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을 전후해 등장한 신종인플루엔자 H1N1(신종플루)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달만인 6월 11일 대유행(pandemic) 경고수준을 최고단계인 6단계로 격상시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4월 첫 발생 후 "관심"에서 "주의" 수준을 유지하다 11월 인플루엔자 환자와 항바이러스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국가 재난단계의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WHO는 2월 28일 현재 세계적으로 1만6455명, 우리나라는 2월 27일 현재 243명이 신종플루와 관련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는 가운데 신종플루의 활동률은 현저하게 낮아진 상태다.

WHO는 세계의 호흡기질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신종플루 비율이 3.5%로 감소했다고 밝혔고,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도 2월 27일 현재 1000명당 3.3명 이하로 감소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WHO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호흡기 질환 발생률이 평소 수준으로 돌아갔다"며 신종플루의 위세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보고있고, 우리나라도 항바이러스제의 수요가 지난해 12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섬에 따라 "경계" 수준으로 재난단계를 낮췄다.


▲신종플루가 우리에게 남긴 것
WHO가 세계적으로 신종플루의 폭풍이 가라앉아 일단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판단한 2월, 대한예방의학회는 신종플루 대응과정을 평가하고 과제를 검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결과적으로 사망자 등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전반적으로 성공적 대응이었다는 의견이 우선 제시됐다.

대한예방의학회 오희철 이사장은 "21세기 최초의 대유행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전염성 질병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손씻기를 비롯한 생활 속 예방습관의 실천율이 올라가 다른 전염성 질환 예방에도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보완해 가능성이 농후한 신종플루 제2의 파동은 물론 다음의 대유행에도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데 정부와 학계가 듯을 같이 했다.

△대한예방의학회, 정부 대응과정 발표
대한예방의학회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정책 대응과정 정리와 평가"를 주제로 개최한 동계심포지엄에서 질병관리본부 공중보건위기대응과 이동한 과장은 신종플루 발생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대응과정을 정리·발표했다.

이 과장은 신종플루 발생 후 보건복지가족부가 "중앙인플루엔자 대책본부"를 설치해 초기정책으로 검역강화와 환자격리를 통해 해외로부터의 유입 차단과 지역사회로의 전파차단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에 대책본부는 공항 입국자 전체를 대상으로 발열검사를 실시하고 확진환자 발생국가의 항공기 검역을 강화했다. 또 위험지역 입국자에 대한 전화추적조사, 확진환자로 확인된 승객과 같은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에 대한 추적조사도 함께 실시했다. 지역사회 전파차단을 위해서는 추정·확진환자들을 국가지정격리병원에 격리하고 적극적으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했다.

7월 WHO가 확진자수를 집계하지 않기로 결정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의 감염 사례가 지속적으로 확인되면서 우리나라의 대응정책도 전파차단에서 피해최소화로 전환됐다.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의 확대 개편과 함께 보건복지가족부 차관과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6개 단체장,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민관합동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이때부터. 항바이러스제 투여지침도 진단검사없이 의사의 임상 진단으로 투여할 수 있도록 바꾸고, 의료기관 강제격리에서 "자가치료 및 외출자제"로 정책을 변경해 적극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11월을 지나면서 유병률 및 항바이러스제 사용률이 감소세를 보이며 현재 거의 평균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 과장은 "유병률이 낮아진 지금도 지역사회 전파를 막고 조기 인지를 위해 학교와 의료기관 등을 대상으로 능동적인 감시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왠만해선 신종플루를 막을 수 없다
이동한 과장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신종플루 대처방법에 대해 고려의대 감염내과 정희진 교수는 "우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아쉬운 점들"을 지적했다.

우선 합격점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신종플루 발생 후 초기 대응이다. 정 교수는 신종플루가 발생한 지난해 4월 유입차단과 지역사회 전파차단 정책에서 7월 피해최소화로 정책의 초점이 옮겨지기까지 방역과 환자관리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 시기상 인플루엔자의 활동성이 높았음에도 같은 시기 일본의 확진환자수가 300여명에 달했고 지역사회 내 전파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백신의 확보에 있어서는 부족한 역량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 교수는 백신의 경우 지난해 6월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대다수의 백신제조사들과 사전 구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5월 130만명의 의료기관 종사자 및 대응요원에 대한 구매예산을 확보했을 뿐, 7월 추가적인 구매 예산을 확보하기까지 접종 대상자의 선정도 진행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예산이 확보된 후에도 백신제조사와의 협상문제로 한 차례 더 난항을 겪었다.

또 신종플루 환자들이 급증하기 전 1차 의료기관을 포함한 의료인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 부재와 물자 부족은 의료인들의 감염사례와 함께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7월 이후 피해최소화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전환과 인플루엔자 투약지침 변경, 인플루엔자 표본감시 의료기관의 확충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이를 담당하는 중심 의료기관이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이었다는 점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의 업무과중과 사전 준비가 되지 않은 민간의료기관들이 큰 혼란을 겪었기 때문.

진료 일선에 대한 정부의 보호장구를 포함한 예방 물품 지원의 부족은 의료진이 감염되는 사례로 이어졌다. 또 격리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의료기관 내 환자 간 이차감염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 위해-정보소통(risk-communication)에서의 문제도 의료기관 및 대응기관의 업무를 필요이상으로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피해최소화 정책으로의 전환 후 항바이러스제 처방기준 변경, 확진검사 지침의 변경, 항바이러스제와 신종플루 백신 확보량 증가 등의 시행은 정부가 예방적 차원에서 진행됐다기보다는 여론의 변화에 따라 움직인 측면이 더 컸기 때문이다. 휴교와 휴업에 대한 지침 역시 조기에 제시되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도 증폭됐다고 덧붙였다.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천병철 교수도 정 교수의 의견에 무게를 더했다. "휴교는 유행시기를 늦추기 위해서 시행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만연할 때가 돼서야 시행했다"며 이를 결정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임상진료지침 변경 등 정책 변경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완화효과를 보였는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며 정책 변경이 근거 없이 시행됐음을 지적하고, 현재 근거가 없다면 이번 사태를 통해 평가지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북의대 예방의학과 감 신 교수는 신종플루 대응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의 성격이 애매모호 했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정보를 알려주었던 빈도도 낮았고, 큰 병원에서는 감염내과 전문의들의 부담이 가중됐지만 1차 의료기관은 건너뛰는 양상을 많이 보였다며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특히 이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거리·격리감으로 인해 신종플루 정보와 교육사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종플루뿐만 아니라 다른 전염병 대응에서도 문제가 없는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