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시간 반으로 줄이고 제2의 인생 속으로"

"진료시간 월~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어느 내과 원장이 무언가 이색적인 특징이 있다는 한통의 제보를 받고 한여름의 더위가 무르익어갈 무렵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오케이내과를 찾았다. 출입문에 적힌 안내문구를 보자마자 더위가 싹 사라질 정도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심장전문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오케이내과의 이수진 원장은 지난해 9월부터 검진과 진료시간을 축소하고, 오후에는 자신이 원하던 "제2의 인생"으로의 완전한 변신을 꿈꾸었다.

"의대 졸업 후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어렵고 까다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를 깨달았습니다. 관련 서적을 10여권 이상 읽으면서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지요. 그러면서 흥미를 느꼈고, 여기에 스토리를 접목해 강의 주제를 만들어 본 것이 벌써 이만큼이나 됐네요."

현장 소통 노하우 후배들에 전수

의사로서 이색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문에서인지 모교인 고려의대에서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맡을 기회가 주어져 매주 목요일 오후 의대생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이야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널리 진행되고 있지만, 제가 의대를 다닐 당시에는 거의 없었어요. 강의를 진행하면 할수록 의대생들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에 있어 달라진 눈빛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뽑은 석탑강의상도 받게 되면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고려의대생들의 반응이 좋자, 이 원장은 연세의대에도 강의제안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특별한 반응이 없었지만 연세의대에서도 2년이 지난 뒤 "국제의료와 리더십"에 대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학생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던 기억이 나고, 그 후 계속 연세의대에서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화의대에도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게 되었고 이화의대에 이어 관동의대, 1년 전에는 건국 의전원 등에까지 강의를 하게 됐네요."

이 원장이 끊임없이 강의에 나서는 것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의사로서의 꿈 뿐 아니라, 강의와 교육을 통해 다른 의료인들과 학생들에게 도전을 주고 인생의 변화를 도울 수 있는 꿈 말이다.

"가운을 입기 전에’ 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제가 가르치는 의과대학생들과 진행했어요. 연말에 독거노인, 심한 뇌성마비 환자, 모자원, 중증 장애자들이 사시는 곳 등을 방문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죠. 가운을 입은 후에는 더 알기 어려운 부분이죠. 전국 모든 의대에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경험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환자를 대하는 자세와 방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이 원장 특유의 입담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것도 꾸준한 강의가 가능했던 이유다. 자칫 딱딱한 영역일 수도 있지만, 스토리를 하나하나 담거나 기타를 직접 연주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학생들이 훨씬 더 마음을 열어 보이는게 느껴졌다.

기회를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게 한 "사람"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4~5년 전인가 환자 소개로 알게 된 한국협상아카데미의 김성형 대표를 만난 이후 더욱 현실에 가까워졌습니다. 김 대표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꿈이 비슷했지요. 현재 협상아카데미 파트너로서 초등학생, 대학생 대상의 협상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 꿈을 키워나가는데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음까지 치유되는 환자보면 자부심 느껴

앞으로는 "메디칼리더십센터 대표"의 직함을 내세워 의료계에서의 활동영역을 보다 넓혀갈 예정이다. 수년간 진료를 해오면서 의사로서의 삶이 의미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있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26일에는 개원내과의사회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으며, 전국 5개 도시 강의도 준비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참 숭고합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환자들이 치유와 회복, 그리고 희망을 갖고 새로운 앞날을 찾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알콜중독이고 자살했으며, 아들 자신도 알콜중독인 한 청년은 이원장과의 만남 이후에 인생의 변화를 통해 현재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흉통으로 병원을 찾은 20대 중반의 이 청년은 심장은 건강했지만, 가정의 냉대와 실연 등 심리적 원인으로 통증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이에 대한 수차례의 상담 이후 완전히 회복돼 자신과 같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회사업과를 들어가게 됐다는 소식에 이 원장도 함께 기뻐했다. 부모님이 의사이기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꾸게 되었고,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으면서 가지게 된 "봉사하는 의사"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 원장은 매년 가족들과 함께 해외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한번도 의사 구경을 못 해 본 환자들이 며칠씩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진료소를 찾아오고 원인을 알 수 없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를 보면서, 또한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혈액투석기계가 전국에 두 대 밖에 없는 타지키스탄의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즐겁고 가치있는 일에 매진

이 원장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더욱 가치있는 삶이될지 생각 중이다. 분명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오기에 남은 인생은 무언가를 위해 바치려는 것이다. 많은 꿈을 실현하고 있지만, 열정을 다 바쳐서라도 이루고싶은 꿈을 만들고 싶단다.

의료인과 의료인의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환자들 대하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고, 직원 관리, 병원 경영 등 모든 것을 다 맡아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죠. 게다가 의료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인들은 가족에 대해 늘 미안해 합니다. 이를 위해 의사의 가족 단위로 리더십 훈련과 자녀의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향후 이를 더욱 확대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들 역시 소중한 존재다. 젊은 직원들이 병원이라는 일터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지난 월요일에는 "OK 행복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마니또를 운영해 영화관람권 등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돈으로 치면 별것이 아니지만 직원들이 너무 좋아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이벤트를 열 생각이다.

나아가 환자들의 유형을 쉽게 파악해 그 유형에 맞게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환자들이 편안하게 느끼고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을 진료에 적용하는 교육을 실시, 환자 관리와 병원 경영에 도움을 줄 계획이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을 이해하면서도 돕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강의의 주된 역할이지요. 의사로서의 일을 놓지 않으면서도 지금과 같이 즐겁고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고 싶습니다."

오후 1시에 진료가 끝나고 오늘만큼은 강의가 없어 여유있다는 이수진 원장의 발걸음에는 좁은 진료공간에서 종일 갇혀있는 다른 원장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할만큼 가뿐해 보였다. 언젠가는 "매일 오후 1시까지 진료"라는 문구가 자연스러워질 날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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