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회 토론회 “제약산업, 신발·섬유처럼 도태” 위기감 팽배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일괄인하정책은 제약산업은 물론 고용 및 일자리 창출에 있어 치명타가 될 것이다.”


11일 오후 2시 30분 보건복지위 이재선 위원장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정부의 약가인하정책 약인가 독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약가일괄인하정책을 이같이 평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약가일괄인하정책은 옥석을 가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측 입장에 대해 국내 상위 10위권 제약사의 도산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심각성과 악성실업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최희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관(사진)은 ‘약가제도 개편과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에서 최근 경희대 리베이트 사건을 언급하며, “경희대병원의 한 과에서만 5억 원이라는 리베이트가 확인됐다. 전체 병원으로 확대한다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될 것이고, 이 문제에서 제약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약가인하정책을 통한 거품제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약품비의 급격한 증가로 의료비 폭발의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이며, 제약산업의 옥석을 가릴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이 최 정책관의 부연.

그는 “국내 제약산업은 성장 잠재력이 크고, 새로운 시장창출 가능성도 높으나 국내시장에 안주해 국제 경쟁력이 비흡하다”며,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옥석가리기’에 학계는 물론, 제약, 노동계는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毒이다”

이범진 강원대 약대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후 제네릭 육성을 목적으로 큰 폭의 약가인상과 생색내기식의 다양한 R&D 제안 등은 모두 정부 정책이었다”고 꼬집으며, “당시 혁신하려는 제약사들을 온실 속 제약사로 키운 정부가 한번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같은 정책을 세우는 것은 분명 산업발전에 독이 될 것이다”고 비난했다.

다양한 건강보험재정의 증가원인을 두고 약가 후려치기의 실효는 미약할 것이며, 특히 제대로 된 육성에 나서보지도 않은 정부가 이른바 ‘옥석가리기’에 나선다는 것은 그 책임면피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옥석가리기라는 명목하에 ‘인하’라는 악수로 제약사를 평가하거나 관리하는 것은 안될 말”이라며, “생존 하든 도태 하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인하 폭과 시기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갈원인 한국제약협회 전무이사는 특수상황을 일반화 해 리베이트 비중을 20%로 제시한 공정위 조사에 불만을 토로하며, “모든 제약사가 20%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호도 당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갈 이사는 “지난 2009년부터 이어진 리베이트에 의한 약가인하는 물론, 쌍벌제 등의 제도시행에 제약사들도 동의했으며, 시행을 앞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제약사들의 아이디어”라며, 자정활동에 주력하고 있음을 강력 피력했다.

이어 약가인하에 따른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포기 우려를 통해 단계적 정책 추진을 강력 촉구했다.

갈 이사는 “기업은 연구개발보다 생존이 우선”이라며, “이제 태동기 단계인 제약사의 연구개발에 정부가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모습이 필요하다. 리베이트 근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고 호소했다.

R&D 투자 위축에 대한 우려는 다국적 제약사에서도 터져 나왔다.

이규황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부회장은 “제약 R&D에 1조 원을 투자해서 돌아올 수 있는 이득은 다른 산업에 비해 평균 70%가 높다”며 R&D를 통한 경제성장 효과를 강조, 정부정책의 재조정 필요를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 3,4상 위주의 임상에서 이제 1상, 2상이 시작되고 있고, 그에 따른 인프라 구축도 많이 된 상태인데 다시 위축되면 참여기관은 물론 고급인력 등이 줄어 경쟁력이 후퇴되고 말 것”이라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분야 또한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높였다.

이 외에도 고용 및 일자리 창출 등 고용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셌다.

이명윤 한국노총 화학노련경기남부지방본부장은 “약가인하정책이 너무나 폭력적이다”며, “정책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면 머지않아 악성실업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에 대한 아무 대책도 없는 정부안에 최대 피해자는 결국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것.

그는 “일자리 안정과 보육유지는 생존권적 기본권이다. 약가인하정책은 고용정책적으로 재검토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등재의약품 약가인하정책의 2년 유예와 인하폭을 합리적으로 재설정 해 줄 것, 2014년까지 협의체를 구성해 약가제도를 재설정하고, 이후 3년간 점진적으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藥이다”


반면 이같은 반대에도 불구 김진현 서울대간호학과 교수는 “불법 리베이트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는 제약산업을 건전화하는 약(藥)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국민이 낸 세금(건보료)이 리베이트로 들어가는 것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

그는 “제약사가 반발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실효가 있다는 증거”라며, “국제경쟁력측면에서도 체질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이 시기를 이겨 낸다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정부의 약가일괄인하가 제약산업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노무법인산하 김원기 대표는 “정책을 고용정책적 측면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약가일괄인하와 같이 일자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에 대해 일자리(고용)평가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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