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심리부검의 시행이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심리부검의 안착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심리부검의 대표적인 성공 적용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곳이 군대다. 2008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심리부검소위원회를 결성, 의문사로 발견된 군인들의 죽음의 원인 규명에 나섰다.
 
▲군 의문사 등 심리부검 시행… 이제 시작단계
심리부검소위원회는 군 의문사 중 구타, 강요, 추행, 협박,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등 사망자 개인의 문제로 왜곡된 자살에서 국가 책임의 주요한 근거가 되는 "불가피한 자살 사유"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근거로 진상 규명을 결정하거나 관련 기관에 사망 심의 재심의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군의 전공사상자처리규정은 군복무 도중 발생한 "전사","순직","일반사망","변사","자살" 중 분류된 앞의 두 경우만 국가 유공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심리부검을 통해 구타 가혹행위 등 "불가피한 자살 사유"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날 경우 순직으로 재심의 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법무부와 경찰은 다른 자살의 경우와 달리 군대에서의 자살은 원치 않는 복무를 하게 한 국가의 특수한 책임을 인정하고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일정한 기준에 맞는 자살자에 대해 순직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2009년에는 10.4%의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5·18 피해자 집단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시행, 자살한 이들이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시행된 집단 심리부검의 결과로 국가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입증했다. 이는 공적인 사태에 희생한 개인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가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원주시 자살시도자 사례관리…자살률 줄이는 성과  
심리 부검과 함께 시범 사업으로 도입된 자살시도자 사례관리 서비스에서도 긍정적인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원주시가 자살을 시도하여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 중 사례관리가 필요한 142명 중 75명의 동의를 받아 사례관리를 시행한 결과 응급실에서 정신과로 의뢰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자살시도자들의 정신과 치료의 순응도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민성호 센터장은 자살시도자는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이 일반인들에 비해 6~8배 정도 높다고 설명하고 사례관리를 시도한 결과 응급실에 내원하는 자살 시도자 중 50% 정도에 대해 사후관리를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민 센터장은 지난 통계청 발표에서 원주의 자살률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후관리와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기대와 열의를 가지고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향후 3년 내에는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데이터를 확복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자살예방협회 하규섭 교수 또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자살예방협회가 작년 3월부터 전국 8개 병원 응급실과 연계하여 1600명에 이르는 자살시도자에 대한 배경과 원인을 파악하는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 해 6월 쯤 조사결과를 종합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예방 적극나서야
각각 자살과 관련해 정신보건센터와 예방협회,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가장 변화가 필요한 부분으로 자살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 등을 꼽았다.
 
아주대 이영문 교수는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교통사고 등의 위험을 알리고 예방과 치료를 위해 국가적인 지원 체계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동원되는 것은 이러한 질병이나 사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곧, 나도 위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인데 아직 자살에 있었서는 그러한 개념이 생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즉,"‘자살자 또는 자살 시도자들은 나와 다르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 의식,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매일같이 죽음을 가까이서 접하는 만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높아 자살고위험군인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자살자 또는 자살시도자에 대해 정신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라는 인식이 저조하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민성호 교수 역시 또한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살아남고 부적응이 곧 도태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을 힘들어하거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끌어안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전쟁 후 빈곤한 나라에서 경제 성장을 이뤄내고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며 달려왔지만 높은 실업률과 고용 불안정, 양극화 등으로 인해 가치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고 1등만을 추구하며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사회 분위기가 자살률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민 교수는 "아직도 인터넷에서는 자살자 또는 자살시도자에 대해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패배자로 취급하며 굉장히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견들을 엿볼 수가 있다"며 이는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자살할 사람, 평생 자살하지 않을 사람을 나눠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자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살자에 대한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비난이 아니라 "다 함께 같이 간다", "같이 가야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일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 교수와 민 교수는 자살은 이처럼 각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가정, 교육, 사회, 경제, 문화의 총체적인 것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니만큼 국가적인 큰 틀에서의 자살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정신 보건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정신보건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0년 인구 10만명당 10명에 불과하던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해 32.5명을 기록했다. 청소년, 청년,중년과 노인 모두가 자살이라는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서운 속도의 증가 추세다. 하지만 자살은 앞서 핀란드와 일본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쳐 노력하면 제어가 가능한 예방 가능한 질환이다. 이를 잊지 않고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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