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현장에서 열심히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계신 다른 많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 남을 돕는 일일진대 이렇게 크게 알려지고 상까지 받게 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큰 상을 주심은 그늘지고 힘든 곳에 힘을 보태라는 의미로 알고 더 열심히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겠습니다."


 최근 서울시 봉사상대상을 수상한 유니온팜·약품 안병광 회장은 수상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안 회장은 20여 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노인요양병원·쪽방촌·결손가정 등에 44억원 상당의 약품을 지원해 왔으며 농촌 무료진료에 필요한 의약품도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법인 "세이브 더 칠드런"에 5억원 상당을 쾌척, 조선족·고려인·베트남 라이따이한들의 건강을 위해 쓰이도록 했다.
 이러한 안 회장의 기부와 봉사 여정의 시작은 CEO가 아닌 제약사 영업사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세 살배기 심장병 수술비 지원으로 시작
 "벌써 24년 전 일이네요. 부천 세종병원에서였어요. 알고 지내던 의사가 하는 말이, 심장판막증이 있는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는데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데 돈이 없어 수술을 못 한다는 거예요. 수술비 300만원이 없어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데 그냥 있을 수가 없었죠. 당시 제 월급이 40만원이 채 안되던 시절이었으니 꽤 큰 돈이었어요. 다니던 회사에서 항생제를 가져올 경우 240만원이 필요하다고 해 가난한 농부의 아이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응급차에서 내리는데 입술이 새파랗고 가슴을 크게 벌렁거리면서 숨을 쉬었으며 한겨울임에도 머리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모습이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죠. 6시간 동안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며 기도했어요. 수술 중 판막이 안 막히는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살았고 열흘 뒤 퇴원했습니다. 작은 몸에 난 수술자국에 또 한 번 마음이 아팠지만 붉게 되살아난 입술을 보며 "내가 장한 일을 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퇴원할 때 아이의 부모가 들기름 세 병을 싸 들고 와 두 병은 의사에게 한 병은 안 회장에게 건넸다. 집에 돌아와 뚝배기에 밥과 열무김치, 들기름을 담아 비벼 먹었다. 그 맛이란 말 그대로 "코 끝 찡한 고소함"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손을 내미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의미있는 일인가를 깨닫게 됐다.
 그 이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필요한 약품이나 성금을 기탁하고 여러 방면에서의 기부와 봉사를 이어갔다.

회사 수익 1% 심장병 환자 위해 기부
 안 회장은 이 같은 뜻을 회사에서도 녹여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나눔과 배려에 대해 늘 강조한다. 직원들이 봉사에 참여하고 선행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일터교회"를 만들기 위해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전 직원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이런 분위기이기에 누군가에게 도울 일이 생기면 솔선수범해 앞장 설 수 있게 된다.
 특히 지난 2000년 회사수익의 1% 이상을 심장병 환자에게 지원한다는 선언을 하면서 그의 봉사경영 신조는 본격화됐다.
 "아픈 환자들이 있기에 약을 취급하는 회사들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은 사회에 신세지고 있는 것이니 환자들에게 좋은 약품을 돌려주는 식의 사회 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소명이자 봉사철학이죠."

쪽방촌 독거노인에 온정의 손길
 첫 거래를 부천 세종병원에서 하고 봉사의 시작도 세종병원에서 하는 등 세종병원과 심장병은 안 회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올 연말에도 심장병 환자를 돕는 행사에 동참하기로 했다.
 오는 9일에 2010년 미스코리아들과 한국일보와 함께 세종병원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행사를 진행한다. 이것이 그의 연말맞이 봉사 일정 중 하나이다. 이어 19일에는 이불 100채를 사 들고 영등포 쪽방촌에 찾아간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쪽방촌에 도배를 하고 장판도 새로 깔기로 했다.
 안 회장은 3년 전 모친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 이 곳 쪽방촌 독거 노인들과 어르신들을 위해 감기ㆍ고혈압 치료약 등 생활 속에서 늘 필요한 상비약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그 금액만도 어느새 4억원을 넘어섰다.
 안 회장은 그간 대학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수재의연금 등 자연재해를 입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천안함 순국자들을 위해서도 성금을 기탁하는 등 여러 나눔 활동에 동참해 왔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용산참사 때 순직한 김남운 경사의 부친을 찾아 100만원을 전달한 것이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보니 김남운 경사에 대한 얘기가 있었어요. 용산참사로 인한 유가족들도 안됐지만 시위를 진압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김 경사의 안타까운 사연이었는데 공무를 수행하다 죽었음에도 그 보상액이 터무니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김 경사의 부친에게 편지를 썼고 영등포 경찰서에 가서 물어 물어 그 집을 찾아가 조의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런 사연들은 좀 널리 알려져 도움의 손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제가 이렇게 스스로 한 일을 말하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입니다."

도매업계 유통일원화 유지돼야

 안 회장은 얼마 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바 있다. 유통일원화 폐지를 반대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 안 회장은 할 말이 너무 많다.
 "세계적으로 유통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유통이 잘 된 나라가 선진국이죠. 제약사는 연구에 집중해 신약을 만드는데 정진하고, 유통업계는 인프라 구축을 잘해 양질의 의약품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약사는 남는 힘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워나가야죠. 국내사도 카피약만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경쟁력 가지려면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는 내세울 만한 제품 하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제약사는 R&D를 통해 투자하고 신약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유통일원화 폐지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며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정부가 말하는 자유경쟁이란 마치 대학생과 초등학생 간에 씨름을 시키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전문성을 가지고 나가야지 무슨 경쟁을 하는가. 그럴 시간에 제약회사는 더 연구하고 세계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신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창 고용창출을 말하는데 도매업계에서 일하는 이들만 15만명입니다. 유통일원화가 폐지되면 이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입니까. 잘 다니고 있는 회사 문 닫게 하고 일자리 잃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대형화·선진화·투명화", 이것이 약업계의 목표입니다. 어떠한 역할을 빼앗아 가지 말고 전문성을 가지고 해 나갈 수 있도록 보탬을 줘야 합니다."
   사진·고민수 기자 msko@mmkgrou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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