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 앓던 5세 어린이, 병원 5곳 입원 거부당한 뒤 사망
소아응급의료체계 개선 위해서는 병원 확충 아닌 인력 확보 필요
의원급 수가 개선이 소아 응급실 인력 확충으로 이어져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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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또’ 발생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고열을 앓던 다섯 살 어린이가 서울 한복판에서 숨을 거뒀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 5곳을 찾았으나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한 뒤 발생한 일이다.

‘입원 없이 진료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찾은 다섯 번째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진단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호흡 곤란을 호소하다 쓰러졌다. 급하게 응급실로 향했으나 도착 40분 만에 숨을 거뒀다.

18일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응급실 뺑뺑이는 아니”다. 119구급대가 물리적으로 응급실을 전전한 게 아니라 유선으로 수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아응급의료체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태임은 틀림없다.

아이의 아버지 오 씨는 지난 2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5개 병원 중 한 곳에서라도 입원 치료가 가능했다면 5살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현실성 있는 대책을 수립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이라면 복지부도 진작 마련해 왔다. 앞서 복지부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 5개년을 발표하며 소아 응급환자에 대한 모든 응급실에서의 보편적 진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깜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및 소아의료체계 개선 이행과제를 점검한 결과, 주요 과제들이 차질 없이 이행되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정작 실제로는 아이들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거리에서 숨을 거두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소청과 개원의들이 폐과를 선언하는 등 일차 의원마저 붕괴하기 시작해 복지부가 기존보다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청과 의사 인력도 없는데...병원부터 확대한다는 복지부

지난 2월 복지부가 발표한 소아응급의료체계 개선안에 따르면 현재 10개소인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는 단계적으로 4개소 추가 지정될 예정이다. 또 달빛어린이병원도 현재 37개소에서 100개소로 확대될 방침이다.

그러나 발표 직후 전문가들은 해당 정책에 의문을 드러냈다. 실효성이 없다는 까닭에서다.

대한아동병원협회 박양동 회장은 “전국 37개 달빛어린이병원 중 공휴일·토요일·일요일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은 각각 5개·9개·5개 기관에 불과하다”며 “그동안 해당 제도에 대한 참여도와 현장 의견 등 사업 평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응급의료기관 평가 기준에 소아 환자 진료 지표를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의료진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청과는 진료 특성상 부모의 의료소송이 잦아 의료진의 사명감이 필수적인 과목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것은 ‘병원 확충’이 아니라 ‘의료진 확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진이 없으면 병원 확충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곽영호 회장(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은 “소아 환자는 성인과 비교하면 진료 수행 과정이 훨씬 힘들다. 수가도 낮게 책정돼 성인 대비 약 30~40%의 진료비만 발생해 과목 기피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 진료를 담당하던 소청과 전공의들이 부족해지며 각 병원이 소아 응급실 운영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며 “응급의학과에서도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보니 오늘날 이런 최악의 상황에 마주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원가는 경영난을 이유로 빠르게 폐업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 야간 진료가 가능한 의원도 찾기 어려워졌다. 부모들은 당연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응급실마저도 소청과 전공의가 없다 보니 운영되지 않고 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대한응급의학회 김원영 정책이사(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는 “소아 응급실은 성인에 비해 경증 환자 비율이 높다. 경증 환자를 책임질 개원가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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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필요한 건 결국 ‘수가 개선’

결국 개원가가 살아남아야 소아 응급실도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복지부의 대책이 개원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원의들은 당연히 더 편한 과목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심층상담 수가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는 지난 12월부터 소청과 일차의원 의사들이 36개월 미만 아동 부모에게 육아 상담과 심층 상담을 제공하는 ‘아동 일차의료 심층상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상담료는 15~20분에 5만원 가량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막연하다고 털어놓는 개원의들도 적지 않다.

김포아이제일병원 이홍준 대표원장은 “부모들에게 ‘상담 수가 적용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소청과 의사는 흔치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진료 수가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영호 회장 역시 “저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부족한 전문인력 문제는 언제든지 재발하고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김원영 정책이사도 “의원급 수가가 개선되면 병원급도 수가가 올라간다. 그러면 종합병원에서도 소청과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게 된다”고 제언했다.

이외에도 △경증 환자일수록 가까운 병원에서 부담 없이 수용하고 그중 중환자를 상급 응급의료기관으로 전원할 수 있는 시스템 △경증 환자를 위한 전화 안내 체계의 신속한 확립 △전문인력 지원 강화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곽영호 회장은 “장기적으로는 소아응급 진료가 가능한 전문인력을 충분히 양성해 소아응급의료체계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소아응급실 근무 인력 충원과 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지원 규모는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과감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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