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만성질환시장 대부분 외자사 장악

고령화 사회가 보내는 적신호가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지난 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전년동기 대비(6조 308억원) 14.9% 증가한 6조 9,276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전체 진료비 21조 4,861억원의 32.2%를 차지하는 수치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고령화로 인한 진료비, 약제비 상승 등의 부작용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시그널이라 볼 수 있다.

눈여겨 볼 점은 노인 진료비 상위 3대 질환인 고혈압, 뇌혈관질환, 골관절염이 노인 전체 진료비의 20.2%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외국계 제약사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질환들이라는 것.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은 현실에서 국내 제약사들은 안방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 필요한 대책은 무엇일까.

고혈압, 뇌혈관질환, 골관절염 시장 외자사 독주
고령화로 커진 대표적인 곳이 고혈압 시장이다. 2002년 약 5,000억원 수준이었던 고혈압 시장은 지난해에 1조 3000억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2010년 기준으로 고혈압 시장의 강자는 대웅제약의 올메텍이다. 뒤를 이어 노바티스의 디오반, 종근당의 딜라트렌, 아스트라제네카의 아타칸, 화이자의 노바스크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올메텍이 다이찌산쿄의 라이센스 인 한 제품인 것을 포함해 외국계 제약회사가 고혈압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약품의 아모잘탄이 지난 해 2009년 대비 304%, 종근당의 살로탄이 26% 상승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 할 수 있다.

뇌출혈, 뇌경색, 뇌졸중 등으로 대표되는 뇌혈관질환 치료제 중 항혈전제 시장은 사노피아벤티스의 플라빅스가 삼진제약의 플래릭스, 동아제약의 플라비틀을 두 배에 가까운 수치로 제치고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게다가 플라빅스는 특허 만료기간을 2012년 5월 17일까지 연장해 당분간 플라빅스의 시장 선점이 예상된다.

지난 해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 항혈전제 시장에서 삼진제약의 플래릭스의 플러스 는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머크(보라팍사), 노바티스(엘리노그렐), 화이자와 BMS(아픽사반), 베링거인겔하임(프라닥사) 등이 신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퇴행성관절염 시장도 역시 화이자의 세레브랙스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에어탈과 삼일제약의 모빅, CJ의 솔레톤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제품들이다.

고령화 가속화, 제약 주권 우려 목소리
이처럼 노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3가지 질환의 시장만 봤을 때도 외국계 제약사들의 독주는 굳건하다. 여기에 당뇨, 고지혈증, 골다공증 등을 포함시키면 상황을 더욱 나빠진다. 제약주권 상실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부분이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지난 해 6월 기준 국내 상위 제약사의 상반기 원외 처방 시장 점유율은 1년 전에 비해 1.6% 줄었다. 하지만 외국계 제약사의 시장 점유율은 0.3% 증가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만성질환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꾸준한 약물 사용량이 증가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점을 제약산업의 긍정적 요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외국계 제약사의 제품이 시장을 점유한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국내 상위 매출을 기록하는 A제약사는 고혈압치료제, 항혈전제, 골관절염 치료제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제약사 관계자는 “회사의 주력 품목 자체가 고혈압, 항혈전제 등 만성질환에 집중돼 있고 또 이러한 제품이 매출 비중도 높다”라며 “앞으로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것에 대비해 제품 파이프라인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또 시장 선두 제약사인 B제약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제품이 시장성 있다고 판단되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지 고령화에만 초점을 두고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열악한 상황임에도 신약개발은 계속해야
대부분의 제약사가 고령화를 대비해 장기적 안목에서 제품 파이프라인을 짜지 않고 있다. 더 솔직 하자면 안 짜는 것이 아니라 못 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모 제약 전문가는 “고령화 대비 등 장기적 안목의 파이프라인을 짜려면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영업 이익률이 어느 정도 돼야 R&D에 투자할 수 있다”며“ 국내 대형 제약사의 영업 이익률은 14% 정도다. 미국 26%, 일본이 22%니까 우리는 R&D에 쓸 돈이 없는 게 문제점이다. 또 정부 지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라고 국내 R&D 투자가 부족한 이유를 설명한다. 부족한 투자의 결과는 빈약한 신약개발로 이어진다. 매년 미국과 유럽이 11개와 17개의 신약을 출시하는 사이 우리는 1.6개를 개발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신약개발 투자를 위해 연간 1억 달러 이상 집행하는 연방정부기관들에게 R&D 지출의 0.2%를 의무적으로 할당하고 있다. 또 아일랜드는 4300억원의 자금을 운영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식경제부의 바이오메디컬 펀드 운영으로 200억원 수준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열악한 국내 상황임에도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약개발연구조합 여재천 국장은 “국내 제약사들이 R&D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조금씩 상황은 좋아지리라 여겨진다” 며 “상위 제약사들은 전체 파이프라인을 기획할 때 노인 인구가 많아질 것에 대비해 방향성을 잡고 갈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키움증권 김지현 애널리스트는 “국내 제약사들도 고령화를 대비해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산 15호 신약인 보령제약의 고혈압약 카나브가 오는 3월 1일 출시되고, LG생명과학이 당뇨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노바스크, 아마릴, 달라트렌 등이 신약 특허가 만료되면 대규모 제네릭 시장이 열리면서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 판매를 통해 신약으로 나아갈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장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R&D 강화 등 제약사 개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의 환경을 봤을 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핵심인재 육성, R&D 투자에 대한 과감한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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