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단체 강한 저항에 복지부 숨고르기

포괄수가제(DRG) 의무적용안이 24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의협이 건정심 탈퇴를 선언하는 등 공급자 단체의 강한 저항에 "좀 더 시간을 두고 문제가 없는지 치밀하게 살펴보고 준비하자"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른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갈등은 더 깊어져 조만간 제도 시행을 둘러싸고 복지부와 의료계의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려면 적정 수가, 환자 분류 작업, 의사의 행위료 분리 방안, 임상진료지침 및 진료 질 평가 모니터링 방안 마련 등 사전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가격결정권이 없는 상항에서 정부가 정해놓은 원가이하의 진료수가로는 가격이 싼 소모품이나 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의료 질 하락이 우려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시에도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고 의협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2002년 제도시행 전 5년간의 시범사업과 10년간의 실제적용 경험에서 충분히 증명됐다는 것이다. 법적, 내용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시행한 후에 문제가 있다면 보완에 나서자는 것이 복지부의 판단이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갈등
이번 포괄수가제 논란에 대해선 "원칙"을 강조한 의협 주장에 동의하는 의료인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의료계 내부의 서로다른 입장을 들 수 있다. 현재의 포괄수가제는 행위별 수가에 비해 조금이라도 이익이 존재한다. 그러니 경영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중소규모 병원들은 시행을 원하는 분위기다. 인천의 한 중소병원장은 "하루하루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향후 포괄수가제가 의료계를 옥죌 수 있지만 지금은 시행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고 토로했다. 포괄수가제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들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울의대 한 교수는 "건보의 미래 지속성을 위해 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 과정에서 원칙이 훼손되고 의료계만 희생이 되어선 안된다"고 밝히고, 현 상황을 보면 병원계가 반대하고 개원가에서 찬성해야 할텐데 다른 모습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제도의 핵심에 있는 환자측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는 "이 제도 도입에 대해 찬·반을 표명하고 있지 않지만 건보재정 차원에서 지불제도 개편은 찬성한다"며, "만약 도입된다면 환자의 알권리가 보장되고 질평가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료 질 하락"이 현실화 될 경우 환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데 따른 대안을 요구한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환자들의 생각이다.

총액계약제로 이어지나
현 상황에서 포괄수가제는 비용이 더높아 건보재정 안정 차원에서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나 환자들도 모두 찬성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강행하려는 배경은 무엇일까. 시범사업을 거쳤고, 참여율이 높으며, 재정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총액계약제로 나가려는 첫단추로 보는 시각이 있다. 건보재정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20~30년후 건보가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언뜻 논리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제도는 심평원을 없애야 하고 공급자의 반대도 없어야 가능하다. 병원 자율적으로 수가 나누기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불가능하고, 특히 포괄수가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제도의 큰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포괄수가제의 향방에 보건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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