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분업이후 최대 가격 인하 산업붕괴 우려
경쟁력 없는 회사들 도산 불가피 M&A 가능성 커져

"보험약 8800여품목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17% 인하하겠다", "오리지널-제네릭 상관없이 동일성분 동일제제에 대해 동일한 가격을 책정하겠다" 복지부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8·12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파장이 제약·의료·유통전반에 걸쳐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움직임이다.

당장 제약계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항변하면서 "2만 제약인이 거리로 나앉는 등 제약산업이 붕괴될 것이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아울러 유통계도 약가인하에 따른 도매마진 축소를 우려하면서 통폐합 수순을 밟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병원·의료계는 처방쏠림 현상을 지적하면서 외자의약품 처방확대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제약계-산업붕괴 행정소송으로 막을 것

제약사들은 이번 8·12 약가제도가 "업계와 논의조차 없었던 원칙도 기준도 없는 졸속 행정"이라고 반발하면서 행정소송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약가제도가 실행돼 왔지만 제약사들이 즉각적으로 행정소송을 결정한 데에는 이번 약가인하가 도저히 감내할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약가인하폭은 평균 17%로 의약분업이후 최대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제약시장 규모는 약12조8000억원(국내외 제약사 매출)인데 이중 일괄약가 인하 대상 규모는 8조5764억원이다. 여기에서 17%가 인하되므로 총 1조 4580억원이 제약사 매출에서 줄어드는 셈이다.

여기에 이미 기등재약 목록정비와 지난해 10월 도입한 시장형 실거래가제 영향으로 1~2조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최소 2조 5000억원에서 최대 3조5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제약협회 측은 "13조 보험의약품 시장에서 2~3조원의 손실이 일시에 발생하는 충격은 제약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자칫 환자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복지부가 이렇게 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제시한 항목은 크게 두가지다. "낭비가 심한 과다한 약품비"와 "기술개발보다 판매·영업에 집중하는 후진적인 제약산업"이다.

약품비의 경우 OECD국가의 1.6배 수준이고 제네릭 가격도 선진 16개국 중 1위라는 것이다. 약의 과다 사용과 고가 위주 처방도 문제로 꼽았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영세규모의 제약사가 난립하고 기술개발보다 판매·영업에 집중하는 후진적 경영구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수희 장관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등재순서에 따라 약가를 차등하는 계단식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보니 품질경쟁보다는 선등재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연구개발비는 적고 판매관리비는 많은 비효율적인 경영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이번 약가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 "감내할 수 있는 시간은 줘야"

의도는 알겠지만 파장은 만만찮을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 필수 산업인 제약산업을 이렇게 한순간에 제압하는 행위는 다소위험한 발상이라는 의견이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신약개발의 역사가 짧은 국내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시한 상황이고 시행하더라도 적어도 제약사 스스로가 감내하기위한 시간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건행정학 박사는 "13조시장에 3조가 빠진다는 것은 제약사들에게는 존립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만약 제약사들이 필수의약품에 대한 공급거부 사태를 선언할 경우 이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사태 이후 강도높은 인력감축안이 나올 경우 화학노조가 반기를 들 것으로 보여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화학노조는 대다수 제약사를 회원으로 하고 있다.

시행 시기나 가격인하폭 면에서도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다. 현재 제약업계는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cGMP투자를 지난 2~3년전부터 해오고 있다. 제약사별로 적게는 100억에서 많게는 600억원까지 시설투자를 해왔는데 그사이 쌍벌제 시행,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연쇄적으로 시행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네릭만 치중하고 신약개발에 소홀하다는 것도 너무 단정적인 평가라는 지적이다. 업계는 선진국보다 신약개발역사가 짧고 자체 보유신약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로 제네릭의약품에서 현금수익원 확보를 통해 매출액대비 평균 10%의 순익율을 창출하면서 매출액의 6.7%(순이익 대비 평균 67%)가량을 신약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는 상황도 감안해줘야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무시할 경우 국내 제약산업계의 지속가능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미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신약개발재투자 여력저하로 이어져 신약개발포기 사태가 발생될 것이라는 부분이다.

