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사 50명도 안돼…국가 방역인력도 태부족

세계보건기구가 지난 3월 공식 경고한지 불과 3개월만에 30여개국으로 번져나가 8,500여명이 감염되고 800여명이 사망함으로써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그 감염력이나 치사율에 있어서 인플루엔자 등 여타 전염병에 비해 손실이나 피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정체를 알 수 없이 급속도로 전파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간 사람과 물자의 왕래 제한으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온 지구촌을 들썩이게 했다.

미흡한 방역체계에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한명의 진성환자도 발생하지 않아 모두가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적, 또는 최우수 방역국가로 평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빚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스 사태로 인해 미흡한 우리나라 방역체계의 재정립과 질병관리 전문기구의 필요성을 정부 당국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켜주었다. 더불어 인기 없는 전문과로 전락한 감염분야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교훈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 지역,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로 순식간에 비화되는 지구촌 시대다.

전염병의 매개가 되는 사람은 물론 식용이나 애완용 동식물 등 모든 것이 국경을 빈번하게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적인 전염병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국내 발생례는 없지만 외국처럼 생물테러의 가능성도 있다. WHO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이미 수년전부터 강조하면서 각국의 대응태세를 촉구한 바 있다.

이처럼 전염병으로 인한 심각한 일들이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지만 만성병에만 치중하는 우리나라 보건정책이나 의료계의 감염학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소홀하다.
전염병의 전반적 업무를 담당하는 국립보건원은 전염병관리부, 세균부, 바이러스부, 생명의학부, 유전체연구소, 보건복지연수부 등 6개부에 170여명에 불과, 효과적으로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은 태부족 상태이다.

국가 전염병관리의 최일선에 있는 방역과의 인력은 임시연구생을 포함 20명이 채 안된다. 더욱이 방역과의 특성상 의료관련 전문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의사면허 소지자는 단 2명뿐. 이번 사스사태처럼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하면 일반 행정직원들까지 전염병업무에 투입되는 등 지극히 비전문적이며 열악한 상태이다.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6개 센터와 1개 연구소, 4개 담당관 등 모두 8,500명이 종사하고 있고 올 예산이 42억달러(약 5조원)이다. 보건원(NIH) 예산은 별도로 273억달러(약30조원)책정돼 있다. 이를 우리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질병 및 전염병관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정부조직 확대불가 방침이란 단순한 선거공약상의 이유로 좌절위기를 맞고 있는 국민건강의 백년대계와 직결되는 전염병 전담기구 설치문제는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가"란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민간부문의 감염전문인력 양성 및 육성책도 시급히 강구돼야 한다. 이번 사스사태처럼 전염병이 공공보건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크나큰 영향으로 미뤄 볼 때 감염학 육성이 의료정책의 최우선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련분야 학자들도 있지만 기존의 감염 전공의사는 5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고의 비인기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그나마 최근 병원경영자들이 원내감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감염전공의사수가 다소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감염학 전문의사를 채용하지 못한 대학병원이나 대형종합병원도 부지기수다.

현대 감염전문의사들은 과거와 달리 환자진료 이외에 직·간접적으로 소속된 의료기관에 많은 수익을 창출해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돼 있다.
일반 전염병이 많지 않은 미국의 메이오클리닉이나 하버드대학병원 등이 감염전공의사들을 30명 이상씩이나 확보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면밀한 비용분석에 의해 수익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장기이식 의료기관의 원내감염관리가 미흡하면 감염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으며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간단한 충수염수술일지라도 마찬가지. 완벽한 원내감염대책을 확보한다면 이같은 비용의 절감은 물론 입원기간 단축과 병상회전율 향상이란 긍정적인 경영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 항생제의 오남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보험 진료비 삭감의 큰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항생제로 인한 삭감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원내 감염에 노출시간이 많아 항상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감염을 예방하는 기능은 엄청난 경제적인 가치로 평가된다. 수련병원의 경우 감염전문의사의 채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만 대책본부를 설치한다, 예산을 반짝 지원해준다는 등 일과성 임기응변식의 땜질대책만을 되풀이 한다면 방역후진국은 영원히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과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를 생각하는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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