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주도의 "관계윤리" 논의 이제라도 시작하자
































◇ 고윤석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전문직업윤리를 가진 의료인에 대해 국가에서 만장일치로 쌍벌제를 통과시킨 것에 대해 굉장한 자괴감을 느꼈다. 이 땅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이익집단간 교통과 대화로 제도가 서서히 정비되었으면 좋았을텐데, top-down 방식으로 제도가 마련된 것이 매우 안타깝다.

올해 초 한국의료윤리학회는 의료계와 제약회사의 관계윤리에 대해 논의하고 점진적으로 그 방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이 자리는 쌍벌제와 관련한 다양한 입장을 지닌 패널들이 참석하고 있기에 상당히 유익하고 실제적인 내용을 짧은 시간내에 교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제를 맡으신 맹광호 교수는 한국의료윤리학회에 계실 때 관계윤리에 대한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료윤리학회에서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시금 이 문제를 단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하고 있다.

발 제

◇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의료계 내부 논의 이제라도 시작해야

요즘 각종 언론에서 리베이트와 쌍벌제에 관한 내용들이 자주 다뤄지고 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 간 관계윤리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또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약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약값은 환자가 지불하면서도 그 약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일 수밖에 없는 관계구조의 특성 때문에 의사들은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대상이 되게 마련이고, 따라서 둘의 관계는 늘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제약산업이 발달하고 의료가 확대되면서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이 문제가 이슈화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한국의료윤리학회가 창립되면서 이에 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학회가 발간한 의료윤리 교과서에서는 "의료계와 제약회사간의 관계윤리"를 한 챕터로 다루고 있다. 2005년에는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미국의 예를 중심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며 의료계와 제약회사들이 함께 윤리규약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서 좀 더 일찍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생각한다.

사실 제약회사들의 의약품 판촉을 위한 노력과 이를 위한 의사 대상 금품 제공은 어떤 면에서 불가피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신약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과, 일단 개발된 의약품은 의사들이 참여하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구조적으로 약값은 환자가 지불하고 약의 선택은 의사가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만개의 신약개발후보 물질 중 1개 정도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개발된 약을 판매하기 위한 판촉 활동이 치열할 수밖에 없어 전체 약품 판매관리비(이후 판관비)가 매출액의 40%가 되는데, 이는 일반 기업 판관비 비율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실제로 정부는 2008년 7개 제약회사가 2000억의 돈을 의사나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로 제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의사와 제약회사 간에 금품수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첫째로 환자들의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며, 둘째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무해성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고, 셋째는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의료계는 스스로 만든 의사윤리지침에 "처방과 관련해서 의사는 제약회사로부터 과도한 금품수수를 하지 말 것"이라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 제50조 6-8항"에서도 "처방 등과 관련해 부당한 금품을 받지 못한다"는 것과 "학회활동이나 연구를 위해서도 적법하지 않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홍보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지침을 위반하는 경우에 대해 조사나 징계가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바가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제약업계에서도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각기 공정경쟁규약을 만들어 실천을 다짐하고 있으며 규약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공정경쟁 여부를 심의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이후 공정위)의 공정경쟁규약 승인과 국회의 쌍벌제 도입은 제약회사와 의료계의 자율규제 노력의 효과가 미비하다고 평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1990년 윤리강령 제정

미국의 경우 리베이트성 금품수수에 대한 법적 처벌조항이 있기는 하나 원칙적으로 양자간의 윤리문제로 보고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미국의사협회(AMA)는 1990년에 "Code of Ethics"를 제정했으며, 2001년에는 "Gift to Physicians from Industry"라는 포켓북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배포해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 의료계 모든 단체를 포괄하는 미국의과대학연맹(AAMC)에서 "Industry Funding of Medical Education"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의사나 의사단체 등이 제약회사로부터 의학적 정보교환 차원에서 받아도 되는 지원과 리베이트성 금품수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제약협회에서도 2002년 "Code on Interactions with Healthcare Professionals"를 제정해 제약회사들이 지켜야 하는 의료인들과의 관계윤리를 정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은 "direct-to-consumer advertising(DTCA)"라는 제도가 생겨날 정도로 소비자가 중심에 서고 있다.

환자들에게 직접 의약품을 광고하고 환자들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약의 처방을 의사에게 직접 요구하는 제도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율규제든지 법적규제든지 일단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이상 이제는 의약품과 관련한 리베이트성 금품수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투명한 사회가 되는 데는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한국제약협회, KRPIA, 공정위, 보건복지부(이후 복지부)는 현행 제약협회 규약을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고 모든 제약회사들이 실천 가능한 규약 또는 행동지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논의가 진행된 다음에는 각 단체들이 실천을 위해 학생, 단체 회원에게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

한편 강제적인 조치보다는 자체 규약심의위원회 활동을 강화하고, 정부 역시 이들 단체의 자율규제를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이 체계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어떤 자율규제나 법적규제 조항도 충분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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