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의 "진료" 역할을 축소하고 갈등이 아닌, 협조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의료계 뿐만 아니라, 정부와 보건소, 소비자단체도 뜻을 함께 하면서 보건소의 명확한 역할 규명에 대한 가능성이 점쳐졌다.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은 "동네 의원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보건소의 일반 진료행위 강화로 동네의원과 중소규모 의료기관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민간의료와 공공의료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돼야 하지만, 오히려 경쟁관계가 되면서 의료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은 21일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주최로 열린 "공중보건강화를 위한 보건소 기능 및 역할" 토론회에서도 여실히 이어졌다. ▲보건소와 민간이 해야 할 일 구분 ▲보건소의 필수·최소의 원칙 확립 ▲복지부·행안부의 통제가 아닌 지방자치의 이양 등을 통해 보건소와 의료기관과 명확한 역할 분담과 협조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이화여대 의전원 예방의학교실 정상혁 교수는 "지금의 보건소는 공공성과 대중성의 명확한 개념 구분이 없이 인기영합주의적이고 대중주의적인 정책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며, "특히 진료 부문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의료기관을 추방하려는 의도로 비춰진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한 보건소는 도서벽지, 산간 등 열악한 지역에 있는 지역에 대해 진료 인력과 인프라를 마련하고, 저소득계층의 부족한 건강관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료 부문은 민간기관에 위탁을 추진하면서 점차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정림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도 "대중주의적 지향성으로 공공과 민간의 갈등을 초래하는 보건소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정책 결정 기관인 복지부가 지방자치까지 연계사업을 펼치기 어려운 것은 행정안전부가 보건소의 인사와 통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법령 개정을 통한 업무 개편을 건의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박형욱 교수는 "한정된 정부 재원을 소외계층에 집중시키지 않고 다수의 재원에 돌아가게 한다면 결국 공공성과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며 "저소득층에 대해 일차적인 역할을 하되, 여력이 남을 경우에만 일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중앙정부의 과다한 통제와 지방정부의 포퓰리즘이라는 이중고에서도 보건소의 역할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현지에 근무하는 보건소장, 소비자단체 역시 "진료 축소"라는 큰 틀에서는 의료계와 입장을 같이 했다.

복지부 정충현 건강정책과장은 "보건소는 필수와 최소에 한해서만 하고 나머지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가파른 고령화에 대비한 의료비 재정 절감을 위해 비만, 당뇨병 예방, 보건 교육 등이 필요하며, 민간 차원으로 함께 나서야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뜻을 모았다.

속초시 보건소 함수근 소장도 "신종플루 사례에서 봤듯 민간 병·의원이 협조와 참여가 없으면 제대로된 방역이나 건강증진이 어렵다"며 "건강증진에 대해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보건소 기능에 변화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제언했다.

소비자시민모임 황선옥 상임이사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건소 확충으로 공공의료가 실현되면 이점이 많지만, 보건소에 뒤따르는 비용이 지나쳐 국고에 영향을 미친다면 재편할 필요가 있다"며 "진료, 보건사업, 전염병 관리를 위한 예방접종 등은 민간에서 수행가능하도록 하고, 보건소는 민간이 하지 못하고 기피하는 진료과목에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는 민간에 위탁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뒀다. 복지부 정 과장은 "민간은 영리 목적을 두고 움직이는 곳이 많다"며 "정부 사업을 통해 이윤을 만들려는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에 민간 위탁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이전에는 의료계 단독으로 주장하던 보건소의 진료 축소에 대해 각 직역의 동의 분위기를 확인하는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공공의료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건소의 역할을 분명하게 성립하고, 의료기관과 협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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