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하는 기초의학 바로 세워야

의사 직업 선호 시대

의사가 세간에 인기가 있어 온 지는 꽤나 오래 되었지만 요즘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는 IMF 이후부터인 것 같다.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평생직장으로만 알고 살아왔던 회사에서 대책 없이 내몰리면서 직장 걱정이 비교적 덜 한 의사라는 직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금년도 입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순수 학문을 하는 자연계나 그동안비교적 많은 인기를 누려왔던 공대와 의대에 복수 합격한 많은 수험생들이 결국은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세태는 자연계 기피라는 현상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자아내게 하여 급기야는 자연계 지원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중지를 모으는데 다소나마 기여한 바는 있지만, 이러한 중지가 작금의 의대 선호나 자연대 기피 현상을 얼마나 해소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보람있고 또한 안정적이라는 면에서 개인들이 선호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오직 의사가 되기만을 희망한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경제가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다방면에서 많은 활약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의과대학을 포함한 일부 학과로 인재가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앞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과목에 더 몰린다

의과대학 선호 현상은 의학 전공과목 선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대부분의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힘들고 일한 만큼 경제ㆍ사회적 보상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부 전공과목의 기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몸이 시대에 따라 양질의 의사가 많이 있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아픈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일부 전공과목 선호 및 집중 현상도 의과대학 선호 현상만큼이나 큰 문제를 띠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의료수가 보완 조치 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오직 설득이나 도덕적 의무감만 강조함으로써 변화시켜 보려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고루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계는 우수한 젊은 의사들이 자신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의학의 모든 부분에 편한 마음으로 입문하여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통하여 도와줄 수 있는 길을 심각하게 논의하고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학 아직도 미성년 취급

우리 나라에도 서양의학이 들어온 지 100년이 넘어섰다.

그 동안 선배 의사 선생님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우리 임상의학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들어와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학이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아직도 미성년으로 취급받는 까닭은 무엇이며, 또 왜 그렇게 취급받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 우리는 왜 우리 스스로 전 세계에서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의사가 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아직도 세계적으로 대가가 된 의사들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우리의 학회에 세계적 대가들을 모셔다 놓아야만이 훌륭한 학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우리가 남들이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들어 놓은 지식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들"이 이루어 놓은 의학을 단지 배워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만 서면 왜소해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새로운 의학을 창출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스스로 배운 깊은 지식은 체험 없이는 쉽게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앞에 자신 있게 서지 못하는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국내에서도 한의사들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기초의학 기피 현상

지난 100여 년 간 대부분 남들이 이루어 놓은 의학 지식을 소비하여 임상의학의 발전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우리도 우리 스스로가 자체 개발한 의학을 세계 시장에 당당히 내 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지식 소비자 입장에서 지식 창조자 입장으로 어느 정도는 돌아서야 할 때 인 것이다.

우리의 지식 창조 없이는 "우리 의학"이라고 당당히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의학"을 창조해 감에 있어서 임상 의학자는 물론 기초 의학자가 차지하는 중요도는 생각보다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ㆍ시간적 여유와 안이한 생활을 추구하는 작금의 세태는 기초의학 부분을 더욱 더 얼어붙게 하여 기초의학자들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다.

과거에도 물론 기초의학 전공자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요즘 모든 의과대학의 기초의학 교실에서는 기초의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서는 의과대학 졸업자를 만나는 경우가 매우 희귀하다.

이러한 세태를 맞이하여 기초의학자들은 세태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공하기만 하면 대학교수(의과대학 졸업생에게 대학교수란 선망의 대상이 아니긴 하지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과거와 비교해 연구 여건도 많이 개선된 현재의 기초의학 위상을 생각해 보면 의과대학 졸업생들의 기초의학 기피 현상이 아쉽기 짝이 없다.

현재 정부에서도 의과대학생들이 질적으로 매우 우수한 집단이고, "우리 의학"창출을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부족하기는 하지만 기초의학 육성책 몇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초의학 전공자들의 병역을 면제해 주고 장학금을 지급해 주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초 의학자들은 정부의 이러한 안들이 실효를 거두어 기초 의학 중흥에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 의과대학과 의학 전문진료 과목 중에서도 속칭 좋은 진료과목을 선호하는 세태를 바꾸기에는 정부의 작은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의료계에서도 "우리 의학" 창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우리 의학"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기초의학의 중요성을 십분 이해하여, 기초 의학자도 경제ㆍ사회적으로 임상 의사들 못지 않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학 창출 노력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분자생물학교실에서는 나름대로 "우리 의학"을 만드는데 작은 기여나마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아 생각만큼 빨리 많은 결과를 내놓고 있지는 못하지만, B형 간염 바이러스의 병리생태를 밝혀 발표할 수가 있었다.

현재는 면역억제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cyclosporin A의 세포 내 결합 단백질인 cyclophilin A가 항산화작용이 있고, cyclosporin A의 독성 작용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밝혀 투고 중에 있다.

인체의 산화작용은 현대의 많은 만성 질환들은 물론 노화의 발생 원인으로도 중요하게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항산화작용이 있는 단백질을 적절히 이용하면 이들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cyclophilin A와 이 단백질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삽입된 생쥐 (transgenic mouse)를 만들었고, 이들을 이용하여 당뇨병, 심장병, 뇌졸증, 노화 등을 예방ㆍ치료할 수 있는 방법 등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cyclophilin B를 이미 클로닝 하여 돌연변이 유전자를 만들었고, 이들을 이용하여 cyclophilin B의 작용에 관하여도 연구 중에 있다. Cyclophilin B의 transgenic mouse와 gene knock-out mouse를 만들 예정에 있다.

아울러 우리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insulin 작용 기전 분야에도 많은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cyclophilin에 관한 연구도 insulin 작용 기전을 연구하는 중에 부수적으로 얻게된 결과임을 밝혀두고 싶다.


제도적 뒷받침 필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분자생물학교실은 7년 반전에 독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신생 교실이기 때문에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나름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우리 의학"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초는 다졌다고 생각한다.

이 기초를 더욱 더 다져 도약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자들과의 협력연구는 물론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연구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의학계에서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분자생물학교실이 "우리 의학" 창출에 한 몫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의과대학 졸업생들도 세태만 너무 쫓을 것이 아니라 세태를 개선해 나가면서 참다운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가지 좋은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얻은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싶다.

특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공동연구를 하시고 계시는 연세의대 생화학ㆍ분자생물학교실의 안용호 교수님, 항산화작용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신 원자력병원의 이수재박사님, cyclophilin A의 연구에 많은 조언을 주신 동서대학교 생명공학과 이진화교수님,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 실험실 동료ㆍ후학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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