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진 부위원장, "퇴장 미리 작심" 의협 비난


정부의 7개 질병군 DRG 강제적용에 반발해 온 대한의사협회가 결국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를 선언했다.

24일 오후 2시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7월부터 병의원급에서 백내장·편도·맹장·탈장·치질·자궁수술 및 제왕절개분만 등 7개 수술 시 입원진료비를 정부가 미리 정한 가격으로 내는 "포괄수가제" 당연적용 건을 상정했으나, 의협이 원론적인 문제 지적에 이어 퇴장하자 결국 소위에서 추가 논의를 진행키로 했다.

DRG가 이미 지난 2월 15일 건정심에서 7월 시행으로 합의된 내용이라는 점과 의협의 탈퇴가 실제로는 불출석으로 해석된다는 점, 실질적인 공급자인 의협의 동의를 얻지 못한채 시행될 경우 정부측의 부담 등 의-정 모두에 부담이 될 요소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의협의 행보와 제도 운영 전반이 주목되고 있다.

의협, "건정심, 전문가 목소리 합법적으로 묵살하는 기구 전락"

회의장을 퇴장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의협 송형곤 공보이사 겸 대변인은 건정심 탈퇴를 공식화하며, "건정심은 정부가 전문가단체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묵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이 달려있는 중대한 건강보험제도를 오직 정치적 이해관계로써 결정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는 도구가 됐다"며 강도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힘이나 수의 논리로 전문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대로 있을 이유가 없다"며, 당연적용을 당연시한 채 진행되는 논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협은 지난 2004.10.14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언급하며, 의료서비스의 비용의 문제에서는 항상 16:8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강력 지적했다. 절대적으로 정부측에 유리한 인적 구성을 통해 정부는 의료의 질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표결로써 묵살하는 횡포를 저질러왔다는 것.

의협은 "포괄수가제의 강제시행에 항의해 탈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단체의 의견을 또 다시 묵살함에 항의하여 탈퇴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어 "건정심은 정부의 계획에 "의료단체와 합의했다"는 명분을 실어주기 위한 요식행위를 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며, "전문가단체로서 의협의 노력이 정부의 요식행위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건정심의 인적 구성이 바뀌기까지 이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또한 "건정심이 노사가 1:1의 동수로 협의구조를 갖춘 노동위원회와 같이 의·약·치·한 등 각 단체와 정부가 1:1의 협의체를 갖추어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구조적 개선이 없이는 다시 건정심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했다.

정부, "원론적 논쟁만 반복…노력 끝에도 파국 허탈"


의협의 퇴장에 대해 건정심 위원들은 의협측이 안건에 대한 심의를 거부하며 스스로 퇴장했음을 명시함과 동시에, 향후 합리적인 논의를 이어갈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의결했다.

복지부는 시행 예정일이 임박한 상황이고, 수차례 논의를 진행해 온 사안임에도 실질적인 수가 논의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채 원론적인 문제에 붙잡혀 있는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나섰다.

박민수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수가 토론은 전혀 진행되지 못했고, 원론적 문제제기가 이어진 가운데 소위로의 회부를 논의하던 중 의협측이 퇴장했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복지부는 7월 시행을 위해서는 다음주까지 의결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만큼 소위 이전에라도 의협측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협의 건정심 탈퇴선언에도 7월 시행 번복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과장은 "의협이 지속적으로 불출석한다 하더라도 의결에는 문제가 없다"며, "다만 실제로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참석한 제도 마련이 바람직한 만큼 의협의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를 진행한 사공진 부위원장은 "의협 측 대표자들은 아예 퇴장을 예정하고 온 듯 했다"며,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돼 허탈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80%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제도를 확대 시행한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강제적용 대상은 15% 정도다"며, 의협의 극렬한 반대 명분의 미비점을 꼬집었다.

이어 "35차례에 걸쳐 관련 학회, 의료계, 전문가 등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된 것"이라며, 이미 지난 2월 15일 건정심에서 합의된 내용을 전면 부정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강력히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수가현실화를 위해 행위별수가를 적용하는 전체 의료기관의 급여자료와 20개 의료기관의 비급여 자료를 바탕으로 조정한 포괄수가의 수준을 마련했다.

외과와 산부인과는 최근의 의료현실과 여건을 반영(맹장수술 5.3%, 탈장 9.3%, 항문수술 1.3% 인상)하되, 야간·공휴일 응급상황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와 별도로 분리해 추가 보상토록 했으며, 이비인후과는 편도수술에 쓰는 코블레이터의 최근 사용빈도를 반영, 수가를 9.8% 인상했고, 안과는 백내장 수술에 대한 2012년 행위별수가 가격 및 비급여인 조절성 인공수정체 재료를 사용하는 현실을 반영해 10% 인하했다.

실제 수술례를 통해 보면 치질 수술의 경우 병원 18.8%(20만1000원→16만7000원), 의원 16.1%(17만1000원→15만원)으로 줄어들게 되며, 맹장수술은 병원 11%(42만9000원→38만8000원), 의원 5.6%(36만1000원→35만5000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또한 제왕절개분만의 경우, 입원비 부담이 병원 27%(41만3000원→31만3000원), 의원 28.2%(38만7000원→28만3000원)으로 줄어드는데 이는 치질수술이나 맹장수술에 비해 훨씬 큰 폭이다.

복지부는 "DRG가 시행되면 환자의 입원비 부담은 연간 100억원이 경감되며, 의료기관의 경우도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총 진료비가 평균 2.7% 인상(야간·공휴 가산 포함 시 3.5%) 된다"며 "7개 질병군 입원환자 포괄수가제의 병의원 당연적용을 위해 추가로 소용되는 재원은 건강보험재정에서 약 198억원 정도 투입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향후 물가변화 등 여건변화를 수가수준에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신의료기술 보상체계를 포함한 "수가조정기전"을 연말까지 마련, 적용할 계획이다. 수가조정기전에는 기존의 유형별 환자지수와는 별도로 포괄수가용 환산지수를 마련해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포괄수가제 확대와 함께 의료의 질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의료계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수가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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