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요 병원들의 과제는 연구중심병원으로의 도약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연구중심병원의 구체적인 방향이 설정돼 보건복지부는 오는 4월 연구중심병원 공모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층 분주해진 병원들이 연구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연구부원장직을 신설하기도 했다.
올바른 연구중심병원으로 가기 위해 현재 병원과 의사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2013년부터 9년간 2조4000억원 투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보건의료기술 진흥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을 공포, 연구중심병원의 자격요건을 발표했다. 연구중심병원에는 2013년부터 9년간 총 2조 4000억원(민간부담 60% 포함)이 투자된다.

공포된 개정령에 따르면, 연구조직은 연구 관리를 위한 독립적인 행정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연구인력 성과가 형평성있게 반영될 수 있는 인사제도를 운영하고, 연구비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계정과 회계기준을 갖춰야 한다. 또 연구관리 전담조직을 두어 계약체결 이행, 지적재산권 취득·관리, 연구윤리심의위원회 등 운영지원 등을 수행해야 한다.

시설·장비 인프라는 생명자원은행과 임상시험센터를 갖춰야 하며, 연구 인력이 상시적으로 근무할 별도의 연구시설과 특수의료장비 등 연구 활동에 필요한 기구·장치·공간을 구비해야 한다. 진료 성과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프라를 갖춰 연구에 집중하는 병원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병원들, 연구 강화 역량 가속

예산 규모가 크고, 앞으로 더 지원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주요 병원들은 저마다 연구 강화에 가속을 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연구중심병원을 위한 개방형융합의료기술연구소를 개설하고, 연구중심대학으로까지 표방해 기초연구를 위한 연구부학장을 임명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보건대학원, 의대, 치대, 간호대학 내의 기초와 임상의 융합연구를 위한 틀을 정립,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창 공사 중인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도 기초연구를 위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별도의 연구부원장직을 신설했다. 취지는 연구역량 강화와 연구중심병원으로의 전환을 위한 것이다. 다른 병원들도 신설 움직임이 잇따라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의료원 내부 교수진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막대한 투자와 인력이 들지만, 80%는 연구중심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조사됐다. 1개 병원에 집중 연구를 위한 투자에도 65%의 찬성 의견이 제시됐다.

이화의료원은 '국내 톱(Top) 10 연구 중심 상급 종합병원으로의 도약'을 위해 '연구 중점 임상 교수' 시스템을 도입했다. 진료, 교육, 연구 활동 중 연구 비중을 최소 50% 이상으로 해 기초·임상의학 연구를 활성화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진료→연구 패러다임 전환

연구중심병원은 말그대로 그동안 진료 위주였던 병원의 역할을 연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80%을 연구에 투자하고 20%는 진료의 역할을 하면서도 세계적인 병원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존스홉킨스병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다수의 원장들은 이제 진료수익으로 생존하던 시대가 끝나고 연구중심병원의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산업화로 이어지는 것이 곧 병원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연구중심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 분위기 조성과 인프라 확충이 중요하다. 우선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당장의 진료수익 감소도 감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병원 자체의 투자나 국책연구비 수주가 가능한지와 실적과 연구성과, 특성화, 인재활용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지속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병원 수익창출 또한 중요한 과제지만, 선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메사추세츠대학병원의의 경우 연간 4000억원 연구개발비 투자한 이후, 암젠에 엔브렐을 기술이전해 연간 600억원에 라이센싱이 가능했다.

"의사들의 적극적인 역할 중요"
삼성서울병원 연구협력실장 방사익 교수

연구중심병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바이오·의료산업화의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협력실장 겸 지식경제부 BMCC(바이오의료커넥트센터) 센터장인 방사익 교수(성형외과)는 "앞으로 의사가 바이오, 의료기기 등의 최종 고객에서 개발 초기부터 참여하는 공동 연구자가 된다"며 "연구에서 방향성과 피드백, 오리엔테이션을 가능하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가 산업화에 관여하게 되면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줄이고 위험 관리까지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방 교수는 "산업계에서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병원, 의사가 가지고 있는 상품성, 경험, 지식을 이용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며 "현장에서의 아이디어로 시장을 끌고 갈 수 있으며, 결국 병원이 기업과 시장의 중간단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은 R&D에 투자하고 이윤을 얻지만, 병원의 R&D 인프라를 이용하면 맞춤형 R&D가 가능해지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

지경부 과제인 BMCC의 개념이 보다 활성화되면 병원을 중심으로 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인력과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고기술경영자인 CTO개념도 병원에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허 검색이 중요하며 계약이나 라이센싱아웃을 하게 되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아우를 수 있는 별도의 서비스를 늘리게 되면, 노하우가 필요한 일에 대한 컨설팅을 할 수 있고 연구개발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저절로 연구중심병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방 교수는 "연구중심병원 전환 과정에서 단순히 연구비를 따내는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며 "임상에서의 아이디어를 늘리고 활성화하고, 기업에 채널을 연결해 준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과열은 금물. 모든 병원이 다 연구에 매달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진료수익 감소를 안고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 밖에 없다. 방 교수는 "거시적인 국가경제처럼 연구중심병원은 분명 초기 시간이 길고 투자, 지원도 많이 필요하다"며 "나눠먹기식 지원이 아닌 잘할 수 있고 전문성을 살려 성공사례가 제시될 수 있도록 하고, 진정한 성장동력을 갖추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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