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기자 정착시켜야

1980년대에 들어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일반 대중은 건강과 의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일반 대중이 원하는 의료 정보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것을 점차 요구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90년대 들어 주요 신문과 방송은 이런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의학 또는 건강 섹션을 만들어 지면을 확대했으며, 방송사는 주요 뉴스 시간에 건강 관련 주제를 고정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 제공하는 의료 정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잘못된 의료 정보는 일반 대중의 의료 행태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부적절한 의료 정보로 인한 의사와환자간의 갈등은 의료 현장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잘못된 의료 정보는 의사의 실수나 잘못 만큼이나 환자나 일반인의 건강에 결정적인 폐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그 폐해의 심각성으로 볼 때 잘못된 의료 정보를 담은의학 관련 보도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됐다.


과학적 건전성 부족

1997년 대한의학회가 서울에서 발행되는 9개 주요 종합 일간지에 게재된 건강 관련 보도 598편을 조사한 결과, 과학적 건전성이 인정되는 기사는 전체의 69.1%였으며 나머지 30.9%는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내용으로 나타났다.

과학적 건전성이 부족한 기사 중 3분의 2는 내용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3분의 1은 명백한 오류이거나 검증이 불가능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적 건전성 평가는 기사의 내용과 관련된 해당 전문의학회에 기사를 의뢰하여 전문의 2인의 공통된 평가를 받는 식으로 이뤄졌다.

즉 적절성 판단이 요구되는 건강 관련 기사의 30% 정도가 과학적 근거가 인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과없이 독자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의료 행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언론의 속성상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기사의 과학적 건전성을 검증할 여유가 없으며 제도적으로 기사를 모니터링하는 장치도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지면의 제한을 받으면서 누구나 읽기 쉽고 간결하게 기사를 써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필수 정보나 설명이 누락되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친 선정성과 과장 보도

1996년 여름 J대학병원에 간암, 위암, 폐암 등의 말기 암 환자들이 2주 동안에 2,000여명이 몰려든 사건이 있었다.

P53이라는 종양 억제 유전자를 넣어주는 치료를 함으로써 말기 암도 많이 호전되었다는 J일보의 머릿기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학회에 발표되어 공개적으로 검증 받은 적이 없는, 10여명에서의 임상 결과였다.

하지만 그 일로 죽음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몰려들었으며, 전국의 많은 의사들은 당혹감과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같은 건강 관련 보도의 선정적인 과장 보도는 언론과 의학 속성의 충돌로 분석된다.

단계적 발전을 거치는 의학연구 성과와 기존의 것과 완전히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언론이 한가지 주제로 타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기자는 기자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보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목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의료 담당 기자는 기사 지면을 확보하고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반 독자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뉴스를 찾는다.

때로는 의사가 이런 선정적인 과장 보도에 기여를 한다. 자신의 의학적 성과가 신문과방송에서 다루어 지면 개인적인 명성을 얻고, 병원에 대한 지명도는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쉽게 연구 기금을 받을 수도 있으며, 병원이나 연구소의 평가 또한 상승될 것이다.

또한 의학 연구 성과가 대중지에 보도되면 그 연구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 연구 논문이 인용되는 횟수가 그렇지 못한 연구보다 많아진다는 조사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의사나 의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신문과 방송에서 다루어 지게 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 의학적 성과에 대한 과장이 일어나며 심지어는 변조도 하게 된다.


관행적인 보도 행태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 김영치 연구위원의 조사에 의하면,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국내 주요 일간지(동아, 조선, 중앙, 한국, 한겨례)에 게재된 6604건의 의학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기사의 정보원이 종합병원인 경우가 전체 기사의 87.3%로 나타났다.

더욱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병원 등 특정 대학 병원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일부 대학병원에 치중된 정보원 관행은 당연이 기사의 내용이 주로 전문가 영역인 진단, 치료에 관한 내용으로 집중하게 된다.

