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제 130/80mmHg부터 고혈압”
韓 “일관되게 140/90mmHg 이상부터”

대한민국의 심장학계는 고혈압의 경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혹자는 “고혈압의 정의는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기준을 적용할텐데 이 무슨 우문(愚問)인가?”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이 질문에 “혈압 140/9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수반돼야 했다. 미국에서 거세게 몰아친 거대한 변화의 물결 때문이었다. 미국 심장학계는 고혈압으로 진단할 수 있는 혈압의 분류, 즉 경계치에 전례 없던 변화를 주었고 전세계 학계는 미국발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고혈압 관리는 물론 환자진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2018년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존의 고혈압 정의를 고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안정적인 고혈압 관리의 길을 택했다.

When·Where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지난 2017년 고혈압의 경계치를 낮춰 조정하며 유병률·진단·치료 등에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심장학계는 큰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고혈압 기준을 수용할 경우, 고혈압의 유병률부터 시작해 진단·예방·치료전략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일단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로 낮출 경우 고혈압 환자의 수가 폭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고혈압 대란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미국 학계 측이 진단기준과 함께 목표혈압까지 더 낮추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이를 임상에 적용할 경우 이전보다 강력한 혈압치료도 피할 수 없었다.

What

미국 심장학계는 새 가이드라인에서 혈압단계를 정상(normal), 상승(elevated), 고혈압1단계(hypertension stage 1), 고혈압2단계(hypertension stage 2)로 과거와 달리 분류하고 이에 맞는 혈압수치를 명시했다. 2017년판 새 가이드라인에서 정상혈압은 120/80mmHg 미만으로 이전과 변함이 없다. 하지만 과거 고혈압전단계로 묶었던 구간(120~139/80~99mmHg)을 상승혈압과 고혈압1단계로 나누며 보다 엄격한 구분을 적용했다. 우선 상승혈압은 수축기혈압 120~129mmHg, 이완기혈압 80mmHg 미만으로 정의했다.

가장 주목받은 대목은 고혈압전단계 구간이었다. 과거 고혈압전단계로 구분했던 130~139/80~89mmHg를 고혈압, 더 정확히는 고혈압1단계로 변경해 명시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혈압 130/8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정의하고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이전의 고혈압 경계치로 자리했던 140/90mmHg 이상은 고혈압2단계로 분류됐다.

Why

이러한 변화에는 심혈관질환 위험증가 등 고혈압에 의한 심각한 폐단과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혈압단계에서부터 보다 빠른 치료를 적용해야 한다는 美 심장학계의 의지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당시 가이드라인 개발에 관여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고혈압전단계 후반구간인 130~139/80~89mmHg부터 정상혈압과 비교해 심혈관질환 위험이 2배가량 증가하는 등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정의해 빠른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Wind of Change

2017년판 미국의 가이드라인의 고혈압 경계치 변화를 임상에 적용할 경우, 몇 가지 측면에서 큰 파장이 예상됐다. 먼저 130/80mmHg 기준을 임상에 적용하면, 고혈압 유병률이 상승한다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ACC·AHA는 가이드라인에서 이러한 파장을 수치로 보여줬다.

2017년판의 기준을 적용할 경우 미국의 고혈압 유병률(혈압 130/80mmHg 이상 또는 항고혈압제 사용 자가보고)은 46%로, 성인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혈압으로 분류돼 막대한 수의 환자와 직면하게 된다. 이전의 기준(혈압 140/90mmHg 이상 또는 항고혈압제 사용 자가보고)으로는 유병률이 32%에 머문다. 두 기준을 각각 적용할 경우 남성은 31%에서 48%로, 여성은 32%에서 43%로 유병률이 증가해 남성의 증가 폭이 더 컸다.

130/80mmHg 기준을 적용하면 고혈압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고혈압 치료의 시작은 혈압수치와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종합해 판단하게 되는데, “심혈관질환 병력자이면서 혈압이 130/80mmHg 이상인 경우에 심혈관질환 2차예방을 위해 항고혈압제 치료가 권고된다”는 것이 ACC·AHA의 설명이다. 심혈관질환 1차예방과 관련해서는 10년내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발생위험이 10% 이상이면서 혈압 130/8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단 10년내 ASCVD 발생위험이 10% 미만인 경우에는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치료를 적용하도록 했다. 혈압이 130/80mmHg 이상이더라도 심혈관질환 위험도에 따라 약물치료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130/80mmHg 이상인 고혈압 환자 모두가 약물치료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시작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혈압 2단계(140/90mmHg)의 환자, 그리고 목표혈압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는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 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했다. 다시 말하면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약제치료의 강도와 시기가 빨라졌다는 것이 미국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Change or Stability

미국의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을 수용할 경우, 고혈압 유병률의 폭증을 피할 수 없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한고혈압학회 측에 따르면, 미국의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인인구의 32.0%였던 고혈압 유병률이 50.5%로 급증한다. 학회 측이 미국발 고혈압 정의·기준 변화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고혈압학회는 미국의 발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2018년 고혈압 진료지침’을 선보였다. 미국이 “이제 고혈압은 130/80mmHg 이상부터”라고 주사위를 던진 데 대해, 우리나라는 “고혈압은 일관되게 140/90mmHg 이상부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학회는 고혈압 진단기준과 관련해 “진료현장에서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기준혈압으로서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가 더욱 분명해진 140/90mmHg을 제시한다”며 전통적 기준에 더 힘을 실었다.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엄격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에서 약물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역치 이상의 혈압”으로 고혈압을 정의한 것이다. 즉 혈압분류 시에 △고혈압 1기를 140~159/90~99mmHg △고혈압 2기는 160/100mmHg 이상으로 정의, 140/90mmHg 이상부터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결정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선택이었지만, 고혈압 진단기준을 엄격하게 낮췄을 경우 환자 수의 급증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장을 고려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고혈압학회 측은 새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미국의 고혈압 진단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인인구의 32.0%였던 유병률이 50.5%로 급증한다”며 높은 질병부담률에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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