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국내외 의학근거 반영안돼 주장

보건복지가족부가 항혈전제 급여기준을 신설하면서 외국의 교과서 및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학회 의견수렴도 형식적으로 진행, 학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1월 20일 "국민건강보험법 제39조 제2항 및 제3항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 제2항 규정"에 의거 항혈전치료제(경구용 Heparinoid 제제 및 경구용 항혈소판제)에 대한 급여기준을 신설했다.

신설된 급여기준은 지금까지 심·뇌혈관, 말초동맥성질환에 대해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티클로피딘, 트리플루살, 실로스타졸, 리마프로스트 알파덱스, 사르포그렐레이트 등 항혈전제를 1차 약제로 인정해왔던 것과 달리 아스피린만 단독 1종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약물들은 아스피린에 효과가 없거나 알러지 또는 위장관계 출혈이 있는 경우에 인정키로 했다.

복지부는 이번 급여기준을 신설하면서 "관련 학회 의견, 교과서, 가이드라인 등 국내·외 의학적 근거자료 및 비용효과성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해외 교과서 기준과 다소 차이가 있고, 국내 학계의견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복지부가 외국의 교과서 및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는 것과 달리 현재 미국과 유럽의 임상진료지침에서는 뇌졸중이나 심혈관질환 환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아스피린 외의 다른 약제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 기준처럼 아스피린만 인정하는 곳은 없다.

실제로 2009년 유럽뇌졸중협회(ESO, EU 각국의 뇌졸중학회의 연합체로 뇌졸중 관련 표준진료지침을 만드는 최고위 기구)에서는 모든 뇌졸중 환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항혈전제 투여를 권고하고 있다. 아스피린의 단독요법은 차선책으로 명시해 놓았다.

이 같은 내용은 복지부가 참고했다는 ESO 2008 가이드라인에도 동일한데 그 점에서 상충되는 부분이다.

영국의 NICE 가이드라인도 마찬가지다. NICE는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을 비교한 CAPRIE 연구를 근거로 허혈성 뇌졸중에 있어서 클로피도그렐 등을 1차 약제로 권고하고 있다.

그밖에 미국심장학회(AHA) 및 미국뇌졸중학회(NSA)가 공동 발표한 2008년 표준진료지침도 뇌졸중이나 일과성 허혈발작 환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아스피린과 디피리다몰 병합요법 3가지를 1차 약제로 권고하고 있다.
 
더불어 또한 관상동맥중재시술 후 좌주관지병변, 분지병변, 미만성질환, 복잡병변 등에서는 1년 이상의 계속적인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 혹은 타 항혈소판제를 포함하는 3제 요법을 권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신설된 국내 항혈전제 급여기준은 외국의 가이드라인을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국내 학계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부분도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결과 대한뇌졸중학회와 대한심장학회는 반대 입장을 제시했었고 대한신경과학회는 의견요청도 없었다.
 
대한뇌졸중학회 배희준 홍보이사는 "학회 측에서 입장을 제시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찬성학회가 어디였는지 궁금하다"고 밝혔고, 대한신경과학회 민양기 홍보이사도 "항혈전제 급여기준 개정과 관련해 심평원과 논의한 과정이 없었다. 복지부가 밝힌 관련 학회의 의견은 어디를 말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실무를 검토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학회에는 자료요청을 한 것이다. 이를 면밀히 검토한 것"이라고만 말해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학회와 심도 있는 논의를 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회의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급여기준 설정에 있어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의 가이드라인 참고와 국내 전문가의견이 배제된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복지부와 심평원은 말을 아끼며 예의주시하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심평원이 검토한 내용이다"며 말을 아끼는 입장이고, 심평원도 "조율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하면 타당성을 검토해 반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학회는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통해 급여기준 고시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업무를 관장하는 대한의사협회 보험과 관계자는 "일단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견조율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지난 4일 복지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시간을 확보한 만큼 자료확보를 통해 재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심평원 측은 "외국의 기준이 있어도 다 따라가지는 않는다. 각 국가별 상황에 맞게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급여기준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복지부가 학회의 의견을 수렴해 고시를 철회할지 아니면 새로운 기준을 그대로 밀어붙일지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이다.
 
배희준 이사는 "복지부가 보험재정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급여기준을 신설한 느낌이 든다.
 
아스피린을 일차적으로 투여하라는 점도 그렇고 병용요법에 대한 규정을 신설해 결과적으로 규제를 신설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상준·이혜선·임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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