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보건의료계 "잔잔", 제약업계 "술렁"

한·미 약가 인상·복제약 생산 지연 가져올 것

향후 5년간 2449~8595억원 피해 예상


한·EU 의약원료·완제품 의료기기 관세 철폐

다국적 제약사·의료기기 수입사 공략 


2007
년 한-FTA가 타결된 이후 보건의료계는 잔잔했지만, 제약업계는 술렁였다.


우선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의료 인력이나 병원 등 서비스 부문의 시장 개방에 대한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한국 시장의 의료서비스 분야가 비영리법인이며 건강보험 체계 하에서 미국 의료기관이 한국에 오더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것을 파악한 처사다.


그러나 핵심은 의약품에 있었다. FTA 타결 이후 시민단체는 의료비를 폭등시킬 한국 약가제도 무력화를 초래하고, 다국적제약사의 특허 강화를 위한 제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한미-FTA 협상이 정식 체결되고 국회 비준을 거칠 경우 국민의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대한 추가부담은 연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될 것"으로 항변했다.


특히 의약품 보험등재 및 약가결정에 대한 독립적 이의제기 절차를 두는 것을 비롯, 모든 정책과정에 다국적제약사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약품 가격결정에 있어 당초 정부의 설명과 달리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 보장을 명문화 함으로써, 사실상 선진국 평균 약값을 한국에서도 적용하는 것을 수용한 것"이라며 "자료독점권으로 개량신약의 개발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이미 복제약이 생산되고 있는 의약품조차 새롭게 특허권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지난해 4월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한- FTA가 통과된 이후에도 8 "한미FTA 졸속비준반대 위한 범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반대를 외치기 위한 민간 자문단도 구성됐다. 제네릭 위주 판매로 FTA가 독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약업계는 미국의 헤치왁스먼 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6개월의 독점 판매기간을 1년 이상으로 늘리는 한편, 최고가의 약가를 보상해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한동안 홍역을 치른 한-FTA에 비해 지난해 10월 가서명에 합의한 한-EU FTA는 다소 잠잠한 모습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약품 제도 분야는 대체적으로 한-FTA 수준으로 합의했으나, -FTA보다 특허권 보장 규정이 다소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허가 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서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EU FTA로 인해 평균 8%에 달하는 관세철폐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EU FTA 발효시 보건의료분야에서 관세 철폐가 이뤄지는 품목은 모두 66(수입액 26억달러). 관세가 사라지는 품목이 568(수입액 96400만달러), 3년 내 없어지는 품목은 74(124700만달러), 5년 내 21(34000만달러), 7년 내 3(5030만달러) 등이다.

 
-EU FTA 체결로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의약품은 리신 등 의약원료와 아스피린제제 및 비타민제제 등 완제품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다수의 의약원료가 포함돼 있어 의약품 생산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의료기기분야는 총 134개 품목 중 혈압측정기, 인공호흡기 등 97개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키로 했다. 특히, 자기공명 촬영기기, 진단용기기 등의 기술력이 있는 제품이 많다.

 
결국 관세 철폐로 가격 경쟁력을 얻게 되는 다국적제약사와 의료기기수입사가 한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면, 국내 업체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미국이나 유럽 시장 시장 확대의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네릭 판매에 의존하기 때문에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수출을 하는 의료기기업체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FTA가 발효되면 현재보다 무역역조가 더 심화될 수 있다.

 
이같은 지적은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 FTA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006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의뢰해 진흥원이 수행한 "- FTA에서의 식약청 대응방안 및 영향분석" 연구결과, 허가-특허 연계 시 국내 제약 산업의 피해규모는 5년 간 2449억 원에서 많게는 8595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2001년 이후 진흥원이 수행한 연구용역 중 FTA관련 용역은 모두 대외비로 관리해 사실상 연구 자료를 은폐해 왔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는 의료기기 시장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관세를 철폐할 경우 5년간 3898억의 추가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우리 측 요구에 따른다 하더라도 5년간 961억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듯 FTA의 피해가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R&D 투자 예산은 오히려 축소돼 비판을 받았다.

 
전 의원은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제약, 의료기기산업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FTA 영향평가 자료를 모두 비밀로 한 채 R&D 예산마저 축소하는 등 오랜 기간 국민건강을 지켜온 산업을 고사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산업계는 한국이 EU등 다른 나라와 맺은 FTA가 먼저 발효될 경우 한국시장에서 경쟁열위에 놓이게 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어 한- FTA 비준에 서두르는 모습이다. 동시에 유럽은 병원마다 첨단의료기기를 경쟁적으로 구입하는 국내 시장 진출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FTA
는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발만 동동 구르며 막연하게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FTA 발효 이후의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책마련에 힘써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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