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교육에 진심인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대학교수(大學敎授)'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대 교수에게도 이 의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들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학생이나 전공의 등을 가르치는 일보다 진료와 연구에 더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다. 

진료해야 하는 환자가 많은 것을 물론 교수 평가에서 진료와 연구 실적이 자기 몸값을 좌우하기 때문에 교육에 무게중심을 둘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사회생활과 학회 활동 등을 줄이고 내시경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는 교수가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서울병원 이준행 교수(소화기내과)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2015년부터 삼성서울병원 내시경실장을 맡고 있고, 유튜브(EndoTODAY 내시경 교실), 홈페이지(endotoday.com), 책 발간 등으로 내시경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들이 내시경 교육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유는? 

의대를 다닐 때 교수들로부터 의대교수는 교육, 연구, 진료 순으로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현실은 진료, 연구, 교육 순으로 가고 있다.

나도 일주일을 오전 오후 10개 세션으로 나눠 진료하는데, 대략 7~8개 세션을 진료에 사용한다. 나머지 2~3개 세션도 진료 준비를 위해 사용한다. 또 환자를 4시간 동안 70명 정도를 진료하다보면 교육을 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 사이에서 외래 후 오후에 내시경, 밤에 연구를 뜻하는 '주경야독(晝鏡夜讀)'이라는 얘기가 있다. 무슨 뜻인가?

내시경 하는 의사들끼리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의 농담으로 주고받는 얘기다. 교수로서 연구하지 않으면 논문 발표가 어렵고, 그러면 교수로 임용되기 어렵고, 승진도 힘들다. 그래서 밤에라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구가 힘들고 부담스러워 교수가 되려는 오랜 꿈을 접는 젊은 의사들도 종종 만난다. 이처럼 진료와 연구에 모든 힘을 쓰다 보면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

- 여러 열악한 환경에서도 EndoTODAY 내시경 교실 운영 등 내시경 교육에 애정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병원에서 연말에 교수 평가를 할 때 진료를 얼마나 했는지, 저명한 저널에 좋은 논문을 게재했는지가 평가 요소다. 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신의 평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내시경 교육은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열심히 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시경 교육을 소홀히 하면 환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의사한테 내시경을 받게 되고,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한때 내시경 교육을 줄였는데 즉각적으로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했고, 내시경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 

- 내시경 교육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시경 교육의 왕도는 1:1 개인 교육이다. 내시경 술기는 더욱 그렇다. 초기에 핵심적인 지식과 동작을 알려주면 그다음은 스스로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초심자 교육에 집중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50개의 수련병원 중 24 곳이 내시경 시뮬레이터(simulator)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전문가(튜터)도 없어 체계적 프로그램으로 초심자를 가르치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핸즈온 교육에 관심을 두고 배울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면 좋을 듯하다. 

- 전공의 등 내시경 교육을 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교육도 근무 시간에 속하게 되면서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내과 전공의 수련 기간도 4년에서 3년으로 줄어 내시경을 하는 의사의 퀄리티가 많이 낮아졌다. 내시경은 도제식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절대적 시간이 줄어 걱정이 많다. 

이준행 교수의 정리 노트 일부
이준행 교수의 정리 노트 일부

-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내시경시술과 관련된 '정리 노트'다. 마치 대학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하듯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20년 전에 한 전공의가 질문하길래 자세히 답변했다. 그런데 며칠 후 다른 전공의가 비슷한 질문을 또 했다.

문득 "배우는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비슷하다. 잘 정리해두면 학생들도 좋고 선생도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전공의 한명이 질문하면 답변을 정리해 모든 전공의에게 이메일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쌓여 EndoTODAY가 된 것이다. 

- 논어, 맹자 등 고전을 읽고 쓰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어머니가 한문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서예를 배우다 보니 한자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공부하게 됐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4서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글씨를 쓰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는 장점이 있다. 

- 꿈이 있다면? 

'헤리슨 내과학'은 내과 의사를 하는 의사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상부내시경에서 없어서는 안 될, 누구나 봐야 하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꿈이다. 올해 초 'EndoTODAY 내시경 삽입과 관찰'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꿈에 한발씩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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