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류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안에 대한 토론회

새로운 의료분쟁조정법률안이 이제까지 작동하지 않았던 분쟁해결 시스템의 보완 사항이 될수 있을까.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인 법률안의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인 분쟁해결절차(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에 대해 새로운 법리가 필요하고 기존 시스템들 보완도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주최하고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 주관한 "의료분쟁에서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 재판에 갈음하는 분쟁조정절차)의 의미"에 대한 토론회가 지난 24일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연세대 대학원 의료법·윤리학 연구강사인 박지용 변호사는 "기존 의료분쟁 ADR 담당기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각각 전문성이 낮고 한계가 있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R은 사법적인 소송·재판 이전에 분쟁을 당사자 쌍방의 자율적 의사를 통한 화해·조정·중재로 해결하는 제도로 미국의 경우 소송제도 이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민사조정법상의 조정·화해제도, 의료심사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의료심사조정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고, 한국소비자원과 민사조정법은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의료소송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이런 점들을 의료분쟁조정법률안이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도 ADR의 존재와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의료분쟁조정법률안에 대해 전반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다. 고대의료원 이승배 법무파트장은 "ADR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필요한 것은 보상·권리에 대한 새로운 법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현재 제도들을 어떻게 잘 운영해야 하는가다"라고 주장했다. 이 파트장은 "병원과 환자 사이의 인식차이가 너무 크고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며 기본적인 인식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되야 하고,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현재의 제도도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소비자원 의료팀 김경례 차장도 "소비자원에서는 의사들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자문위원을 두고 있다"며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고, "상황에 대한 검증을 통해 ADR이 추구하는 합리성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검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수술의 경우 밀실에서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 환자들의 불신감이 높을 수 있다"며 이 파트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이인재 변호사는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이를 위해서는 소송없이 중재·조정을 통하는 것이 좋다"며 의료분쟁조정법률안의 의도에는 찬성했다. 현재 미국에서도 소송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강제심사제도"를 통해 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고 있고, 이번 법률안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의료심사중재위원회가 유명무실해졌고, 법원의 절차는 신속하지 못하고 전문가도 없는 것에 비해 한국소비자원의 시스템은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현 제도의 기능도 배제하지 않았다. 또 이번 법률안의 경우 기관설립을 통해 사실관계를 검증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내용은 있지만, 배상체계가 없고 현재의 실태조사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근거없이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변호사는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나 병원차원에서 이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병원을 통한 실태조사는 힘들겠지만 중재원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며 이 변호사의 의견에 동의하는 한편 "이번 법률안은 운영에 대한 대책과 함께 진행될 것이고, 전문적인 실태검증기구가 생기는만큼 현재 이상의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현 제도와 다른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현재 쟁점인 입증책임전환에 대해서 박 변호사는 "이 제도가 신설될 경우 중재·조정 등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분쟁까지 번지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며 신속한 해결이라는 당초 목적과는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경제학적 관점에서도 의사의 방어진료를 유발할 수 있어 사회적인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위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입증책임전환은 의료사고에서 의사나 병원이 의료사고에 대한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나 환자의 고의로 인한 의료사고 등의 경우 면책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박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이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법률안이 아직 계류 중인만큼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토론회는 소송이 의료기관, 의사, 환자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과, 원만하고 객관적인 조정을 위해 화해·조정·중재로 법률가는 물론 의료기관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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