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당뇨병학회, 근거 없는 탁상공론…당뇨병 관리 10년의 후퇴

10월 시행을 앞둔 약국본인부담률 차등제도에 대해 대한당뇨병학회(이사장 박성우,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당뇨병학회는 2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뇨병을 경증질환으로 분류한 약국본인부담률 차등제도가 본래의 취지인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과 대형병원 쏠림현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당뇨합병증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우 이사장은 "당뇨병 관리가 10년은 후퇴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며 "당뇨병 산증, 혼수를 동반한 당뇨병, 인슐린 투여 환자를 제외한 모든 당뇨병 외 합병증을 포함한 당뇨병까지 경증으로 지정된 것은 잘못된 판단이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만성신부전의 경우 차등대상이 아니지만 만성신부전을 동반한 당뇨병은 약값이 차등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복지부가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과 대형병원 쏠림현상 개선을 대의로 내걸고 있지만, 근거 없는 정책은 당뇨합병증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과 의료비 이중 부담, 불편 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뇨병을 경증질환으로 분류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수년간 국내 5위의 사망원인으로, OECD 평균 6.3%보다 높은 7.9%의 유병률을 보이는 당뇨병이 경증일 수 없다는 것. 당뇨병 사망률도 OECD보다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심장학회(ESC)·유럽동맥경화학회(EAS) 2011년 가이드라인에서eh 당뇨병을 심근경색 병력자와 같은 ‘초고위험군(very high risk)"으로 분류하고 있다.

약국본인부담률 차등제도에 대해 대한당뇨병학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지난 6개월 간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진행했음에도 제도의 시행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회가 당뇨합병증 환자들이 대부분 고령에 경제적 능력이 낮아 중증일 경우 부담이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복지부는 합병증 환자들이 당뇨병이 아니라 합병증 또는 동반질환으로 질병코드를 바꿔 진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당뇨병 환자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한 대한당뇨병학회 박태선 보험법제이사(전북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2011년은 당뇨병 환자들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해"라고 말문을 열었다. 수년 간의 노력으로 당뇨병 3제 요법이 허가됐고, 제1형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검사 스트립이 수가가 인정됐지만, 몇 개월이 지나 약국본인부담률 차등적용 고시안이 발표됐다는 것이다.
제도에 대한 인식조사는 설문조사 형식으로 510명의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에서는 3명 중 1명이 합병증이 있는 것을 나타났고 눈, 심장, 신경, 말초혈관 합병증은 각각 10% 이상이었다.

환자들은 당뇨합병증과 관리의 어려움을 우선 꼽으며 당뇨병이 중증질환이라고 답했다. 박 이사는 "이미 수년 간 언론매체들을 통해 당뇨병이 "slow cancer"라고 홍보해 온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를 뒤집는 이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환자들의 답변에 무게를 실었다.

무엇보다 "합병증의 발생 및 재발에 대한 걱정이 있다는 답변이 85% 이상,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비율은 70%로 나타났지만, 정작 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 환자는 52.7%로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70%가 제도 시행 후에도 합병증 치료가능, 전문성, 기존 기록 보유 등을 이유로 의료기관을 옮기지 않겠다고 답한 것에 대해 박 이사는 "제도 시행으로 발생되는 부담이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와 함께 박 이사는 "그간 논의의 성과라면 52개의 대상 질환 중 당뇨병의 예외규정을 가장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라며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복지부의 행태를 지적했다. 또 이번 제도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 박 이사는 "10월부터 시행되는 제도를 알리는 포스터가 9월 15일이 돼서야 병원에 공시됐고, 아직 포스터를 전달받지 못한 병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이사장은 학회가 비판하는 부분이 제도의 취지가 아니라 당뇨병 관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물 복용만으로 관리될 수 있는 질환이 아닐 뿐더러 의료기관 간 유기적인 전달체계가 필요한 만큼, 진료의뢰서가 있어도 종합병원에 왔다는 이유로 50%의 약값을 부가하는 제도가 올바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미 일본에서 2002~2003년 당뇨병 환자의 본인부담을 20~30% 인상했지만, 합병증 없는 당뇨병 환자들의 치료효율이 감소했다는 연구도 발표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당뇨병 환자 교육이 혈당감소, 체중감소, 지질수치 향상 등을 가져왔고, 62%의 약제비 감소로 이어졌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제시했다. 여기에 박 이사는 "10여년 동안 당뇨병 관리단계 교육, 당뇨병 교육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병의원의 당뇨병 환자 관리 능력도 높인만큼, 이에 대한 인센티브 인정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 이사는 11월에 있을 대한당뇨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3제 요법의 전후 비교 세션을 마련해 당뇨병에 대한 집중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현재 종합병원 이상에서 진료받는 당뇨병 환자는 20%뿐"이라며 병의원 간 이익다툼이라는 원리를 원천 봉쇄했다.

유럽당뇨병학회에서 세계적으로 환자수가 700만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고, 최근 성료한 만질환 UN 고위자 회담에서도 암, 심혈관질환과 함께 주요 과제로 다뤄진 당뇨병이 국내에서 어떤 측면으로 다뤄질지 지속적으로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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