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역학인가? 역학은 기초학문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역학회는 "역학은 인간집단 내에 발생하는 질병의 빈도와 분포를 결정하는 요인들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역학회 학술지에서 분류하고있는 원고의 주제는 이를 조금 더 명확히 보여준다. 주제 목록에는 감염병역학, 만성병역학, 영양역학, 임상역학, 약물역학, 유전과 분자역학, 사회역학, 환경과 직업역학, 정신역학, 역학연구 방법론과 통계, 건강예방과 관리, 건강증진 등 의료계 제반 주제들이 나열돼 있다.

역학은 주제들만큼이나 접근하는 방법과 연구의 목적이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하지만, 나아가 의료 및 사회 정책의 근거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역학회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통해 역학 연구에서의 접근방향을 살펴본다.

▲현황파악과 이에 대한 방법론 고찰 -
전염성질환 : 신종플루 신종 인플루엔자 H1N1(신종플루)는 올해 4월 처음으로 발병사례가 나타난 후 2달 만인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를 "대유행" 단계로 격상했다.

대유행이 아메리카 외 다른 대륙에서도 사람 간 감염을 통해 확산하는 단계라는 점과 아직 유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전 세계가 경각심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WHO는 이번 신종플루의 중증도를 "중등도(moderate)"로 평가하고 있다.

이제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입원이나 의학적 치료없이 회복되고 있고, 중증 또는 치명적인 사례발생이 계절 인플루엔자 시기와 겹친다는 것, 대다수의 국가들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규모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점 등 역학 및 임상에서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국내의 신종플루 중증도도 비슷한 수준이다.

박혜경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감시과 연구관은 현재 전국 800여개의 인플루엔자 표본감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 의사환자(influenza-like illness, ILI) 수의 변화 추이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신종플루 발병사례는 8월 말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10월 마지막 주에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질병관리예방센터(CDC)에서 발표한 내용과도 유사한 양상이다. 박 연구관은 아직 유행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백신접종도 계획대로 시행되고 있지만 항바이러스제 내성 바이러스, 변종 바이러스, 중복감염사례 등이 신종플루로 인한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이에 현재의 보건의료체계 유지와 함께 보건의료 전문가 단체와의 협력체계 보강 및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런 역학연구를 토대로 한 예측들은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 천병철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신종플루라는 새로운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및 대응방안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신종플루에 대한 위해성 평가가 선행되야 한다"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천 교수는 이제까지 알려진 신종플루의 특성들을 대상으로 위해성 평가를 진행, 국내 현황과 맞는지를 비교했다.

신종플루의 감염재생산수는 1.5, 평균잠복기 1.5일, 평균감염기간 5일, 2차 발병률은 22~33%, 중환자실 입원률은 전체입원환자의 15%, 치사율은 0.05%로 나타나고 있다.

천 교수는 이를 토대로 위해성 평가를 시행했을 때 신종플루 활동의 절정은 46~7주였고 최종 발병률은 29%라는 결과가 나왔고, 현재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약 12%에서 교차면역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앞으로의 발병률과 환자수, 사망자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방정책 및 임상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한 근거

- 만성질환 역학 : 심뇌혈관질환 : 세계적으로 심뇌혈관질환 발병사례는 감소하고 있지만, 경북의대 예방의학교실 천병렬 교수는 지난 30년간의 자료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및 유병률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게다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장애를 동반한 환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요소 중 감소추세에 있는 것은 흡연 뿐으로, 비만과 스트레스 등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

이에 천 교수는 강력한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서 위험요소를 관리 및 개선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의 주장은 암과 심뇌혈관질환의 예방가능도와 위험요소 연구를 근거로 하고 있다.

천 교수는 정부차원에서 암은 연간 2500억원, 심뇌혈관질환에는 320억원의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예방가능한 비율이 40% 대 80%이라는 수치를 제시하며 심뇌혈관질환에 대한 집중 관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임상에서는 심뇌혈관질환을 위해 어떤 약물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철환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뇌혈관질환 예방에는 우선적으로 스타틴(statin)이 사용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스타틴이 동맥경화증 환자의 뇌졸중 예방에 처방되는 아스피린(asprin)보다 높은 예방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여러 연구들을 근거로 강조했다.

또 폴리필(polyphill)을 비롯 다양한 약물들이 심혈관사건 예방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스타틴이 임상에서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피린, 이뇨제, 혈압강하제, 콜레스테롤저하제가 함께있는 폴리필의 경우 올해 3월 미국심장학회(ACC) 학술대회에서 효과가 각 약물의 단독요법과 비슷하게 나타난 반면 부작용은 높이지 않았다는 임상 결과가 발표됐지만, 아직 위험도 및 효과 평가를 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예로 제시된 토세트라핍(torcetrapib)도 아토바스타틴(atorvastatin)의 뒤를 이를 고지혈증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며 임상을 진행했지만, 위험수준의 혈압상승과 환자사망으로 임상이 중단된 바 있어 당분간 스타틴의 우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교수는 심뇌혈관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에서도 치료 및 예방제제의 선정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연구들이 근거로서 제시되야 한다고 정리했다. 한편 김현창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고위험군 구분에 필요한 위험요소 선별 연구를 발표해 역학의 넓은 적용범위를 보여줬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고위험군 판별 도구는 "플래밍험 위험지수(Framingham Risk Score)"다.

여기에는 나이, 성별, 흡연유무, 고혈압, 총콜레스테롤지수, 저HDL 콜레스테롤, 진성 당뇨병 등 주요 위험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김 교수는 이외에도 염증, 산화스트레스, 신장기능, 순환기기능 등 새로운 위험요소들이나 바이오마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들을 포함해 적용했을 때 전체 중 25%의 고위험군 선별에 1% 정도의 추가 위험군만 선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아직까지 플래밍험 위험지수 이상의 획기적인 바이오 마커가 없다고 설명했다. 플래밍험 위험지수는 1998에 발표된 것(Circulation. 1998;97:1837-1847)으로, 임상에서 임상적인 위험도 측정과 치료계획 수립에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 및 정책방향 제시

- 환경역학 : 대기오염 및 기후변화 코펜하겐 UN 기후회의(COP15 conference)가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는 가운데 권호장 단국의대 교수는 환경역학이 대기오염기준치 강화를 이끌었고 이를 통해 실제 대기오염 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경역학이 환경정책의 수립 및 시행,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기오염기준치는 1952년 5일동안 지속된 런던 스모그로 인해 1만2000여명이 사망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많이 개선된 것이라고 권 교수는 말했다.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993년 코호트 연구 덕분이다. 이 코호트 연구는 대기오염기준 이하의 공기에서도 미세분진의 농도가 높을수록 사망위험도가 증가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세계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대기오염도와 사망자수 및 병원방문자수의 연관성을 보여준 연구들이 진행됐고 이를 통해 대기오염기준 강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홍윤철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대기오염은 물론 기후변화로 인한 보건영향에 대한 연구가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연구는 혹서로 인한 사망 분석연구, 감염성 질환의 추세변화 등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혹서로 인한 사망과 감염성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의 범위가 이보다 더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더 넓은 범위에서 식수, 위생, 영양실조, 식량생산 등의 변화로 인한 보건 영향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도 대기오염이 사망위험도를 높이는 기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을 주는 연구가 없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연구의 범위가 사망에서 생체지표까지 확대되면서 병리적 기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장기간 영향력에 대한 코호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홍 교수는 정부가 환경역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추후 정책 수립에 필요한 근거를 확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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