되기를 소망해서인지 성서 속의 의사인 류크(누가)였다.

어느날 류크에게 미숙아 쌍둥이 동생들이 입양 되었다.

미혼모로 출산일은 다가오고 아기 아빠는 행방불명이고 임신 중독증까지 걸려 생명마저 위험, 제왕절개를 해야만 할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내가 입양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건강한 아들 딸이 있고 더구나 그들 부부의 일상이 밤을 새워야하는 어려운 직업들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생활을 잘 아는 담임 선생도 "너라면 입양을 하겠는가?"라며 부정적 이미지의 메시지를 내게 넌지시 던지기도 했었다. 그 후에 류크의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

미숙아들은 산소통과 심전도는 물론 각종 응급세트와 함께 성장했다. 6개월여가 지나고 크리스마스 즈음, 아기들은 제법 똘망똘망해 보였고 류크의 성적도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 부부를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렇게 힘들게 키우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 사회에서는 병든 입양아와 양부모에게 필요한 의료가 무료로 제공되고 세제상의 큰 혜택이 따른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행한 탄생의 병든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자.

국가나 사회의 정책적인 배려로 아이를 치료 할 수 있는가? 세제혜택은 있는가?

우리가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며 OECD국의 일원이라지만, 세계 제1의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은 어찌된 것인가.

일순,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얼마전 내게있었던 해외 입양아와의 만남이 생각났다.

몇년전 내게서 태어난 아이가 미국으로 입양되어 중학교 3학년으로 성장, 양부모와 함께 생모를 찾아 모국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어느날 내게 입양을 주선했던 기관에서 이 아이를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사연인즉, 생모를 만나려 했지만 지금은 남의 부인이며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자신이 엄마라며 나타나겠는가?

이런 사정으로 생모를 만날 수 없게되어 태어난 병원이라도 보여주기로 해, 낳게 해준엄마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꿩 대신 닭 이랄까.

태어나자 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양부모 손에서 자랐으나 그는 한점 구김없이 당당함과자신감이 넘칠 정도로 잘 자라 있었다.

양부모는 모두 교양이 있어 보였고, 절제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함께온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 또한 한국인 입양아로 생각되었다.

그의 장래 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BE THE REDS"가 새겨진 붉은악마티셔츠를 모두에게 선물하였다.

그들은 즉석에서 붉은악마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사진도 찍고, 앞으로 e-mail을 통해 인연의 끈을 이어가기로 약속도 했다.

나는 또 머리 장식핀과 리본도 선물했는데 바로 해보이며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이너무 좋았다.

오래진 않았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각 처에서 전쟁에 개입하며 국제적 비난을 들으면서도 세계일등국이 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들이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비록 너희의 국적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 되었지만 너희에게는 자랑스러운 대한사람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단다.

부디 잘 자라서 언젠가 다시 돌아와 너를 나아준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 할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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