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데믹 우려에 정부, 감기약 약가 인상카드 꺼내들어
제약업계 “인상 환영하지만, 생산량 증대 어려워…형평성도 문제”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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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손형민 기자] 정부의 감기약 약가 인상 정책에 대한 업계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0월 말 아세트아미노펜 처방의약품을 생산하는 30여 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10월 말까지 원가 자료 제출하도록 안내했다.

독감 시즌을 맞아 트윈데믹(코로나+독감)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자, 약가인상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켜 감기약 공급을 더욱 활성화하려는 취지다.

감기약 인상 정책에 대해 환영의 분위기도 있지만, 다른 한측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의 시각을 제시하며 사용량-약가 연동 제도를 통해 약가 인하 대상이었던 감기약이 인상 대상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약가 인상으로 감기약 생산 증대?

지난달 초 진행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선 품절대란을 겪은 감기약 공급 이슈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은 "처방용 아세트아미노펜은 50원 수준으로 지난 10년간 가격 변동이 없었다"며 "제약사들도 마진 없는 조제용 의약품을 많이 생산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감기약 생산 증대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급여 목록에 고시된 약제 중 업체가 약가를 조정해 줄 것을 신청하는 제도인 ‘상한금액 조정 신청 후 협상 체결’을 통한 약가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심평원은 지난 달 31일까지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하는 30여 개 업체에게 원가 등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황이다.

이후 심평원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 심의를 거쳐 상한금액 조정신청이 수용된 경우 건강보험공단과 약가협상을 진행해 상한금액을 조정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만약 약평위가 약가인상에 적정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복지부는 아세트아미노펜 생산 업체와 건보공단간에 약가협상을 시작하도록 행정명령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윈데믹의 우려로 현재 약국에서도 일반의약품,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등이 모두 수요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감기약 품절 대란을 겪었던 상황이 다시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이 같은 정책 실행에 일조했다.

대형약국에 근무하고 있는 한 약사는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은 재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의약품 아세트아미노펜은 재고가 모자른 상황”이라며 “일반의약품 감기약 중에선 소아용 시럽 챔프가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COVID-19)가 조금씩 안정세를 찾아 해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상비약으로 감기약들을 많이 챙겨놓고 있다”며 “공급량이 수요량을 못따라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환절기 등 예비용으로 찾는 환자들이 많이 늘어나 코로나19 한창 때 처럼 수요 부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효성과 원칙 없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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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부 측의 감기약 약가 인상 정책이 제약사의 감기약 생산량을 늘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해당 정책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감기약에 대한 특혜가 다른 의약품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의약품 공급이 모자란 것은 비단 감기약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의 약가 정책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얘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상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기존 사용량-약가 연동 제도를 통해 약가 인하 대상이었던 감기약의 약가 인상은 일반적이지 않고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더 이상 대책이 없고, 트윈데믹이 다시 활성화 될 조짐을 보이자 무엇이라도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제의 보험약가는 한 정당 51원이지만 일반의약품 아세트아미노펜 가격은 200원대로 형성돼 있다. 이를 감안하면 업계에게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생산을 늘리라고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식약처와 약가를 담당하는 복지부와 입장 차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복지부는 그동안 감기약 약가 인상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복지부는 약품비 지출 합리성을 위해 사용량-약가 연동제도의 도입된 취지 등을 거론하며 형평성이 어긋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지난 국감에서 감기약 생산량 이슈에 따른 지적에 식약처 오유경 처장이 더 이상 쓸 수 있는 정책이 없다는 발언 등을 통해 약가 인상만이 마지막 남은 카드라는 것을 시사하자 복지부가 이를 수용한 모양새다.

업계는 약가 인상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격을 올린다고 생산능력이나 재고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생산 업체들은 감기약이 수익성을 위해 갖고 있는 품목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 감기약 생산 업체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수익성보다는 상징성이나 홍보, 브랜딩 등을 위해 감기약 판매에 뛰어들기도 한다. 원료를 수입하는 경우 수익성은 더 떨어진다”며 “가격을 올린다고 생산능력이나 재고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업계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라고 느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감기약을 생산하고 있는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공급을 늘리려면 설비를 확대해야 하는데 이익률이 크지 않은 감기약의 공급을 늘리면 손해인 상황에서 설비를 늘리면 손해는 더 불어난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약사들이 설비를 확대하고 공급량을 늘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공급량을 차질없이 준비하겠지만, 약가를 인상해줬는데 생산량이 증대가 되지 않으면 제약사의 책임으로 오롯이 전가될까 걱정”이라며 우려섞인 반응도 보였다. 

약가 인상 정책이 감기약 생산량 증대라는 퍼즐에 맞아 떨어질까. 정부측이 예상하고 있는 약가 인상 시점은 내년 초로 예정돼 있다. 감기약 약가 인상이 생산량 증대에 도움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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