신약개발조합 여재천 사무국장은 "일부 제약사들의 경우 후진적 경영구조가 틀린말은 아니지만 모든 제약사들이 그런게 아닌만큼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줘야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제약산업계의 경쟁력 저하는 관련산업의 경쟁력 동반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공조체계구축과 투자를 위해 한국을 찾는 다수의 해외투자기업들의 관심과 시선을 타 국가로 유도할 수 있어 국가적인 손실도 막대하다"며 신중한 정책론을 강조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의약품도매업체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약가인하에 따른 영향이 도매마진 인하 등으로 오지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도매협회 허강원 국장은 "약가마진은 의약품유통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인데 이를 깍는 것은 제약업의 고통을 도매업체에 전가시키는 것"이라면서도 "실제 약가폭풍이 닥쳐오면 이문제에 대해 논의가 될 것이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어 "도매업체간 경영어려움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뭐했냐 제약사 책임론도 제기
"적극적 M&A 필요 외면시 줄도산 예상"

이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제약사 책임론도 나오면서 이번 기회에 변화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각종 압박 정책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불법 리베이트는 정부로 하여금 여전히 약가 거품이 존재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는 평가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처방을 댓가로한 리베이트가 성행하고 있으며, 과도한 선물이 오가고 있다는게 제약사 마케팅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정부의 지적대로 기술개발보다 판매·영업에 집중하는 후진적 경영구조도 문제다. 지난 10년간 매출액은 260%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을 통한 신약개발은 하지 않고 제네릭만 개발하는 형태는 정부의 약가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수 밖에 만들었다는 평가다.

해결책은 기업매각, M&A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다소 비관적이다. 한 제약단체 임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들의 M&A문의가 활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대부분 수익구조가 같고 기업오너들의 마인드가 닫혀있어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M&A에 실패할 경우 상당수 회사들이 도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견했다.

병원들 "같은 값이면 오리지널 쓸 것"

정부의 8·12 약가제도에 대해 병·의원계 시각은 어떻까? 사실 이번 제도에 대해 병의원계서는 관망적인 입장이지만 오리지널과 제네릭이 동등한 약가에 적용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8·12 약가제도안을 보면 내년 1월1일부터 동일성분 의약품에 대해서는 동일 보험 상한가가 부여된다. 즉 성분이 같으면 오리지널이나 제네릭이나 같은 약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단 특허 만료후 1년까지만 오리지널의 약값은 원가격의 80%에서 70%로 적용하고 제네릭은 68%에서 59.5%로 낮춘다. 이후부터는 오리지널 제네릭 할 것없이 53.55%로 일괄 인하한다는게 복지부의 방침이다.

제약계는 이렇게 되면 제품력과 브랜드 가치면에서 높은 오리지널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국산 제네릭은 처방에서 밀리는 이른바 오리지널 처방쏠림현상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처방권을 잡고 있는 의사들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린내과 강경구 원장은 "의사는 환자가 빨리 치유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약을 쓰길 원한다"며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값이 동일하다면 상당수 의사들은 오리지널을 선택할 것 같다"고 견해를 내비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도 "이왕이면 오랜 임상을 통해 입증된 오리지널 약을 쓰겠다"고 밝혀 오리지널 선호 현상을 예고했다. 이 교수는 "본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 때문 제약사들은 동일성분 동일가격제도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약개발조합 측은 가격차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제네릭의약품이 시장에서 외면받게되고 결과적으로 매출하락, 재무구조악화, 기업부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약조합 관계자는 "신약개발 재투자 재원은 대다수 제네릭의약품 매출로부터 조달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일가격정책은 국내 연구개발중심 제약산업을 비롯한 제약산업계 전체의 부실과 공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기등재 의약품에도 확대 적용시 제약산업의 경쟁력은 일시에 저하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제네릭의 불가피한 추가하락이다. 제약사들은 정부가 53.55% 이후 등재되는 제네릭에 대해 최저가 미만에서 자율롭게 결정할 수 있게 한 조치는 결국 오리지널과 경쟁하기 위해 제네릭을 추가로 내려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실질적인 인하폭은 더 클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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