전체 기사의 50.2%가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내용이었으며, 상대적으로 건강관리, 생활 습관, 환경 오염, 스트레스, 사고 중독, 직업병 등은 적게 취급되었다.

또한 이러한 보도 행태는 특정 대학병원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몰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기자는 기사를 선택 작성하는 과정에서 손쉽게 정보의 신뢰성을 얻고 객관성을 유지할수 있는 정보원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일차 의료 현장에서 이용되는 정보나 실생활과 관련된 의료 정보는 소외되고, 기초의학에 관한 내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취급되어 왜곡된 정보의 편향이 일어나게 된다.

또한 언론이 네거티브 연구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도 지적된다.

미국의사협회지는 방사선 노출로 인한 잠재적인 발암 가능성에 대한 논문 중에 어느 특정 질환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한 포지티브 연구와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한 네거티브 연구를 대상으로 어느 연구가 일반 대중지에 더 많이 인용되는 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통계학적으로 유의하게 네거티브 연구보다 포지티브 연구를 현저히 많이 인용 보도하였다.

포지티브 연구가 대중의 관심을 더 끌어 낼 수 있어 이러한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나 제약회사는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약물이나 기기의 사용을 권유하는 입장이라면 상대적으로 언론과 기자가 약물과 기기의 사용으로 인해 일반 대중이 입을 수 있는 나쁜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학 관련 보도에서 지나치게 포지티브 연구만 취급하고 네거티브 연구에 대한형평성을 잃는다면 독자를 위시한 일반 대중은 필요 이상의 공포심과 우려를 가지게 된다.


편견 갈등에 대한 배경 파악부족

상당수의 연구가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와 연관되어 이루어지거나 후원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배경은 공개적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때로는 노출이 안되기도 한다.

또한 학술 대회의 어떤 초청 연사는 제약회사가 후원하고 경비를 부담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오는 의학적 연구들은 관련 회사 의약품의 임상 실험 결과이거나 우수한 치료 효과를 알리는 것이 적지않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 파악 없이 단순한 연구 성과로 보도 된다면 독자는 왜곡될 수도 있는 결과로 잘못 인도될 수 있고 속을 수도 있다.

의학 관련 뉴스보도의 이면에는 이해 관계에 따른 갈등과 의도가 있고 그러한 배경을 파악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제약회사의 보도자료는 후원하는 의학자의 연구 성과로 위장되기도 하고, 여러 병원의 공동 연구로 포장되기도 한다.

연구 성과의 가치와 그것과 관련된 이해관계, 어디에 뉴스가치를 두고 보도해야 하는 지 선택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의학 관련 보도의 개선 방향

의학 관련 보도의 문제점은 저널리즘의 속성과 의료계 내부의 문제에 의해 기인한다.

따라서 의료 정보의 제공자인 언론계와 의료 정보의 생산자인 의료계, 양쪽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계가 해야 할 개선 방법으로는 의학 관련 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의 도입과 정착을 들 수 있다.

그럼으로써 정형화된 보도 형태, 고정된 정보원 선택, 그리고 뉴스 가치에 유사한 판단 기준 등의 문제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과장된 보도자료가 여과 없이 보도되는 일을 막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전문가가 참여하여 보도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과 건전성을 검증하는 모니터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반복되는 잘못은 많이 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의사와 의료계도 잘못된 의학 관련 보도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의사와 의학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의료 정보가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독자나 수용자에게 왜곡되거나 잘못 전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도자료를 제출할 때는 연구 내용과 정보의 적용성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전문학회도 보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 해야 한다. 문제점이 드러난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 검증 받지 않은 치료법이나 진단 방법, 필수 정보 누락으로 인해 왜곡될 소지가 있는 내용, 사실보다 과장된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에 대해 해당 학회는 적절한 근거로 기사의 부적절성을 밝혀야 한다.

의료 정보를 다루는 기자와 의사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전하는 유익한 의료 정보는 요즘과 같은 미디어 시대에 명의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